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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금바리 맛에 반하다! [조인스]

아기 달맞이 2009. 11. 26. 09:00

남북 정상과 소련 대통령까지 반한 '맛'

지난 1991년 제주도 중문 신라호텔에서 열린 노태우-고르바초프 대통령간의 한-소 정상회담을 결코 잊을 수 없는 현지인이 있다. 남제주군 산방산 아래에 터를 잡은 지 4대째 이어오고 있는 식당 '진미명가'의 3대 사장 강창건씨다. "정상회담이 열리기 3개월 전, 사전 답사를 온 소련 측 고위인사가 안전기획부 요원과 함께 우리 집에 와서 다금바리 회맛을 보고 난 뒤 'OK'를 하고 갔어요." 그리고 3개월 뒤, 강 사장은 한-소 정상회담장인 신라호텔로 출장을 가 두 정상 만찬 테이블에 다금바리회를 올렸다. "외국 사람이라 생선회가 입맛에 맞지 않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별 4개짜리 최고급 보드카를 따더니 회와 함께 맛있게 드시더라고요." 이 내용이 나중에 알려지면서 진미명가는 전국의 미식가들의 입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게 됐다.



60송이 장미 오른 부인 회갑상에, 전 전 대통령 "이제 우리는 가족"

“한-소 정상회담을 잘 치르고 난 얼마 후 안기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정상회담 때 쓰던 접시까지 똑같이 해서 다금바리를 요리해 달라는 거였죠.” 자신을 부른 주인공이 누군지도 모른 채 나갔던 마라도 출장. 그 출장이 큰 인연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몇 년 후에야 자신을 부른 사람이 누군 줄 알았다.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 전 전 대통령은 제주도에 들를 때면 호텔로, 아니면 진미명가로 강창건 사장을 찾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백담사에서 산초만 먹다가 유배에서 풀려나 처음으로 바닷바람을 쐬러 마라도에 갔는데 그때 주위의 권고로 맛본 당신의 다금바리 맛을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단다.
전 전 대통령은 부인 이순자 여사의 회갑연을 진미명가식당에서 열었다. “다금바리 요리와 제주의 해산물로 최선을 다해 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미리 주문한 장미꽃 예순 송이도 상에 올렸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장미꽃 선물을 받은 부인의 환한 얼굴을 본 전 전 대통령은 "전 세계를 돌아다녀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재국 엄마, 강 사장께 술 한 잔 따라드려"라고 '명령'했고, 강 사장은 그날의 주인공으로부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잔을 받았다. 기분이 좋아진 전 전 대통령은 "이제 우리는 가족"이라며 당시 중학생이던 강 사장의 외아들 경석이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다. 어린 경석이는 "나중에 군대 갔다와서 증조부님 때부터 이어온 진미의 대를 잇겠다"고 답하자, 군인 출신인 전 전 대통령은 "기특한 아이"라며 두둑한 용돈을 주기도 했다.

이날 이후에도 강 사장의 손맛과 정성을 잊지 못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연희동 자택으로 출장을 와달라고 강 사장에게 요청했고, 이에 흔쾌히 응하자 어느날 "그동안 고마웠다"며 자신의 이름이 진미명가의 홍보에 도움이 된다면 사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해마다 연말이면 전 전 대통령은 강 사장에게 연하장을 보내고 있다.

평양까지 보내진 다금바리…남북 국방장관회의 참석 김 부장 추천

강창건 사장은 요리 솜씨만큼이나 입답도 뛰어나다. “2000년 9월 24일에 남북 국방장관회담으로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제주도를 방문했습니다. 방문 며칠 전에 국가정보원에서 소식을 미리 알리며 한 이불 덮고 자는 아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취재진을 따돌리고 진미명가에 자리를 함께한 남북 군 최고책임자들의 식사 분위기는 처음엔 자연스럽지 않았다. “38선을 긋듯 서로 맞은편에 앉아 썰렁한 분위기였죠. 그래서 음식은 국경도 초월하는 것이므로 '즐겁게 먹어야 한다'며 양측이 함께 사진을 찍기를 권했습니다.” '당돌한' 제안이었지만 분위기는 의외로 부드러워졌다. 곧 두 장관은 웃으며 사진을 찍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때 다금바리를 처음 맛본 김일철 부장은 “이런 맛은 처음 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미명가의 다금바리 맛은 입소문을 통해 평양에도 전해졌다. 그 이후 금강산 관광사업을 하고 있는 현대아산은 "평양 최고위층에 보낼 '특별한 선물'이 필요하다"며 진미명가에 다금바리를 주문했다. 강 사장이 직접 구입한 다금바리는 항공기 편으로 '제주-부산-속초'로 보내졌고, 설봉호를 통해 금강산에서 평양으로 두차례 전달됐다. 진미명가식당에 걸려있는 '금강산 사계' 사진은 북한 사진작가 이정수의 작품으로, 다금바리를 보내준 데 대한 북측의 답례 선물이다.

4대 이을 외아들 조리학과 마치고 현장서 맹훈련 중

최근 진미명가에는 한 명의 조리사가 더 늘었다. 바로 조리학과를 졸업한 외아들 경석씨.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다금바리 조리사로 이미 출사표를 던졌다. “어릴 때 전두환 전 대통령님과 약속을 했어요. 꼭 아버지를 이어 훌륭한 다금바리 조리사가 되겠다고. 이제 그 약속을 지켰어요.” 스물일곱 청년으로 자란 경석씨가 강 사장만큼의 실력을 갖춰 4대 진미명가의 주인이 되는 날을 강 사장은 기다리고 있다.

뉴스방송팀 최영기·강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