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얼굴) 대통령이 26일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매달 20만원씩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데 대해 “저를 믿고 신뢰해주신 어르신들 모두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가 생겨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세계경제 침체와 맞물려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세수 부족과 재정건전성의 고삐를 쥐어야 하는 현실에서 불가피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대통령은 ‘죄송한 마음’이라고 표현했지만 정치권은 사실상의 대국민 사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상치 못한 세수 부족이란 현실에 맞닥뜨리면서 복지 공약을 일부 거둬들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란 평가다. 박 대통령이 사과한 건 윤창중 사건(5월 13일), 장·차관급 인사 낙마 사태(4월 12일)에 이어 세 번째다.
대통령이 사과는 했지만 기초연금 공약을 수정하겠다는 것인지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민주당이 충돌하면서 대치 정국이 가팔라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원점 재검토하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은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며 “공약의 포기는 아니며 공약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은 변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재정 상황은 우리 경제에 대한 믿음의 문제”라며 “박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분명히 나아질 거란 전제를 갖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공약 파기라고 반발하며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소득상위 30%의 어르신들에 대해서도 재정 여건이 나아지고 국민적 합의가 있다면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도 증세 등 구체적인 방법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공약 후퇴 논란이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공약파기 거짓말 정권 규탄대회’에서 “박 대통령의 모든 공약이 거짓공약이었다는 사실이 하나하나 확인되고 있다”며 “아이들도 속았고 노인도 속았고 온 국민이 속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무엇보다 어르신들을 이용한 박 정권은 불효정권”이라며 “어르신들께서 이 불효정권에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달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실을 고려한 신축적 운영 결정에 대해선 평가하면서도 향후의 청사진 제시는 미흡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이 이날 대선 때 복지 확충 등을 위해 합리적 조세 수준 결정을 위해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던 국민대타협위원회를 만들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말해 국민대타협위의 운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못한 이유로 세수 부족을 든 만큼 대타협위에서 복지정책의 조정이나 증세를 논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 스스로 지난 대선 때 증세 없이도 복지 증대가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취임 이후에도 증세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증세 논란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얘기다.
신용호·강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