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자가 들어가면 신선한 느낌은 있지만 다 익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과일이나 채소에서 '풋'은 아직 먹기에 이르다는 의미지요. 그런데 고추에서만큼은 예외입니다. 풋고추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입니다. 고추가 붉어지면 가루로 내어서 그 형체가 바뀝니다. 오직 다 익지 않은 '풋' 상태일 때만 채소다운 채소 대접을 받습니다. 풋고추는 붉은 기운이 들면 가치가 떨어지는 희한한 채소인 셈입니다. 비타민의 보고로 알려진, 풋고추의 맵고 알싸한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글ㅣ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우리나라에는 두 가지 스타일의 고추가 있습니다. 매운맛과 단맛이 그것입니다. 고추는 매워야 제 맛이라고 하지만, 맵지 않은 고추도 매우 많습니다. 일부러 '맵지 않은 풋고추 주세요'하거나, '맵지 않은 고추'라고 광고를 하는 채소가게 주인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고춧가루가 아닌 채소로 고추를 먹을 때는 맵지 않아서 상품 가치가 올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 희한하지요. 흔히 피망, 파프리카라고 부르는 채소도 일종의 고추입니다. 전혀 맵지 않아서 오히려 높은 대우를 받은 녀석들입니다. 그런데 풋고추는 매워야 한다는 명제에 충실한 고추도 유명합니다. 바로 청양고추라는 녀석입니다. 한 입 베어 물면 그 매운맛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속이 쓰릴 정도입니다. ‘땡초’라고 부르는 아주 맵고 작은 풋고추와 비슷한 고추이지요. 사실, 청양고추는 이 땡초로 교배한 것이니 서로 친척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양고추는 오랫동안 한국의 매운 풋고추 시장을 장악해온 땡초나 다른 품종을 넘어 한국의 대표 풋고추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런데 청양고추를 둘러싼 논쟁도 있습니다. 바로 '명명'을 둘러싼 논쟁입니다. 이름에서 유추되듯이 청양 지방의 고추라는 설과 이 고추를 만들었던 고추 회사의 문헌에서 비롯한 경북 청도와 영양 지방의 이름자에서 하나씩 따왔다는 설입니다. 무엇이 원조이든 우리가 즐겨먹는 청양고추는 당분간 왕자의 자리에서 내려올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맵다, 맵다 하는 청양고추도 외국 고추에 비하면 매운맛으로는 새발의 피도 안 된다고 합니다. 실제 외국 여행을 가서 외국 고추 만만히 봤다가 눈물 콧물 다 빼는 분들 많습니다. 제가 일하던 이탈리아의 고추도 정말 엄청나게 맵지요. ‘스코빌’이라는 단위가 있습니다. 매운맛을 재는 척도인데요, 청양고추는 1만 스코빌 정도입니다. 그런데 인도 졸로키아 고추는 1백만 스코빌이라고 합니다. 청양고추의 100배 정도 되지요. 이건 거의 최루탄으로 써도 되는 '독극물' 수준이 아닐까요. 고추가 무조건 맵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고추는 적당히 매운 편이며, 단맛이 있어 뒷맛도 좋은 편입니다. 상당히 조화로운 고추라고 할 수 있지요.
과일 못지 않은 풍부한 카로틴과 비타민의 보고
풋고추는 색깔이 푸르기 때문에 청고추라고도 합니다. 출하되는 시기는 요즘처럼 하우스 재배가 일반화된 시기에는 사철이며, 과거에는 7,8월입니다. 역시 노지재배가 되는 7,8월에 출하량이 가장 많습니다. 풋고추는 꽃이 피고 보름 정도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 후 고추가 붉어지기 전까지는 수확할 수 있습니다. 풋고추에는 아주 많은 영양이 있습니다. 철분과 칼륨 같은 미네랄도 있지만, 무엇보다 카로틴이라고 부르는 생리활성물질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100그램당 2000㎍라는 상당히 많은 양을 함유하고 있으며 비타민 B1, B2, C도 아주 많이 들어 있습니다. 풋고추 2개만 먹으며 하루 비타민C 권장량에 맞먹습니다. 너무 맵게만 먹지 않으면 건강에 이처럼 좋은 채소가 따로 없을 정도입니다. 풋고추는 그 특유의 매운맛이 과다 섭취하면 위와 식도, 장을 자극해서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위산과다나 궤양 같은 위장 질환이 있으면 조심해야 합니다.
고추는 남아메리카 원산으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원정에서 유럽으로 건너갔다고 전합니다. 유럽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것이 확실치 않은데, 일본의 문헌에는 임진왜란 시기에 전했다고 하지만 정설은 아닙니다. 고추는 한국 전래가 오래 됐다고 할 수 없지만,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채소이자, 향신료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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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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