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에선 茶 한잔도 수행인 것을… |
[조선일보 유석재, 채승우 기자] 맨해튼에서 그녀는 커피를 좋아했다. 가끔 우유를 탄 홍차에 레몬 한 조각을 얹기도 했다. 그건 뭐, 그저 그랬다. ‘보석을 잘 찍는다’고 온 뉴욕에 소문난 포토그래퍼, 24년 동안의 미국 생활은 이제 몸에 꼭 맞는 옷과 같았다. 하지만 지천명(知天命) 무렵 닥친 향수(鄕愁)가 도로 태평양을 건너게 재촉했다. 1995년, 한국은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그대로인 것은 오직 깊은 산속 절들뿐이었다. 그리고 산사(山寺)에서 처음 맛본 차(茶) 맛. “그래요. 그만 넋을 빼앗겼죠.” 사진작가 이정애(李正愛)씨가 새로 낸 책 ‘산사에서 만든 차(Secret of Temple Tea·정리퍼블리케이션)’를 읽는 독자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대나무향이 배어 은은하고 부드러운 맛이 깃든 죽향차, 방금 연못에서 따 온 푸릇푸릇한 연꽃 위에 이슬처럼 찻방울이 떨어지는 하소백련차, 갓 피어난 접시꽃 봉오리를 띄워 붉은 물이 번질 것 같은 접시꽃차…. 50종이 넘는 희귀한 차들의 종류와 만드는 법들도 그렇지만, 맛과 향, 산사의 분위기까지도 고즈넉이 간직하고 있는 섬세하고도 미려한 사진들 때문이다. “산사에 갈 때마다 스님들은 차를 권했어요. 참 신기했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으면… 말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마음끼리 통하는 교감이 생기는 거예요.” 그게 차의 마술이었다. 차를 찾아 사진 속에 담기로 했다. 3년 동안 전국에 흩어진 절들을 찾아 다녔다. 송광사에선 죽로차를, 쌍계사에선 국화차를 맛봤다. 숨어있는 암자에도 차 향기는 흘렀다. 남탑산방의 난꽃차, 은신암의 오가피차, 금선암의 청발효차…. 어느덧 한 잔의 차 속에 계절과 자연, 선방(禪房)의 향기까지 녹아들고 있었다. 하지만 계절까지 담기란 쉽지 않았다. “진달래꽃 피었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보면 간밤에 흩뿌린 비와 함께 죄다 떨어져 버렸기 일쑤였다. “어떡하겠어요. 내년에 다시 올 수밖에요.” 어느 봄, 청량사를 찾았을 때였다. 산 가득 동박꽃이 피어 창문과 장지문으로 꽃 향기가 흘러 들었다. 물을 끓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를 때면 찻잔에 물을 붓고 동박꽃 한 송이를 띄워 마셨다. 눈을 지그시 감고 5분 정도 앉아 있었다. “아무 향이 없네요….” “한 잔 더 드시겠습니까.” “저는 됐어요….” “두 잔 이상 마시는 사람은 없어요, 허허허….” 향이 찾아와 스스로 찻잔 속으로 들어오는, 그런 차란다. 동박꽃차는. 어디 동박꽃차뿐이겠는가. 선다일미(禪茶一味), 차 맛을 알아간다는 건 곧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수행(修行)인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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