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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로 가는 길은 멀었다. 아니 정확히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주산은 북악산, 오른편으로 우백호를 상징하는 인왕산, 좌청룡을 뜻하는 낙산의 산등성이에 절을 지었다고 하여 청룡사라고 한다. 그것도 고려 태조 왕건까지(922년) 거슬러 올라가는 꽤 깊은 역사를 품고 있다.
6호선 창신역에서 물어물어 찾아간 절은 생각과 다르게 비탈진 도로에 인접해 있었다. 마침 그 길을 내려오던 여성분에게 "이 근방에 청룡사라는 절이 있나요?" 배시시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 아가씨. 또 다른 분에게 길을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오리무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청룡사길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길 이름이 청룡사이니 당연히 근방에 절이 있을 텐데 모두 모른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몇 발자국 채 가기도 전에 절을 발견했다. 비탈길 도로에 인접해 있어서 오히려 더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할까? 절로 가는 길가에 붉은 단청을 칠한 솟을대문이 보인다. 문은 굳게 잠겨 있다. 비문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비각 같은데 단청이 있다면 궁궐과 관련된 건축물이거나 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옆, 청룡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긴다.
청룡사 입구. 사천왕상이 무서운 표정으로 방문객을 맨 처음 맞이한다. 반쯤 열린 문으로 사찰의 앞마당이 보인다. 오후의 햇살이 처마 위로 부서진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 선뜻 들어서기 어렵다. 경내를 조용히 둘러보니 대웅전이 보인다. 이번에 서울시에서 유형문화재로 지정했다고 하는 지장삼존상과 지장시왕상이 이곳에 있다. 1660년에 만들어져, 조선시대 불교 조각사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신도를 배웅하고 있던 비구니 스님에게 몇 가지를 여쭤보다 아까 오다 본 비각이, 아니 정확히 말해 그 안에 영조가 친히 쓴 비석이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귀가 솔깃해진다.
청룡사를 나와 그 비각으로 걸어갔다. 담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어 마치 절의 부속건물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정업원이 있던 자리다.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한 역사적 사건은 사극에서 많이 다루었던 스토리다. 정업원도 그런 극적인 역사와 맞닿아있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는 성 안에 집을 마련해주겠다는 세조의 제안을 거절하고 흥인지문(동대문) 밖, 동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거처를 마련한다.
이곳의 동쪽 봉우리인 동망봉에 올라 매일 영월쪽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헤어진 지 4개월 만에 단종이 숨을 거두었지만, 정순왕후는 80평생을 이곳을 떠나지 않고 아침, 저녁 매일 동망봉에 올라 영월쪽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50여 년 뒤 영조가 이곳에 찾아와 정순왕후의 이야기를 듣고 친히 정업원구기라는 비문을 쓰고 비석을 세워 추모하였다고 한다.
정순왕후 송씨의 이야기는 아릿하기도 하고 코끝이 찡하다. 모든 권력을 잃은 왕은 평민보다 더 참혹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 주변 사람이 살아가야 할 삶은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다. 단종은 유배를 떠난 지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정순왕후는 끝까지 사랑을 지켰다.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란 소설보다 정업원에 서려 있는 한 여인의 사랑이 더 마음을 홀린다. 연애에 쉽게 빠졌다가 쉽게 끝낼 수 있는 게 쿨 하다는 말로 포장되는 세상이다.
속도가 미덕이 된 세상에 단종과 정순왕후의 이야기는 왠지 담백하다. 그래서 더 가슴을 흔든다.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지장삼존상을 찾아갔다가 부처님은 만나지 못하고 뜻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에 흠뻑 취해 돌아왔다. 낙타의 혹 같은 낙산 자락으로 붉은 사랑이 넘어간다.
■ 청룡사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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