꽃차 .야생화

달빛에 피어난 메밀꽃, 소금을 흩뿌린 듯 피어나고

아기 달맞이 2009. 12. 23. 06:31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하략)(이효석-<메밀꽃 무렵> 중에서)  

<메밀꽃 필 무렵>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봉평장의 파장 무렵 조선달에 이끌려 충주집을 찾은 허 생원은 나이가 어린 장돌뱅이 동이를 만난다. 대낮부터 충주집과 짓거리를 벌이는 동이가 미워 따귀를 올린다. 나귀에 짐을 싣고 달밤에 다음 장터로 떠나는 길, 그들이 가는 길가에는 달빛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었고 소금이 뿌린 듯 피어난 메밀꽃의 정경에 취해 허 생원은 옛 이야기를 꺼낸다. 성 서방네 처녀와의 첫날밤이자 마지막 밤을 가졌던 봉평, 그때부터 허 생원은 반평생을 두고 봉평에 다니게 되었다. 이야기 끝에 동이가 편모와 살고 있음을 알게 되고, 그 어머니의 고향이 봉평임을 알게 된다. 동이와 제천으로 가는 허 생원은 동이가 자기처럼 왼손잡이임을 알게 된다. 

   

이효석은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달빛 은은한 밤에 보는 메밀꽃밭의 정경을 표현했습니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달빛이 밝은 가을 밤, 풀벌레들이 울어대고 찬바람이 휑한 마음에 들어오니 옛 생각이 절로 났을 것입니다. 그 첫날밤이자 마지막 밤에 성 서방네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면 동이 나이쯤 되었을 터인데 하필이면 허 생원과 같은 왼손잡이입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고 이후의 상상은 독자들에게 맡겨 버립니다. 동이가 허 생원의 아들일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이죠. 

   

김동리의 단편소설 <바위>에도 잡풀 속에 섞여 핀 돌메밀꽃이긴 하지만 메밀꽃이 등장합니다. 돌메밀꽃은 바람을 타고 잡풀들 사이에 떨어져 야생의 상태에서 피고 지기를 반복하다가 메밀꽃보다 하찮은 꽃과 열매를 맺습니다. 게다가 무리지어 피어 있지도 못하고 잡풀들 사이에 드문드문 피어날 뿐입니다. 메밀꽃이긴 하지만 앞에 붙은 ‘돌’자가 상징을 하듯 메밀꽃에 비하면 천대를 당하는 꽃이지요.  

단편소설 ‘바위’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술이의 엄마는 문둥이다. 아들 술이가 장가갈 밑천으로 모아두었던 돈의 대부분을 어머니의 약값으로 써버리고 남은 밑천도 술과 도박으로 없애버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아들을 기다리다 영감에게 학대를 당해 읍내 가까운 기차 다리 밑까지 굴러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근처의 ‘복바위’를 갈며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보름 만에 장터에서 아들을 만난다. 그러나 사나흘 뒤에 다시 온다던 아들은 나타나질 않고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살던 집까지 불태워지고 말았고 이 여인은 복바위를 안고 죽는다. 마을 사람들은 “더러운 게 하필 예서 죽었노”하며 바위를 아까워한다.

돌메밀꽃과 문둥이 아주머니는 ‘소외’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문둥이 여인의 모성애가 다르지 않듯 돌메밀꽃도 피고 짐에 있어 메밀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소외당한 인간이 극복해야 할 현실적인 장벽, 그것은 바위처럼 단단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소외당한 인간보다도 그를 소외시킨 인간들이 깨뜨려야 할 장벽들이 그 바위처럼 단단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에 등장한 돌메밀꽃의 존재는 소외당한 삶을 살아가는 사회 저변의 사람들을 닮았습니다. 

   

잡풀 속에서 피어나도 꽃이요, 몹쓸 병에 걸렸어도 사람입니다. 

꽃은 꽃으로 사람은 사람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그리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들어 있는 들보와 마음에 쌓아 놓은 고정관념이라는 벽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예수가 이 땅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시어 함께 한 사람들, 그 사람들은 잡풀 속에 피어난 돌메밀꽃과 같은 사람들, 몹쓸 병에 걸려 조롱당하는 사람들, 그냥저냥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암하렛츠’, 그렇습니다. 예수는 그 ‘땅의 사람들’을 ‘하늘의 사람’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다르지 않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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