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라디오 스타가 분위기 잡는 수원 못골시장

아기 달맞이 2013. 2. 1. 07:13

 

‘못골지기’ DJ 김승일씨는 못골시장의 다양한 볼거리를 기획했다. 라디오 방송국도, 줌마불평 합창단도 그의 아이디어이다.


경기도 수원 못골시장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못골시장 상인들도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에 바빴다. ‘라디오 방송국’ ‘줌마불평합창단’ ‘다문화 요리교실’ 등 여러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상인들의 참여와 희생 덕분이었다. 젊은 상인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어르신들이 묵묵히 동참했다. 문화가 흐르는 시장 풍경은 이렇게 해서 하나하나 가꾸어졌다. 설 대목을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인들을 쫓아다니며 못골시장의 변신 이야기를 들었다.

글=이석희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못골시장에 가면 매일 만날 수 있는 시장 상인들이다. ‘콩나물&두부’ 박종화 사장, 울금호떡을 파는 ‘동성분식’ 유선희 사장, ‘지동야채’ 박명복 사장, 비행기 떡집으로 더 유명한 ‘오복떡집’ 김찬미-신현철 부부(왼쪽부터).


전국구 스타 된 줌마불평합창단

“합창단은 무슨 합창단. 주부 노래교실인 줄 알았지. 노래 부르면서 장사 스트레스나 풀겠다고 갔지.”

 줌마불평합창단 얘기를 해달랬더니 ‘엄지반찬’ 강경순(56) 사장이 대뜸 ‘노래교실’ 타령을 했다. “그때는 아줌마들한테 노래교실이 인기였잖아. 나도 그런 건 줄 알았지.” 건너편 ‘지동야채’의 박명복(56) 사장도 거들었다.

 2009년 초 ‘아들네 만두’ 김승일(36) 사장이 난데없는 제안을 했다. “시장 아줌마끼리 합창단을 만듭시다.” 김 사장의 제안에 솔깃한, 아니 노래교실로 ‘오해’를 한 50∼60대 아줌마 여남은 명이 모였다. ‘줌마불평합창단’은 그렇게 출범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 아줌마들이 장사를 마치고 상인연합회 사무실에 모였다. 상인들이 알음알음 알아낸 작곡가 최종혁씨가 노래 교육을 맡았다.

 

2 평상시에는 열심히 떡을 팔고 있는 못골시장의 인기 DJ 이하나씨.

 “우리가 악보를 볼 줄 알아? 노래를 잘 불러? 완전히 고생 시작이었지. 모두 하루 종일 장사하느라 피곤해 졸면서 연습하고 그랬어.” 강경순 사장이 그때를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노래 가사는 상인들의 불만을 그대로 담았다. ‘동성분식’ 유선희(46) 사장이 상인들의 불만을 모아 쪽지에 적었다. ‘만져만 보고 그냥 간다’ ‘깎기만 한다’ 등등, 시장 상인의 애환이 하나둘 쌓였다. 이렇게 쌓인 불평과 불만에 멜로디를 얹어 ‘못골 CM1’이 탄생했다.

 ‘둘러보고 만져만 보고 그냥 가면 섭섭해(사세요~) ♪ 원산지 표시, 재래시장만 백화점은 왜 안 물어봐♪ 재래시장만 깎자고 하지요. 십원도 다 주는 백화점. ♬’

 노래를 들은 상인과 손님이 박장대소를 했고, 노래는 이내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졌다. 지난해 10월에는 대전에서 열린 전통시장 성과보고대회에 초청받아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공연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외부 공연에 나서 못골시장 ‘줌마불평합창단’은 지난해까지 50회 이상 전국 공연을 다녔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하루 장사를 공친다. 강 사장은 “그래도 좋다”며 활짝 웃었다.

 “우리 덕분에 시장이 얼마나 유명해졌는데. 남편 혼자 하루 종일 고생하는 건 미안하지만, 그래도 남편이 빨리 공연 가라고 성화여.”

