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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사발의 미학(2) - 엔트로피의 미

아기 달맞이 2009. 12. 23. 05:56

엔트로피(entropy)란

찻사발의 자연주의 미학은 다른 말로 엔트로피의 미학이다. 엔트로피는 ‘여러 형태의 에너 지가 관계되는 제 현상’을 설명하는 열역학 제2법칙에 해당하는 물리학 용어다.

열역학 제2 법칙인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찻사 발의 미학에 원용(援用)할 만하다. 차를 마시는 일은 우주의 살림살이를 이해 하려는 노력 의 일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는 ‘어떤 시스템의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내는 척 도’로 정의되지만, ‘무질서’ 또는 ‘덜 유용한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에너지는 항상 질서(쓸모있는 상태)에서 무질서(덜 쓸모있는 상 태)로 변화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법칙이다. 따라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말은 ‘무질서의 도(度)가 높아진다’ 또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유용성이 떨어진다’ 라는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듯 하다.



▲ 찻사발의 자연주의 미학은 다른 말로 엔트로피의 미학이다. 언젠가는 이 찻사발도 자연의 흙으로 돌아간다. / 변희석 기자
■질서의 고향은 무질서

우리가 석탄이나 가스를 태우면 그 속에 들어 있는 고농도의 에너지는 열로 바뀌어 대기 중으로 흩어지는데, 이 열이 다시 모여 본래의 석탄이나 가스, 즉 질서나 유용한 상태로 되돌아 가지는 않는다.

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열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에너지가 관계 되는 모든 현상을 지배한다. 이때 인간의 눈으로 보는 무질서는 자연의 입장에서는 자유를 의미한다. 모든 질서 있는 것들의 고향은 무질서다. 그리고 무질서로 회귀하려는 사물의 몸 짓을 ‘자유’라고 말할 수 있다.

생명현상의 최고 질서체계를 갖추고 있는 인간조차도 늙고 마침내는 죽음을 맞이한다. 인 간의 노화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가는 과정이고 죽음은 무질서의 완성에 불과하다. 인간의 정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제약, 구속, 형식, 틀, 전통 등은 인간이 만들어낸 그 시 대의 사회 체계이며 질서다.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노력(깬다는 점에서는 무질서)이 또다시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일으킨다.

■자연스럽다는 것

자연스럽다는 것이 왜 좋은가에 답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친숙의 감정’과 ‘좋다 또는 편안하다는 의식’은 인간의 마음 속에 잠재 되어 있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대한 무의식적인 순응 반응이다. 이 반응은 모든 존재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우주의 보편적 원리인 엔트로피의 법칙을 인식하는 무의식이다. 또한 무질서라는 존재의 고향에 대한 회귀 본능의 내재적 감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 또한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우주이기 때문이다.



▲ 박물관에 전시된 찻사발을 감상하는 차인들… 옛 찻사발을 자주 접하면 자신만의 안목을 갖는데 도움이 된다. / 변희석 기자
■자연스러운 것은 왜 좋은가?

우리의 삶을 둘러보면 엔트로피 법칙이 보여주는 예로 가득 차 있다. 방을 어질러 놓기는 쉬워도 스스로 정돈되지는 않는다. 시계를 분해하기는 쉬워도 스스로 다시 조립되지는 않 는다. 이같은 예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이동하는 시간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러한 엔트로피의 개념들을 통해 우리가 찻사발을 감상할때 막연히 ‘자연스럽고 작위성이 없는 것이 좋다’ 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왜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가? 왜 작위성이 없는 것이 좋은가? 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자연스런 것이 좋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왜 자연스런 것이 좋은가’ 라고 질문하지는 않는다. 이 장에서는 자연스런 것이 왜 좋은가에 대한 고찰과 찻사발의 미학에 따라붙는 자연주의에 대한 의미 를 알아 보려고 한다.

■존재의 본질은 자유

우주의 본질이 운동과 변화라고 한다면 이는 에너지가 형태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 하는 모든 것들의 속성은 자유를 지향하고 있다. 높은 산도 언제인가는 자신을 허물어 뜨려 평원의 자유에 안기기를 꿈꾼다. 공들여 쌓아 놓은 장엄한 탑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인간의 의지로 구축된 질서를 깨뜨리고 지면으로 내려와 편안한 자세로 무질서의 자유를 누 리게 되기를 원한다.

오래된 사원의 폐허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주춧돌이나 탑석, 신전에 외롭게 서있는 돌기 둥 등을 볼때 인간의 입장에서는 황량한 폐허가 주는 무상감에 젖겠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질서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의 모습이다.

