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재처럼

한복과 전통포장 연구가 이희숙씨의 ‘보자기 예찬’

아기 달맞이 2009. 2. 16. 00:32

빛깔 고운 보자기의 마법, 선물의 기쁨 두 배 되죠
한복과 전통포장 연구가 이희숙씨의 ‘보자기 예찬’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난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 들은 이야기다. 결혼식 때 친구, 친지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누가 무엇을 주었는지 대충 잊어버렸는데 한 가지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건 바로 빛깔 고운 천보자기에 싸서 보낸 선물이었다.
종이로 포장된 선물이야 뜯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선물을 쌌던 보자기는 가구 덮개로 내내 유용하게 쓰고 있다는 거다. 그 보자기를 볼 때마다 친구의 선물이 생각난다는 얘기였다.
“종이 포장은 테이프로 붙이게 되어 있어서 열기 나쁘지만 보자기 포장은 매듭을 탁 풀면 선물이 한 눈에 들어오지요. 같은 선물이라도 고급스러운 전통 천 포장으로 정성이 담겨 있으면 받는 기쁨이 두 배로 클 것 같지 않아요? 또 색깔 곱고 디자인이 섬세한 보자기 자체가 선물이 되니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겁니다.”
20년 가까이 한복전문가로 이름을 인정받아오다 7년 전부터 전통포장 보급에 힘쓰고 있는 이희숙씨의 ‘보자기 예찬론’이다.
보자기 매듭을 풀면 한 눈에 들어오는 반가운 선물
이희숙씨가 요모조모 궁리해 내놓은 보자기 포장법도 다양하다. 핑크 색의 세모시 끝에 붉은 산호 장식을 붙인 ‘한산 모시 장식보’는 의류나 장신구, 일반소품뿐 아니라 음식을 선물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홍화·치자·양파·쑥 등의 자연에서 얻은 천연 염색재료로 물들인 ‘자연염색 면 음식보’는 떡이나 한과,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선물하기에 좋도록 색깔도 다양하다.
상품권이나 공연 관람권을 넣은 봉투를 섬세한 자수가 놓여진 ‘명주 티켓보’로 싸 선물하면 봉투만 건네는 손길보다 훨씬 정겹고 우아하지 않을까. 특히 외국 손님들에게 우리 것을 알리는 선물 포장, 한국 전통의 미를 소개하는 관광 상품으로도 제격이다.
“서양 포장인 가방과 종이봉투가 일반화되면서 오랫동안 보자기는 촌스러운 것, 가난하던 시절에 쓰던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지요. 하지만 생활이 여유로워지면서 우리 것에 대한 관심도 달라졌잖아요.”
혼수 용품을 싸 보내면서 제가 만든 천 보자기 포장을 써보니 반응이 무척 좋고 원하는 손님들이 많아져서 이걸 본격적으로 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값비싼 선물을 하면서 격에 맞는 포장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가지 수가 많은 혼수품의 경우 보자기 안에 함께 모아 포장하면 비용도 절감됩니다.”
보자기로 보기 좋게 포장하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상자를 정사각형 보자기 가운데 놓고 네 귀를 모아잡고 모서리를 정돈해준 뒤 질감이 같은 띠로 묶어주고 나서 위로 모아진 천을 뒤로 접어 넘겨주면 된다. 상품권이나 지폐를 넣은 봉투는 마름모꼴로 놓고 양옆 모서리를 봉투모양대로 포개 접어 끈으로 묶어준다.
손재주가 따로 필요한 일이 절대 아니라는 것. 전통포장 강습을 해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고 있지만 “한 시간이면 다 배우는데 무슨 강습”이냐고 정중히 거절하곤 한다. EBS방송에서 일주일간 그의 전통포장 강습을 소개한 적 있는데 같이 일한 출연자들도 “이렇게 간단하고 편리한 걸 여태 몰랐다”며 즐거워했다.
삼청동에서 한복전문점 <이희숙의 혼례이야기>를 운영하는 그는 원래는 미술을 전공하고 염색과 나염 일로 출발했다. 그가 만들어내는 고운 색깔에 반한 사람들로부터 “바느질은 다른 데 맡겨서라도 혼수 한복을 좀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감을 맡았던 게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최고급 손님’들이 줄이어 찾는 한복을 만들고 있다.
한복은 힘들고 불편한 옷이라는 오해 안타까워
이씨가 만드는 한복은 유행을 타는 장식 없이 옷감 자체의 재질과 색감으로 멋을 살리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은은히 살아있는 옷으로 알려져 있다.
대님이나 고름을 묶는 대신에 단추로 대체하는 실용한복은 만들지 않는다. 다소 불편하다고 해서 그런 ‘디테일’을 빼면 전통 옷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전통포장코너 <예>(02-3479-1234)를 차렸다. 궁중이나 양반집에서 쓰던, 화사한 자수 문양이 놓여진 전통 보자기에서부터 종이재료인 펄프를 섞어 독특한 질감으로 만들어낸 인도실크 봉황 장식보, 수작업으로 한지를 겹겹이 붙인 상자에 전통 문양을 오려 붙인 한지 공예함 등이 모여 있는 ‘전통포장 전시장’이다.
전통 포장 개발이라는 새 분야를 개척해오면서도 역시 그의 본업은 한복 만들기다. 그래서 한복이 결혼식 예복으로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을 무척 안타까워한다.
“정장을 입으려면 갖춰야 하는 브래지어·거들·스타킹은 불편하다고 생각 안 하면서 한복 속옷 갖춰 입는 건 왜 힘들어하지요? 속치마로 가슴을 잘 정돈해주고 한복을 입으면 브래지어로 죄는 것보다 훨씬 편안해요. 한복은 개인의 체형에 따라 만드는 맞춤옷이기 때문에 잘 만든 옷은 매무새도 곱고 거동하기도 수월합니다.”
살다보면 드물지 않게 찾아오는 특별한 기회를 우리 옷과 선물 포장으로 가꾸려는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진다면 전통 옷감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에도 더욱 힘이 실릴 것 같다.
이희숙씨가 선보이는 ‘전통 매듭 포장’
명주 티켓보
정성스럽게 손 자수를 놓은 명주 손수건에 연극·오페라·콘서트 등 공연 티켓이나 상품권을 넣은 봉투를 포장해 선물한다.
한산모시 장식보
핑크색 감도는 단아한 세모시는 의류·액자·장신구·일반소품과 건강식품 선물 포장에 어울린다. 보자기는 선물의 종류에 따라 색깔과 천 재질을 다양하게 맞출 수 있다.
인도실크
봉황 장식보
종이 재료인 펄프가 섞여 질감이 독특하고 상상 속의 길조인 황금색 봉황으로 존경의 뜻을 표현한 실크 보자기는 옷·예단·예물·이바지 음식 포장에 좋다.
손 염색보
붓으로 여러번 색칠한 염색이라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을 이룬다. 매듭 부분은 금색 수가 놓여진 끈으로 네개의 귀를 살짝 묶어준다. 향수·화장품·지갑·벨트·보석 선물에 어울리는 화려한 포장이다.
한지 공예 보석함
한지를 겹겹이 붙인 합지 위에 전통 문양을 오려 붙이고 무광 라카 칠을 해 선물 상자로 받아 반지·목걸이·시계·브롯치 등 작은 소품류를 보관하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