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인호

최인호씨 별세 관련 뉴스 모음

아기 달맞이 2013. 9. 29. 08:20

영원한 문학청년 최인호] 죽음과 맞선 5년, 그 어떤 작품보다 아름다웠다2008년 침샘암 발병 후 은거하며 전신 항암치료… 성경 읽으며 고통 잊어

빠진 손톱에 골무 끼우고 발톱에는 테이프 감고 1200매 장편 발표하기도한국일보|박선영기자|입력2013.09.26 21:11|수정2013.09.26 23:17

 

앓고, 절망하고, 기도하고, 희망을 갖는 혹독한 할례의 의식…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글을 쓸 수 없는 허기…
내가 작가가아니라 환자라는 것이 제일 슬펐기 때문


"죽음과 대면한 최인호의 정신과 태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학작품이었다. 누가 써도 그대로 소설이 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물론 최인호 자신이다."

26일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 전날 타계한 소설가 최인호씨의 빈소에서 만난 고인의 절친했던 문우 김형영(69) 시인의 말이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가까스로 멈추려 이른 아침 산에 올랐다 빈소를 찾았다는 그는 출판사 샘터에 근무하며 35년이라는 국내 최장수 연재 기록을 세운 자전소설 <가족>을 기획하고 진행한 실무자이자,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고인의 대부이기도 하다. "죽음을 두려워한 것 같지도 않았다. 영생이 있다고 자신했다. 그의 마지막은 작가로서도, 종교인으로서도 더 없이 훌륭했다."

고인이 암 진단을 받은 것은 2008년 5월. 목 부위에 덩어리가 만져져 사돈인 서울성모병원 흉부외과 조건현 교수를 찾았다가 침샘 부위에서 종양을 발견했다. 국내에서 연간 200~300명 정도에게서만 발병하는 희귀암이었다. 이미 병세가 4기까지 진행된 상태여서 바로 암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1년 후 재발했다. 이때는 이미 폐까지 암이 전이된 상태였다. 고인의 주치의인 강진형 종양내과 교수는 "이미 수술 후 방사선치료까지 마친 상태라 전신적인 항암치료만 가능했다"며 "면역 기능이 떨어져 폐렴에 걸렸던 지난해 봄에는 치료 후유증으로 기도가 좁아져 호흡과 음식물 넘기기도 힘들었다"고 전했다.

5년 간의 투병은 그가 써낸 어느 작품보다도 뜨거웠다. 고인은 올 봄 투병기를 묶어 펴낸 <인생>에서 이 기간은 "가톨릭 신자로서 앓고, 절망하고, 기도하고, 희망을 갖는 혹독한 할례의 의식"이었다고 고백했다. 병증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병원 휴게실에 비치돼 있는 성경책을 꺼내 들고 위로가 될 수 있는 한 구절을 발견하게 해 달라고 간구한 적도 있다. 아무데나 펼치니 눈에 들어오는 구절은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마태복음 28장20절. 그는 병보다 무서운 게 걱정과 두려움인 것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되레 "지금 이 순간 병상에 누워 계신 환자 여러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내 다정한 아픈 사람들아, 그대의 병을 대신 앓고 싶구나. 아프지 말거라, 이 땅의 아이들아, 그리고 엄마야 누나야, 창 밖을 보아라. 새봄이 일어서고 있다."

암 진단 후 고인은 스스로를 "암의 사립문 안에 철저하게 가두는"은거의 삶을 살아왔지만, 문학적으로는 가톨릭 서울주보에 투병기를 연재하고 원고지 1,200매 분량의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발표하는 등 생애 가장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투병 생활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글을 쓸 수 없는 허기"였고, "내가 작가가 아니라 환자라는 것이 제일 슬펐기 때문"이다.

