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자수 명장 유희순 선생이 자수의 즐거움을 전하기 위해 라이프스타일러 권형민 실장이 사는 안골마을을 찾았다. 서툰 손놀림이지만 색색의 실이 만나 예쁜 꽃이 활짝 피고 나비는 수틀 위에서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안골마을 여인들은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며 한 땀 한 땀 간절한 마음을 천 위에 수놓기 시작했다. |
![]() 1 전통자수를 놓을 때 사용하는 실은 우아한 광택을 지닌 견사를 주로 사용한다. 작품의 용도와 무늬, 기법에 따라 푼사의 굵기, 모양 등을 다르게 꼬아서 쓴다. 금사와 은사 등은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구입하기가 다소 어렵다. 2 자련수, 자릿수, 이음수, 평수 등 다양한 자수기법으로 수를 놓아 바느질 기법마다 다른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3 유희순 선생이 직접 만든 수틀로 작품에 맞게 사이즈 등을 조절해 제작했다. 옛 여인들이 바늘과 실로 그리던 그림, 자수 똑같은 도안을 가지고도 천에 따라 실에 따라 또 색을 배열하는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온다. 여남은 가지의 자수 기법으로 응용을 통해 수십 가지의 바느질 기법이 재탄생된다. 같은 방법으로 반복하는 십자수와는 달리 성취감 또한 크다. 바로 전통자수의 매력이다. 길쌈과 바느질 잘하는 것을 여인의 미덕으로 여겼던 한국 고대사회에서 자수는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따로 교육을 받거나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던 여인들이 미적 감각과 꿈을 쏟아부을 수 있는 유일한 세계였다. 그뿐만 아니라 물질이 풍족했던 양반가 아낙들은 자수를 놓으며 품성을 가다듬고 심적 고뇌와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잊었다. 서민층 아낙들 역시 고단한 일상에서 가족의 의복과 생활소품에 화사하고 아름다운 자수를 놓으며 삶의 활력과 기쁨을 찾았다. 일제시대를 거치고 현대에 이르러 전통자수는 주로 옷이나 생활용품을 장식하는 데 쓰였다. 이때부터 전통자수는 일반적인 생활자수에서 회화성을 중시하는 미술품으로 격상되었다. 하지만 이후 우리의 생활용품, 복식용품에는 전통자수 대신 아플리케와 십자수가 놓이게 되었고, 그나마 한복이나 전통소품에 놓이던 전통자수는 가격이 저렴한 홍콩과 중국, 베트남 등에서 놓은 수가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존재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전통자수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자 공방에 모여 전통자수를 놓던 기술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수를 배우겠다는 사람들도 줄기 시작해 전통자수의 명맥을 잇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유희순 명장은 40여 년간 전통자수의 외길을 고집하고 있다. 한 가지 기술을 40여 년간 매진해서 갈고닦기란 쉽지 않을 터.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자만심이나 나태함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뒷걸음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에게는 늘 우연처럼 새로운 목표가 생기곤 했다. 국새 의장품 제작을 비롯해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 전시된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 제작,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내한했을 때 여왕에게 선물할 숄에 수를 놓는 작업까지 그 모든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자수에 대한 애착과 사랑 때문이었다. 그리고 2002년 유희순 선생은 전통문화를 지켜가려는 노고와 실력을 인정받아 자수명장으로 선정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소질이 뛰어난 그녀였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급격히 기운 가세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때 자수를 만났다. 처음에는 학원에 가서 전통자수 기초수업을 받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후 한국자수협회 초대회장인 고(故) 김태숙 선생의 문하에 입문해 동양자수를 체계적으로 사사하였다.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한상수 선생에게 전통자수를 배웠다. “자수는 규방문화의 꽃 그리고 바늘과 실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이에요. 바늘이 천을 통과할 때마다 집중력을 놓치지 않아야 땀도 고르고 원하는 모양으로 수놓을 수 있죠. 작품이 완성될 때에는 기운이 소진해 그 자리에 눕고 싶을 정도죠. 하지만 작품을 끝내고 완성된 작품을 볼 때 그 희열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지금까지 바늘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거겠죠.” ![]() 1 유희순 선생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딸을 위해 손수 만드신 골무. 