인간이 그것들을 모아 다시 쌓아 올려 질서를 부여하지 않는 한 그들은 무질서로 향하는 자유를 계속 향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이전의 질서 있는 모습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다시 말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에너지가 모습을 바꿀 때 질서 상태에서 무질서 상태로만 이동할 뿐 스스로 질서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장작가마 1200도의 고온에서 찻사발은 탄생하여 차인들로 인해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 변희석 기자
■흙맛과 원형(原形)을 지향하는 변화의 미

일방적으로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해 가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떠올리며 찻사발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원형(圓形)이면서 정원형이 아닌 입(구연부), 가끔은 속살이 들어나 보이는 완 전하지 못한 유약씌움[施釉], 차심이 들어가 있는 빙열이나 비샘 자국, 완전히 녹지 않은 반자화된 태토, 굽 안의 불규칙적인 소용돌이 모양과 덜익고 들떠 있는 듯한 유약, 겉울과 안울 표면에 불길이 지나간 흔적에 따른 색상의 변화 등은 완전에 대한 불완전, 질서에 대한 무질서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찻사발의 몸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일부러 흔적을 남기지 않은 흔적’ 즉 무위(無爲)의 흔적들이기도 하다.

찻사발의 이런 모습들은 찻사발의 원래의 고향인 자연상태의 흙을 떠올리게 하고 이런 느 낌을 우리는 흙맛이라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흙맛은 질서의 형태인 찻사발로부터 무질서 상태였던 흙을 느끼게 하는 감성이고 무질서의 원형(原形)에서 느껴지는 ‘불완전에 대한 미 의식’이다. 찻사발의 흙맛과 사발 몸의 변화에 대한 다인들의 미학적 호감은 항상 본디 모습[原形]을 지향하는 사물의 본질에 대한 무의식적 이해이며 본질회귀의 향수라고 말할 수 있다.

정동주님은 ‘불의 지문’이라는 소설에서 이도다완의 미학을 설명하는 가운데 인간의 참모습 을 형체에 집착하지 않는 변화의 의미 속에서 찾고 있다.

"변화는 그 자체가 태초이자 종말이지만 계속되기 때문에 태초도 종말도 따로 느껴지지 않지요. ....형체를 지닌 모든것은 변합니다. 우주 자체가 변화를 설법하는 진리거든요. 인간 에게서 변화는 곧 슬픔으로 표현되기도 하지요. 헤어지는 것을 말하니까요. 인간의 참모습은 변화를 절실하게 깨닫고 형체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데 있는지도 모르지요. 형체는 만남이라 는 단계와 이별이라는 단계로 구성되는데 시간과 장소에 따라 끝없이 변화된 형체로 만남 과 이별이 반복된다고 봅니다. 그게 슬픔이지요. 슬픔은 인간의 참마음이며 이도차완은 그런 인간의 마음이 투영된 그릇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찻사발로부터 배우는 자유의 미학

‘흙맛과 자연스런 변화미’를 갖춘 찻사발은 곧잘 우리를 명상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그것 은 단지 미의식의 각성 뿐 아니라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숙고하게 한다.



▲ 정호다완(井戶茶碗) 찻사발의 당당한 모습 . 묵전요 김태한 作 / 변희석 기자
세월이 인성을 바꾸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발 또한 변화해 간다. 다인은 변화하는 사발 모습에서 엔트로피 의 증가를 보고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얻을 수 있다. 이때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한국미의 이해」라는 책에서 김영기님은 ‘현상계의 무상함과 그 배후에 깃든 어떤 영원 한 숨결을 깨달아 삶의 자유를 새롭게 자각하고 발견하는 일’이라고 했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시간은 생성이라는 질서에서 소멸이라는 무질서로 이동해 가는 변화와 운동의 경험 이라고 말할 수있다. 세월은 인간의 자기완성 과정에서 필요한 질서에 대한 삭힘의 과정이고 따라서 무질서로 가는 것에 대한 이해인 것이다.

결이 삭는다는 것은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뜻이고 결이 삭은 사람은 언제인가는 무질서로 회귀하는 인간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 온갖 고통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생을 영위하게 된다. 이렇게 세월 속에서 삶을 가로막고 있는 괴로움, 슬픔, 홀로감과 외로움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도록 인생의 결을 삭혀야 한다는 것과 결이 삭아 본래의 원형(原形)으로 돌아가려 것이 사물의 본성(자유)이라는 것을 찻사발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생사마저 뛰어 넘고 희, 로, 애, 락의 감정에도 매이지 않는 진정한 자유의 삶을 희구한다. 엔트 로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찻사발의 미학은 바로 자유의 미학이다. 그리고 찻사발의 엔트로피의 미학은 다인들에게 근원으로서의 자유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김동현 (차문화 연구가)

김동현은 다회(茶會) '작은 다인들의 모임' 회장이고 차문화 공예연구소 운중월(雲中月)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는 흙과 나무로 차 생활에 소용되는 기물을 만들며 그 것들을 사용함으로써 생활이 생기 있고 아름다워지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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