2011년 "하나님께서는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을 굳게 믿는다"는 '작가의 말'로 시작하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발표하며 오랜 만에 기자간담회에 모습을 드러낸 작가는 "야, 이 자식들아, 나는 살아있다"는 영화 '빠삐용' 속 대사를 인용하며 호쾌하게 웃었다. "내년 만우절에 기자회견을 열어 암에 걸렸다고 한 건 외로워서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었다, 뻥이었다고 소리치는 게 소원"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항암 치료로 빠진 손톱에 고무 골무를 끼우고, 빠진 발톱에는 테이프를 칭칭 감고 구역질이 날 때마다 얼음 조각을 씹으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원고지 20에서 30매씩 미친 듯이 써서 딱 두 달 만에 완성한 작품이었다.

올해 다시 폐렴으로 입원한 후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던 고인은 추석 연휴인 20일 병세 악화로 다시 입원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주님이 오셨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영면에 들었다. 마지막 나날까지 새 책을 집필하며 삶이라는 최후의 유작 속으로 걸어 들어간 이 영웅을 기리기 위해, 빈소에는 이어령 전 이화여대 석좌교수, 소설가 김승옥씨, 김한길 민주당 대표, 이수성 전 국무총리, 문학평론가 김병익씨 등 많은 인사들이 조문 행렬을 이어갔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소설가 최인호 별세] 영원한 청년작가 깊고 푸른 밤에 별들의 고향으로..

최인호 침샘암 5년 투병 끝, 등단 50주년에 영면서울신문|입력2013.09.26 03:32

[서울신문]'영원한 청년 작가' 최인호는 문단에 첫발을 딛는 순간부터 특별했다. 그에게는 '기록을 만드는 남자'라는 별명이 끊임없이 붙어다녔다.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 '최연소 신문 연재 소설가',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 같은 수식어가 언제나 그의 이름 앞에 자리했다.

그러나 작가의 이름 석자보다 더 굳건한 상징어로 따라다닌 '영원한 청년 작가'라는 호칭은 비단 그가 서울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열여덟살의 나이에 등단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기성과 청년 문화, 엘리트와 대중의 배타적 구분을 거부하면서 통기타와 청바지로 상징되는 19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가 됐다. 젊은이들의 문화가 퇴폐적이라는 비판에 휩싸이자 최인호는 1974년 발표한 '청년문화 선언'을 통해 이렇게 외친다. "고전이 무너져 가고 있다고 불평하지 말고 대중의 감각이 세련되어 가고 있음을 주목하라. 그들을 욕하기 전에 한 번 가서 밤을 새워보라."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입선해 등단한 최인호는 1973년 조선일보에 '별들의 고향'을 연재하면서 최고의 대중 작가로 주목받았다. 젊은 여성 '오경아'의 삶을 통해 현대 소비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린 '별들의 고향'은 단행본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이장호 감독·신성일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별들의 고향'을 비롯한 대중 소설을 발표하면서 '상업주의 작가', '퇴폐주의 작가'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1970년대 발표한 초기 소설은 산업화의 격랑에 휩쓸린 한국 사회의 변동과 개인의 문제를 예민하게 포착했다. '술꾼'과 '모범동화', '타인의 방', '가면무도회', '다시 만날 때까지', '깊고 푸른 밤' 등을 발표하며 "1960년대 김승옥이 시도했던 '감수성의 혁명'을 더욱더 과감하게 밀고 나간 끝에 가장 신선하면서도 날카로운 감각으로 삶과 세계를 보는 작가"(문학평론가 조남현)라는 찬사를 받았다. '깊고 푸른 밤'으로 이상문학상을 받는 등 사상계 신인문학상과 현대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휩쓸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았다. 또 '바보들의 행진'과 '병태와 영자', '고래 사냥' 등의 각본을 쓰면서 영화 작업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1980년대에도 '불새'와 '위대한 유산' 등을 펴내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던 작가는 1987년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가톨릭에 귀의하면서 '제2기 문학'을 시작했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성공과는 달리 황폐해지는 내면이 그를 종교로 이끌었다고 고백했다.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은 그는 '잃어버린 왕국'과 '저 혼자 깊어 가는 강'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동화집 '발명왕 도단이'를 펴내기도 하며 가톨릭 전문지 서울주보에 칼럼을 연재했다.

