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강남에서 한번 강북에서 한번 모여왔으나 내가 종로 5가로 근무지를 옮긴 뒤로는 오십대인 우리들의 취향에 딱 맞는 저렴한 음식값에 '쐬주' 안주로는 강남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짭짤한 안주가 있어 환영을 받았으나 그도 한 일년쯤 지나니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야. 요번 금요일 어떡할래?"
"벌써 한달 됐어?"
너무 종로 5가에서 만나니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겨우 분당 사는 사람 편의를 보아준다는 것이 인사동이다.
해물을 하는 식당을 찾아보니 샤브샤브집 아니면 젊은 층이 좋아할 퓨전요리집 뿐이다. 그러다 하나 눈에 띈다. '여자만', 거 이름도 그럴듯하고 더구나 꼬막을 해준단다. 벌써 몇 년 전인가? 후배 부친상 때문에 광주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곳에 문상을 다녀 온 일이 있었다. 과수원을 하는 후배집은 마당에 천막을 치고 꼬막 삶은 것과 홍어, 삶은 돼지고기가 나왔는데 돌아가신 분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초상집 음식에도 서열이 있다면 이 집 음식을 최고로 칠 정도로 아직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인사동에 있는 음식점답게 '여자만'은 복잡한 골목에 있었는데 어디가 앞문인지 뒷문인지 구별이 안가 나는 아직도 뒷문을 앞문으로 알고 있다. 아직 초저녁인데도 몇 개의 테이블에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메뉴판을 펼쳐보니 남도음식을 표방하는 음식점답게 꼬막, 매생이, 낙지, 서대, 굴비 등을 재료로 한 음식을 많이 나열해 놓았다.
남도사람들 하듯이 꼬막껍질 뒤쪽에 젓가락을 걸치고 껍질을 벗기는 재미를 알면 참꼬막을 시키는데 서투르니 양념꼬막과 벌교 녹차막걸리를 시킨다. 하얀 접시에 해바라기 씨처럼 담아 나오는 꼬막. 삶았다기 보다는 살짝 데쳤다는 표현이 맞겠다. 약간 비릿한 꼬막과 달싸한 막걸리가 착 달라붙는데 친구는 완전히 익히지 않아 별로 인 모양이다.
조정래씨가 이야기하는 '알싸한 비릿함'은 아무한테나 속맛을 보여주지 않는가 보다. '차지고 질긴' 개펄은 에이는 갯바람을 맞아 터진 거친 손으로 꼬막을 캐내는 민초의 끈질긴 삶을 은유하건만 삶은 꼬막은 섬섬옥수로 까서 먹으라고 입안에 넣어주는 기방의 원초적인 비릿함이 떠오르니 모순도 이렇게 비극적인 모순은 없다.
벌교의 한 식당에 가면 참꼬막, 꼬막무침, 양념꼬막, 꼬막전, 꼬막찌개를 갖가지 반찬들과 함께 한상 가득 차려 나온다. 서울에서 그렇게 먹을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겠지만 그래도 꼬막전을 안 먹을 수 없다. 그제서야 굳은 표정의 친구 얼굴이 좀 풀어지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이 음식점은 여자만(汝自灣-한자를 보면 대충 그 의미를 짐작할 만하다.)이라는 기발한 이름이 한몫 하는 것 같다. 누구나 '남자는 안되고 여자만이야?' 한다든지 와인이름을 '매독'이라고 붙여놓은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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