칠순의 노모는 딸이 바느질할 때 옆에서 실을 꿰어주셨으며 팔순이 되어 바늘귀가 보이지 않자 하루 종일 딸의 손가락에 딱 맞는 골무를 만드셨다고 한다. 눈이 어두워 바느질은 서툴고 밥풀을 으깨어 배접한 탓에 모양은 예쁘지 않지만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어 진한 감동을 전한다. 2 역시 유희순 선생의 어머니가 만드신 베갯모. 자투리 천도 버리지 않고 살뜰하게 사용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알뜰함이 담겨 있다. 3 두루주머니 혹은 복주머니로 사용되던 염낭. 유희순 선생이 고궁박물관 유물을 재현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안골마을 여인들, 전통자수 놓던 날 유희순 선생의 상계동 작업실을 찾은 라이프스타일러 권형민 실장은 손바닥만 한 복주머니에서 병풍까지 그림같이 아름다운 전통자수의 매력에 푹 빠졌다. “전통자수가 부담스럽고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수 명인을 뵙고 나니 전통자수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겠구나 싶더라고요. 또 원래 우리 것이라 그런지 더 친숙하게 다가오고요. 괜한 선입견으로 전통자수에 다가가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간단한 기법을 몇 가지만 숙지하면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쉽게 전통자수를 놓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고 가요. 무엇이든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희 이웃들과 선생님께 자수를 함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권형민 실장의 청에 선뜻 응한 유희순 선생은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안골을 방문했다. 유난히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자수를 배우기 위해 권 실장의 집을 방문한 이웃집 언니 박수정 씨와 그녀의 딸이 밝은 얼굴로 유희순 선생을 맞이한다. 햇살 드는 창가의 테이블에 앉아 바느질에 집중하는 네 여자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겹고 따뜻하다. 유희순 선생의 조언을 듣는 얼굴들이 무척이나 진지하다. 처음 전통자수를 놓는 것임에도 의외로 솜씨를 보이는 제자들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유 선생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네 사람이다. 우리의 전통자수는 반드시 실을 꼬아 재질감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실생활에 활용되는 의복이나 이불 등에 주로 자수를 놓았기 때문에 세탁을 해도 잘 끊어지지 않도록 한 것. 또 면의 둘레는 무채색이나 면과 같은 계열의 색과 금사, 은사를 둘러서 화려하고 확실하게 표현한 점이 중국이나 일본의 수와 다르다. “전통자수의 기법에는 이음수, 평수, 가름수, 자련수, 자릿수, 솔잎수, 매듭수, 기러기수, 무늬목수, 별무늬수, 징금수 등이 있어요. 기법은 많지는 않지만 응용을 제대로 하면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어요. 어렵다 생각 말고 전통 수놓기를 즐겨보세요. 제 수강생 중에는 칠순이 넘으신 분도 계세요. 손자를 위해 흉배를 만드신다며 열정을 불태우고 계시죠. 젊었을 때 수를 배워놓으면 나이 들어 더 재미있고 즐겁게 수놓기를 즐길 수 있어요.” ![]() 전통자수, 집 안의 생기를 돋우다 “지금은 결혼을 한다고 꼭 한복을 맞추진 않지만 제가 결혼하던 시절만 해도 한복을 꼭 맞춰입었어요. 한 벌이 아닌 두세 벌 맞추는 사람도 있었죠. 한복의 옷고름과 치맛자락에는 예쁜 자수가 놓여 있었고요. 이제는 낡아 입을 수 없는 한복을 버릴까 하다 옷고름의 예쁜 수가 눈에 밟혀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던 차에 옷고름의 수를 조각으로 잘라 액자에 붙여 벽에 걸어보았어요. 현대식 인테리어에도 멋지게 어울린답니다. 한복의 옷고름 외에 이불보의 작은 조각수도 꺼내어 집 안 곳곳을 장식해보세요. 핸드메이드 다이어리에 붙여 멋을 더하기도 하고 유리병에 붙여 초를 켜놓으니 사뭇 멋스럽습니다. 흰색 스탠드 갓에 핀으로 살짝 고정시켜놓기도 하고 한쪽 구석에 예쁜 색의 명주실, 수틀 등을 놓아만 두어도 주방 한쪽이 따뜻해지네요. 어렵단 생각을 버리고 쉽게 다가가니 우리의 아름다운 규방문화가 봄의 일상으로 들어오네요.” ![]() 자수명장 유희순은… 한국자수협회 초대회장인 고(故) 김태숙 선생의 문하에 입문하고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한상수 선생에게 전통자수를 배웠다. 1983년 제8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입상한 것을 시작으로 전승공예대전 14회 수상, 1997년 제14회 신미술대전공예부 대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을 쌓았다. 주요작품으로는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 전시된 일월오악도와 국새 의장품 등이 있다. 2002년 자수명장으로 선정되었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
취재 강부연 기자 사진 강현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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