1997년 한국일보에 연재한 '상도'는 300여만부나 팔려 나갔다. 조선시대 상인의 삶을 통해 돈을 벌고 쓰는 일의 도(道)를 그린 '상도'는 이후 중국에서도 출간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2003년부터는 3년간 서울신문에도 대하장편소설 '유림'을 연재해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조선 조광조의 개혁정치를 비롯해 성리학을 계승·발전시킨 퇴계 이황 등 유림의 삶을 통해 2500년 유교 역사를 형상화했던 작품은 작가적 시야를 크게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 한순간도 시들지 않았던 푸른 창작열은 2008년 침샘 부근에서 암이 발견되면서 위기에 직면한다. 그러나 생사를 초월한 의지로 펜을 내려놓지 않던 작가의 세계는 역설적이게도 암을 통해 '제3기 문학'을 발아시켰다.

2011년 발표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의 머리말에서 그는 "이 작품은 암이 내게 선물한 단거리 주법의 처녀작이다. 하느님께서 남은 인생을 더 허락해 주신다면 나는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이후 '제2기 문학'에서 '제3기 문학'으로,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시 출발하려 한다"면서 "남에게 읽히기 위한 문학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나중에는 단 하나의 독자인 나마저도 사라져 버리는 본지풍광(本地風光)과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창세기를 향해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투병 중에도 산문집 '하늘에서 내려온 빵'과 '천국에서 온 편지' 등을 펴낸 작가는 등단 50주년을 맞은 올해 초 그동안의 연재 글 등을 묶은 산문집 '최인호의 인생'을 펴냈다.

갑작스럽게 찾아 온 병마와 싸우는 고통과 공포를 솔직히 써내려간 책에서 작가는 "그동안 명색이 작가랍시고 거들먹거리고 지냈음이 문득 느껴져 부끄럽다.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한다"면서 "혹여나 이 책을 읽다가 공감을 느끼면 마음속으로 따뜻한 숨결을 보내주셨으면 한다. 그 숨결들이 모여 내 가슴에 꽃을 피울 것이다"고 적었다. '최인호의 인생' 말미에 자리한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는 그가 책으로 펴낸 마지막 글이 됐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최인호 별세’ 별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작가 최인호’의 이름만 들어도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나이를 먹어도 세월을 거꾸로 간다. 그래서 그에게는 ‘영원한 청년작가’라는 애칭이 붙여졌다. 그런 그가 오늘(25일) 오후 7시2분 암으로 별세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그는 2008년 침샘암이 발견돼 5년째 투병생활을 해왔다. 퇴근하는 길에 버스 안에서 ‘속보’로 뜬 것을 보고 멍한 기분을 느꼈다. 향년 68세, 너무도 아까운 나이다. 그는 이렇게 어둠이 내리는 가을저녁 별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올해 문단에 데뷔한지 50주년 "즐거운 잔치 모임 갖고 싶다"


집에 와서 ‘작가 최인호’의 발자취를 찾아봤다. 그러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시사저널>에 최인호와 관련된 글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작가 최인호는 올해 문단에 등단한 지 꼭 50주년이 된다. 그는 이것을 기념해 올해 초 신작 에세이집 <최인호의 인생>을 펴냈다. 최 작가는 인터뷰를 요청한 회사 선배에게 미안해서인지 정중하게 엽서를 보내왔다.

