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방

차마시는 격식에 대하여

아기 달맞이 2009. 12. 23. 05:55

차를 애호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는 차마시는 문화가 대중화 되면 생활예절이 올바르 게 정립되므로 국민정서가 순화 될 뿐 아니라 전통문화의 계승도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믿 고 있다. 그들은 차생활에서의 예절은 상대방의 배려와 존경에서 우러나오고 배려와 존경은 말예절과 행동 예절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때의 표현양식을 행다라고 하고 다도는 이런 차의 정신을 형식화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궁극적으로 예절을 추구하는 것만을 차생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 차는 예술일 수 가 있다. 찻일(다사;茶事)에 쓰이는 차주전자와 찻잔, 찻사발같은 도자기류, 다기를 수납해 두는 다구장이나 찻상 같은 목기류, 차실의 분위기를 돕는 향을 피우는 향그릇과 꽃병, 벽에 걸려있는 그림 등을 보면 차생활은 생활미의 경험이라고 할수있다. 차를 내는 행다 또한 행위 예술일 것이다. 또 잠을 쫓고 머리를 맑게하는 기능을 가진 차는 어떤 사람의 경우 깊은 사색과 명상의 길로 인도하는 구도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승가에서 말하는 다선일여(茶禪一如)와 같은 것이다.




▲ 어린 아이들이 아빠가 따라주는 차를 마시고 있다.

한편 형식을 갖추고 마시는 음다문화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사람은 그것을 복고 취향의 거드럼 피우는 귀족 취미라고 폄하한다. 기호음료인 차는 마시고 즐기면 되는 것인데 특정한 복식과 복잡한 다구와 까다로운 절차를 만들어 일반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접근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차는 생활 속에서 쉽게 만나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어느 다인의 말을 들어 본다.

‘차를 마시고 싶어도 구입과정과 우려내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보아왔다. 차를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인식은 있으나 가까이 접하고 자주 찾질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차를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 무슨 고상한 취미인 것인양 행동하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특정 사람들만의 문화라는 인식과 꽤나 절차가 까다롭고 번거롭다는 선입견이 편하고 자연스레 마시면 되는 생활 속의 일부로서의 차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의식이나 절차가 꼭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차를 대할 때의 마음 가짐이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 창문에 놓인 다구들. 다관과 찻잔이 놓여있다. / 변희석 기자

위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한 언론인의 지적은 격식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형식주의는 배격 한다는 점에서 좀 심한 표현도 있지만 경청할만 하다.

‘멋진 다인이라 이름이 높기에 찾아가 먼발치에서 보자면, 엉터리 한복을 뻗쳐 입은체, 소 위 개똥 철학이나 읊으면서, 자신의 방법만이 정통 한국식이라 우기는 뿌리 모를 소인배나 구경하기 십상이더이다. 얼마전에 보니 월드컵을 맞았다고 한국 방송공사에서 차에 관한 고 화질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보여주더군요. 그런데 특별프로그램에서 반복되는 가식과 헛말들 은 정말 가소롭더이다. 차를 다루는 문화적 방식이 닳고 닳은 전형이였습니다. 차의 온전한 맛을 즐기려고 소믈리에(와인 감별사)처럼 혀를 놀려 입을 오물거리는 승려가 등장하더니, 어느 여인이 차를 다 마셨다고 엄숙한 표정을 지어 허세를 부리며 죽비를 두드리며 방송을 맺더군요. 허참,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요.’




▲ 휴대용 다구는 언제 어디서나 따듯한 물만 있다면 차를 우려 마실 수 있어 현대인의 생활에 차를 접하기 쉬운 다구이다./ 티&피플 제공

음다문화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고 또 각기 부분적으로는 타당성이 있다. 그 러나 크게 두가지로 나눠 보면 형식중시론과 형식무용론이다.

형식중시론은 차를 동양의 정신음료로 이해하며 차의 정신을 담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격 식은 필요하다는 견해다. 이런 견해는 차생활을 각각 무위의 멋으로 즐기는 풍류문화(선도 문화), 자기성찰의 시공간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수양을 위한 선비문화(유교문화), 다선일여 와 같이 본질에 접근하려는 명상 문화(불교문화) 등으로 이루어 온 역사성 속에서 차문화를 파악하려는 속성이 있다.

형식무용론의 견해는 차가 가지는 기호음료와 건강음료의 기능성을 중시하는 반면 차와 관 련된 문화로의 관심을 넓히는 것은 거부한다. 복잡한 것을 지양하고 단순명료와 스피드를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 적응하는 차의 모습이다.

