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작지만 뜻깊은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어렸을 때 예사로 보고 자랐던 친정 어머니의 한복 바느질 솜씨를 만났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전시회를 다녀보았지만 친정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 그 매운 손끝을 만난 어제의 전시회가 제게는 가장 뜻 깊게 남을 것입니다.
그 전시회는 동생의 '조각천침선공예' 작품 전시회였습니다. 몇 년 전, 둘째까지 유치원에 가게 되자 직장을 알아보던 동생은 "돈은 좀 아쉽겠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아이들 잘 키우는 것이 가장 큰 돈을 버는 일"이라면서 직장 알아보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대신 선택한 것이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 '내 일로 할 수 있는 무엇', 그 첫걸음이 한복 바느질이었습니다.
한복을 배우면서 동생은 시부모님과 친정 어머니의 누빔 조끼를 만들어 드리기도 했습니다. 명절에는 한복감을 떠다가 조카들 한복을 만들어 입히기도 했고 복주머니를 다 큰 조카들 몫까지 모두 만들어 세뱃돈을 넣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는 성신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침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출품한 작품들이 그동안 동생이 배운 작은 결실이었습니다.
작은 전시회에서 친정 어머니의 바느질 모습을 떠올리다
어린 시절, 해마다 이맘쯤이면 우리 집은 낯선 아주머니들로 붐볐습니다. 어머니께 한복을 맞추려고 온 사람들이었지요. 친정 어머니는 한복점은 차리지 않았지만 농사일 틈틈이 한복 바느질을 하셨고 그 야무지고 매운 손끝이 소문나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농사철에는 결혼이나 회갑 같은 잔치에 입을 급한 바느질만 하셨지만 바쁜 농사일이 끝난 늦가을부터 겨울 동안에는 설빔 바느질이 훨씬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맘쯤의 바느질감에는 어느 집 꼬마가 입을 색동저고리를 만들 색동천이 많았거든요.
어린 마음에 알록달록 색동천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한 조각이라도 얻고 싶어서 엄마가 색동천을 자르기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색동천 한조각의 기쁨도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더러는 섶이 되고 소매 끝이 될 작은 천을 쓰지 않는 조각으로 알고 자르고 놀아서 어머니를 난감하게 한 적도 많답니다.
뜨겁게 달궈진 인두를 방바닥에 내려놓아 장판이 눌러 붙어 진땀나게 한 적도 있고요. 고구마 구워 먹는다고 인두를 달굴 화롯불을 몽땅 써버린 적도 몇 번은 기억납니다. 이런 우여곡절 속에서 만들어진 한복들은 보자기에 싸여 음력설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딸 넷을 두었지만...
지난해 칠순에 접어 든 친정 어머니. 5년 전, 모시와 삼베를 몇 필 떠다가 아들딸이며 사위와 며느리 여름 적삼 등을 지어 입히신 후 오랜 동안의 한복 바느질을 접었습니다.
딸 넷을 두었지만 아무도 어머니의 한복 바느질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한복을 배우기 전까지는요. 우리 자매들은 어렸을 때부터 바지쯤은 스스로 줄여 입었고, 인형 옷을 실제의 옷처럼 만들어 입히고 놀아 "그 엄마에 그 딸들"이라는 칭찬도 자주 들었지만 아무도 바느질을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재봉틀을 쓸 때나 길거리에서 고운 한복을 입은 모습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바느질하던 모습이 떠올랐고 아무도 물려받지 않고 묻힌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가 아깝고 아쉬웠습니다. 어머니 앞에 무심히 흘러버린 세월이 원망스러운 만큼이나 죄송함도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 동생이 한복바느질에 관심을 보이고 바느질을 배우러 다니는 것을 보면서 겉으로는 "그 답답한 것 뭐 하러 배우냐?"고 퉁명스럽게 대했지만 속으로는 기쁨과 기대가 컸습니다. 제발 엄마 솜씨 좀 이어 보았으면 하면서 말이지요.
그 작은 첫 결실. 어제, 동생이 출품한 작품들, 한 땀 한 땀 정성 가득 들어간 그 작품들을 보면서 그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 건강하세요
"엄마, 오늘 명희 작품 전시회에 다녀왔네. 내 동생이어서 그런지 명희가 바느질을 제일 잘한 것 같아. 제일 돋보이더라고. 하나하나 보다 보니까 우리 어렸을 때 엄마가 한복 바느질 하던 모습이 생각나대. 엄마가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전화 드렸어요."
"엄마가 가보지도 못하고... 그래, 얼마나 잘 했드냐? 그래 무엇을 만들었던고?"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어떻다고 말하지 않으면 엄마 닮아 잘했다는 거, 거짓말이라고 하겠지요? 모시조각보, 비단조각보, 골무 2개, 도장집 3개, 필낭 2개, 복주머니, 가위집, 인두판과 인두집, 바늘꽂이, 토시 한 쌍... 또 뭐가 있더라. 암튼 명희가 가장 많은 작품을 내놓았고 엄마 딸이라 그런지 제일 잘한 것 같아서 기분 참 좋대. 엄마가 보셨음 참 좋았을 건데..."
"어구야. 우리 딸이 언간치(제법 많이) 했네. 그렇게 많이 했드노?... 그래, 잘 다녀왔다. 애썼다."
행복해 하는 친정 어머니의 기분 좋은 목소리를 들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지난해 칠순에 접어 든 친정 어머니의 한복 바느질 모습은 한 해를 더할 때마다 더 그립고 아쉽기만 합니다. 새해 나이 한 살 더 잡수시지만 건강만큼은 나이를 더하지 말고 지금 만큼만이라도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동생이 만든 복주머니에 복 가득 채워 새해의 복 전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 새해에도 건강하게 오래 오래 행복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현자 기자
덧붙이는 글이밖에도 필낭, 안경집, 배씨 댕기 등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던 전시회였습니다. 섞여 함께 진열되거나 단독으로 전시되고 있었지만 다른 분들과 동생의 작품은 별도로 구분 짓지 않았습니다.
이 전시회는 성신여대평생교육원 정기전시회로 12월 27일부터 12월 29일까지 성신여대수정관에서 열렸으며 '독일 플로리스트' '만화예술 창작' '사진' '조각천침선 공예사' '화훼장식 기능사' 작품을 함께 전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