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흘러간 100년이 무늬로 남았다, 서글프고 아름답게

아기 달맞이 2009. 4. 23. 10:55



한 세기 전 풍광이 시내 복판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전북 군산시, 정확히 군산의 근대역사문화거리다. 일제의 흔적이 여태 남아 있기까지 군산은 심한 부침을 겪었고 숱한 곡절을 치렀다. 일제 강점기, 그러니까 군산항이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옮기는 전초기지였을 때 군산은 근대화 조선의 모습을 대표했다. 전주~군산을 잇는 신작로 ‘전군가도’(벚꽃으로 유명한 26번 국도의 옛 이름)가 시원스레 뚫렸고, 호남선 철도가 놓였고, 당시로선 호사스럽기 짝이 없는 일본식 가옥과 신식 건물이 속속 들어섰다. 그러나 광복 이후 새마을운동으로 대표되는 우리 식의 근대화 사업에서 군산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외됐다. 동네마다 헌 집 허물고 새 집 짓던 시절, 군산 시내의 일본식 건물은 철거되지 않았다. 이때 군산의 일본식 건물은 구시대의 잔재였다.

다시 세월이 흘러 오늘. 군산은 가장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는 도시 중 하나다.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천년학’, TV 드라마 ‘모래시계’ ‘빙점’ ‘야인시대’ 등 수다한 영상물이 군산에서 제작됐다. 바로 그 구시대의 잔재 때문이었다. 어쩌다 보니 군산은 일제 강점기 흔적이 가장 많이 남은 도시가 돼 버렸다. 군산에서 일제 잔재와 관련해 문화재로 지정된 것만 13점에 이른다. 일본에서도 자기네 옛 모습을 돌아보기 위해 군산을 방문하는 요즘이다.

군산시는 지금 월명동·신흥동·영화동 일대를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선정해 보존 작업에 한창이다.



군산 글=손민호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옛 군산세관 1905년 대한제국이 지은 세관 건물이다. 정확히 말하면 일제의 강압에 떠밀려 당시로는 거금인 8만6000원을 들여 대한제국이 지은 건물이다. 이곳이 군산 근대사 탐방의 출발점이다. 세관에서 나와 오른쪽의 내항으로 가면 ‘뜬다리’가 보인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스스로 오르내리는 다리다. 이것 역시 일제의 잔재다.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 선적 작업에 애를 먹었던 일제는 고심 끝에 수위에 따라 높이가 조절되는 다리를 고안했다. 그렇게 해서 일제는 호남평야의 쌀 200만 섬을 물때 걱정 없이 신속하게 제 나라로 실어 갔다. 현재는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월명동 일본식 가옥 이른바 적산가옥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신흥동의 구(舊) 히로쓰 가옥이다. 일본인 지주의 저택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여 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우리에겐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하야시의 집으로, 영화 ‘타짜’에서 평경장의 집으로 더 익숙하다. 구 히로쓰 가옥만큼의 규모는 못 돼도 신흥동이나 월명동에선 서너 집 건너 일본식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일본식 정원과 나무 복도, 다다미방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이영춘 가옥 TV 드라마 ‘빙점’과 ‘모래시계’의 주 촬영 장소였다. 광복 이후 개정병원 설립자 이영춘 박사가 살았다 하여 이영춘 가옥으로 불리지만 원래는 조선 최대 농장주 구마모토 리헤의 저택이었다. 20년대 당시 조선총독부 관저와 비슷한 건축비를 들여 지었단다. 건물 외관보다 실내가 더 호화롭다는데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지금도 이 박사의 후손이 살고 있어서다. 대신 대문은 열어 두고 있다. 고종 황제가 썼던 소파가 거실에 놓여 있단다.



경암동 철길 마을 차라리 서글픈 풍경이다. 기찻길과 바투 붙어 있는 일렬의 판잣집이 아슬아슬하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한 판잣집이 철길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오른편의 것이 방과 부엌이고, 왼편이 변소이거나 창고다. 물론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 이 철길의 이름은 페이퍼코리아선. 군산의 신문용지 제조 업체 페이퍼코리아사의 물건을 실어 나르기 위해 44년 놓았다. 총길이 2.5㎞. 디카족 사이에선 이미 명소가 된 곳인데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시마타니 금고 발산초등학교 뒤편에 서 있는 3층 콘크리트 구조물. 쓸모없는 창고로 보이지만 사연을 알고 나면 피가 거꾸로 솟는 울분을 삼켜야 한다. 이 구조물은 일제 강점기 시마타니 야소야란 대농장주의 금고였다. 골동품 수집가였던 그는 한국의 문화재를 수집해 여기에 쌓아 놓았다. 광복 이후 서울에서 박물관 사람들이 내려와 트럭 한 가득 골동품을 싣고 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가까이서 보면 튼실한 철제 자물쇠가 보이는데 USA 마크가 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한국전쟁 땐 우익 인사의 감옥으로 쓰였단다. 발산초등학교 터는 시마타니의 농장이었다. 지금도 학교 뒤편엔 시마타니가 다른 지역에서 옮겨 놓은 석탑과 석등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