“만나서 인사도 나누고 그간에 어떻게 지냈는지 환담도 나누고 싶었는데 ‘가톨릭 피정(避靜)’ 중이라 그럴 수 없다”며 엽서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올해로 문단에 데뷔한 지 50년을 맞은 소회도 담아 보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즐거운 잔치의 모임’을 갖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엽서를 보낸 지 4개월도 채 안 돼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가 꿈꿨던 ‘즐거운 잔치 모임’ 대신 영결식을 치러야 한다.


암 투병 중 <최인호 인생> 집필


책은 그의 삶의 발자취 뿐 아니라 한동안 뭘하며 지냈는지 알려주고 있다.

“그동안 나는 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금껏 나는 몸이 건강하여 불의의 교통사고로 짧게 병상에 누웠던 적은 있어도 병에 걸려 입원 생활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평소에 병원은 나와 상관없는 별도의 공간이며 운이 나쁜 사람들이나 가는 격리된 수용소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던 내가 어느새 5년째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라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금언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된 요즈음이다.”

 

그는 올해 자신의 운명을 예견했던 것일까. 그나마 <최인호 인생>을 책으로 펴내면서 그가 열광시켰던 독자들에게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선물’을 남겼다.

 

이 책에는 그가 암 선고를 받고 좌절에 빠진 것부터 시작해,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담담히 담아낸 일기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다. 그래서 마치 다른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2008년 여름, 나는 드디어 ‘내 차례’를 맞아 암이라는 병을 선고받았다.

가톨릭 신자로서 앓고, 가톨릭 신자로서 절망하고, 가톨릭 신자로서 기도하고, 가톨릭 신자로서 희망을 갖는 혹독한 할례 의식을 치렀다. 나는 이 할례 의식을 ‘고통의 축제’라고 이름 지었다. 아직도 출구가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의 피정 기간 동안 느꼈던 기쁨을 많은 분께 전하려고 한다.”


가을 길목에 낙엽처럼 쓰러지다


그는 암에 걸렸다고 자포자기 하지 않았다. 암에 걸린 이후를 새로운 삶으로 생각했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봤다며 위로했다. 이전에 깨닫지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내딛으며 꽃을 발견하고 계절을 느끼고 아낙의 순수함을 봤다. 그리고 자신의 기쁨은 누군가의 슬픔에 빚을 지고 있으며, 자신의 아픔으로 인해 누군가의 건강이 회복되리라는 세계의 질서와 이치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책의 맨 마지막 문단을 이렇게 썼다.

“나는 비틀거리며 봄빛이 가득한 언덕길을 올라갔다. 어쨌든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헛맹세에. 어느 날 봄날은 오고, 그리고 봄날은 언젠가 갈 것이다.”

작가 최인호는 봄빛이 가득한 날에 인생의 언덕길에 올랐고, 가을 길목에서 낙엽처럼 쓰러졌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8일 오전 7시. 장례미사는 정진석 추기경 집전으로 28일 오전 9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래 내용은 최인호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해 놓은 글을 그대로 가져왔다. 아래 사진도 블로그에 있던 것인데, 평소 그가 맘에 들어하던 것으로 보인다.

청년작가 최인호는 누구?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63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되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의 방』『잠자는 신화』『명가』『개미의 탑』『위대한 유산』 등이,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도시의 사냥꾼』『잃어버린 왕국』『길 없는 길』『왕도의 비밀』(1995, 2004년 『제왕의 문』으로 개제) ,『상도』『해신』『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침샘암은 어떤 병?


최인호 작가는 침샘암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다. 희귀암인 침샘암은 주로 귀밑샘에서 발병하며 턱밑샘이나 혀밑샘 등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발병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침샘 부위에 방사선을 쪼이거나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경우, 직업적으로 분진에 많이 노출되는 경우 발병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 발견 땐 수술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종양이 다양하고 복잡해 치료가 쉽지 않은 특성이 있다.


증세는 턱 주위가 붓고, 얼굴·목·뺨 등에 통증이 일어나며, 타액선의 위치에서 종물이 만져지기도 한다. 특히 이하선은 안면신경이 지나가기 때문에 여기에 종양이 생기면 얼굴의 감각이 없어지거나 얼굴근육을 잘 움직일 수 없게 된다.