기능성 다기의 등장

음다문화를 보는 두가지 시각에 따라 차를 담는 그릇 또한 달라진다.

차를 정신음료로 보는 찻그릇은 그 철학을 반영한 모습을 보여준다. 풍류문화의 다기는 멋 과 놀이 문화에 충실한 미학적 그릇으로, 선비문화의 다기는 군더더기가 없는 결곡하고 품격이 있는 그릇으로, 명상문화의 찻그릇은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으로 각각 나타난다.



/ 김동현 차문화연구가 bomnal45@hanmail.net


▲ 바쁜 현대생활 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차 한잔을 우리는 느림의 미학을 즐긴다는 것 또한 삶을 윤택하기 위한 방법이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문화를 접하는 관문역활을 한다. / 변희석 기자

차를 기호음료와 건강음료로 볼 때의 다기는 우선 편리성에 우선을 두는 찻그릇이다. 직장 에서 일을 하면서, 여행 도중에 운전을 하면서도 쉽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간편한 다기여야 한다. 기능성 다구 연구가인 김태영씨는 여행 중의 일화를 소개하고 집안에서는 전통 다구를 집 밖에서는 휴대용 다구를 권한다.

‘예전에 모 월간지 기자들과 함께 여행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잠시 동안의 휴식 시간에 일행 중 누군가 휴대용 다구로 차를 우린 후 종이 컵에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승용차 안에서 종이 컵으로 마시는 차였지만 그순간 잎차를 우려 마셨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는 감동해버렸습니다. 차를 통해 격식을 뛰어 넘어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였습니다.’

차문화를 태동시킨 중국인들은 말 그대로 차가 다반사(茶飯事)로 일상의 생활 음료가 되어있다. 중국은 최근들어 경제적 성장과 함께 휴대용 다구의 개발도 활발하다. 수백종에 달하는 휴대용 다구는 재질별로 크게 4종류로 나눠 볼 수 있다. 깨어지기 쉬운 단점이 있지만 값이 저렴하고 위생적인 유리제품, 휴대하기 편하고 안전한 아기들 우유 젓병 소재인 폴리카 보네이트 제품, 파손의 위험이 없고 위생적인 스테인리스 제품, 차의 맛을 해치지 않고 예술적 미감을 느낄 수 있는 도자제품 등이 있다. 커피 문화쪽에 인구를 뺏기고 있는 젊은이를 겨냥한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휴대용 다기의 개발도 활발하다.

우리 나라의 경우 찻잎을 우려마시는 잎차용 다기문화의 현주소는 전통 다기도 휴대용 다기도 모두 만족 할만한 단계는 아니다. 1965년 한일 정상화 이후 일본인들의 국내 출입이 허용되면서 다기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때가 빈사 상태였던 우리 도자문화가 활기를 찾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기 시장의 수요가 찻사발만을 중시하는 일본 다인들의 영향으로 인해 그동안 국내에서는 잎차다기 보다는 가루차용 찻사발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왔다. 일본이 가루차 중심의 다도이기 때문에 잎차다기인 다관이나 찻잔 만들기에는 소홀해 왔던 것이다. 결국 찻사발 만들기에만 치중한 나머지 일반 잎차다기나 기능성 잎차다기의 개발 모두에 소흘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바야흐로 걸으면서 마시는 찻그릇이 나와서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제껏 찻그릇 사기장들이 사발 만들기에 혼신을 바쳤듯이 앞으로는 잎차용 다기에도 관심을 갖고 개발 할 때가 된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다기 문화도 그렇다. 시대에 따라 요구하는바도 다르다. 행동하 면서 마실 수 있는 찻그릇이 필요한가 하면 정을 쏟고 길을 들이며 자신과 함께 늙어가는 친구로서의 찻그릇을 원할 수도 있다. 어느 것도 틀린 것이 아니다. 다만 다를 뿐이다. 그리 고 문화는 획일적인 것이 아니고 다양한 것이며 시대의 요구에 따라 끝없이 변하는 것이 문화의 속성이다. 다기 또한 다인들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 할 때가 되었다.

/ 김동현 차문화연구가 bomnal45@hanmail.net

/김동현 (차문화 연구가)

김동현은 다회(茶會) '작은 다인들의 모임' 회장이고 차문화 공예연구소 운중월(雲中月)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는 흙과 나무로 차 생활에 소용되는 기물을 만들며 그 것들을 사용함으로써 생활이 생기 있고 아름다워지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