 

평소에는 통증이 없다가 병세가 악화된 후 고통을 느껴 병원을 찾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가 많다. 침샘암 예방을 위해서는 입 안을 청결하게 관리하고 입안이 말라 점막에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물을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지난 25일 5년간 침샘암으로 투병 중이던 소설가 최인호 씨가 병세가 악화되 서울성모병원에서 입원 치료 도중 끝내 오후 7시 10분쯤 별세하시고 말았습니다. 그는 올해 향년 68세로 70년대와 80년대 한국 사회를 담아낸 청년작가로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학계의 한 거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가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후 잇달아 내놓은 소설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겨울 나그네" 등은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수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그의 많은 소설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지만, 그 중 역사소설 중 "상도"와 "해신"은 각각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었지요. 저 또한 두 드라마를 모두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부끄럽게도 그 원작자가 최인호 씨인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최인호 별세 사망원인 침샘암, 최인호 빈소 발인 애도물결 속 그가 남긴 마지막 말

 

소설가 최인호 씨는 그동안 침샘암 투병을 해오면서도 팬을 놓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는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아 지난 2월 자신의 문학 인생 50년을 정리한 산문집 "최인호의 인생"을 출간하며 아직도 건재함을 보여 주기도 했고 2011년 신작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펴낸 것에 이어 최근에는 장편소설 "할"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 열정은 여전히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 소원이 있다면 환자로 죽지 않겠어요. 나는 작가로 죽겠습니다. 원고지 위에서"라고 말입니다.

 

 

 

 

 

 

최인호 씨의 빈소를 찾은 배우 안성기는 "영화 쪽에도 상당히 큰 도움을 많이 주셨고, 심지어 감독을 한 편하신 것도 있고"라고 말하며 그분에 대한 추억과 업적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마음을 더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최인호 작가의 별세에 애도를 표하면서 떠나 버린 그의 마지막을 안타까워하며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손미나 KBS 전 아나운서는 "최인호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 아아... 암 투병중에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셔서 그 자체만으로 많은 이에게 용기가 되셨건만, 삶이란 참...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전했고 소설가 이외수는 25일 밤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소설가 최인호, 향년 68세로 별세. 천재성이 번뜩이는 작품들을 많이 쓰셨지요. 아직 더 활동할 수 있는 나이인데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고인을 추모하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또한, 윤영미 전 SBS 아나운서도 "소설가 최인호 선생, 생을 마치셨군요 초등학교 때 별들의 고향을 읽으며 소설에 눈떴고, 여고시절 불꽃을 읽으며 주인공 영후를 흠모했으며 고래사냥 겨울나그네 영화를 보며 그의 감성에 가슴저리던 시절. 이젠 진정 추억속으로 사라지는군요."라며 안타까워했으며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암투병 중에도 소설과 산문집을 내놓으며 활발히 작품 활동하셔서 곧 털고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방황하는 청년들의 꿈을 이야기했던, 그래서 저의 청년 시절을 위로해주셨던"이라고 말하며 명복을 빌었습니다.

 

 

 

이렇듯 그 고통스러운 악성암에 걸리시고 나서도 병마와 싸우며 절대 만년필을 놓지 않았던 그의 정신을 알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고 존경하며 그의 명복을 비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현대문학상과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등 한국을 대표하는 상들을 모두 휩쓸었던 그였고 본격문학은 물론 대중문학 모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우리나라 문학계의 거장이었던 만큼 그의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죽음에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현재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으며 발인은 28일 오전 7시30분에 진행된다고 합니다. 또한, 이날 오전 9시엔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생전 친분이 깊었던 정진석 추기경이 직접 고 최인호 씨 영결 미사가 거행한다고 합니다. 끝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