살아온 이야기 담긴 작은 간판들

3 ‘충남상회’ 김인수 사장이 40년 가까이 된 자전거로 배달 준비를 하고 있다.

못골시장에 있는 가게는 간판이 두 개씩 달려 있다. 지붕에는 큼지막한 간판이, 처마 밑에는 조그만 간판이 있다. 작은 간판은 상점 특징이나 주인의 사연이 담겨 있어 ‘이야기 간판’이라고 불린다. 작은 간판을 보면 이 가게에서 무엇을 파는지 알 수 있다. 간판이 당근 모양이면 채소 가게라는 뜻이고, 오징어처럼 생겼으면 건어물 가게고, 돼지 코가 그려져 있으면 정육점이다.

 하나같이 색다른 간판이지만 유독 간판 두 개가 눈에 띄었다. 건어물 상점 간판에 짐 자전거가 걸려 있고, 떡집 간판에 비행기가 날고 있었다. 짐 자전거가 그려진 건어물 가게 ‘충남상회’에 들어갔다. 김인수(65) 사장이 사연을 들려줬다.

 “내 평생과 함께 한 자전거야. 타이어·안장 바꾸며 40년은 탔으니까. 20대 때 건어물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나갔거든. 짐 자전거에 산더미처럼 건어물을 쌓고 멀리 오산까지 배달을 나갔어. 그때부터 계속 탄 거야.”

4 설을 앞둔 못골시장이 장을 보러온 사람들로 붐빈다.

 김씨는 지금도 옛날 그 자전거로 배달을 한다. 예전처럼 멀리는 못 가고 수원 시내만 다닌다. 오토바이나 용달차 얘기를 꺼냈더니 짐짓 정색을 했다.

 “오토바이를 탔다가 두 번이나 사고가 났어. 자전거가 내 팔자라고 생각했지. 그래도 이 자전거로 20억원 넘게 팔았어. 이 가게도 자전거가 벌어다 준 셈이야.”

 떡집 간판에 걸린 비행기에는 ‘오복떡집’ 김찬미(43) 사장의 꿈이 담겨 있었다. 김 사장은 원래 경비행기 조종사가 꿈이었다.

 “처녀 때 경비행기나 패러글라이딩 등 활공 레포츠를 좋아했지요. 떡집 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는 바람에 포기하고 말았지만요. 시장에서 이야기 간판을 만든다고 하니까 남편이 미안했는지 ‘당신 꿈을 담으면 어떨까?’ 넌지시 물어오데요. 언젠가는 남편이 꿈을 이뤄준다고 하니, 믿고 살아야죠.”

 김 사장은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지만 단골 손님에게는 ‘오복떡집’보다 ‘비행기 떡집’이 더 익숙한 이름이다. 떡집에는 이미 비행기가 떠 있었다.

DJ·작가·엔지니어 … 혼자서 다해요

5 ‘완도상회’에 걸려 있는 이야기 간판. 이충환 사장이 라디오 DJ여서 한 손에는 오징어를, 한 손에는 라디오를 들고 있다. 6 ‘오복떡집’에 걸려있는 비행기 간판. 여사장 김찬미씨의 꿈이 담겨 있다.

“자, 여기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가래떡 있습니다. 맛 좋은 가래떡 사 가세요.”

 한 손에 가래떡, 한 손에 가위를 든 꽃미남 사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손님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30분 전쯤 라디오 방송국에서 DJ를 하던 ‘떡하나’였다. 완전히 딴 모습이어서 깜짝 놀랐다. 왜 민망스럽게 ‘떡하나’로 불릴까.

 “제가 종로떡집을 운영하거든요. 원래 제 이름은 이하나(30)예요. 그래서 상호와 이름을 묶어서 ‘떡하나’라는 예명을 지었어요.”

 2009년 1월 개통한 못골시장 라디오 방송국 ‘못골 온에어 MGBS’. 국회의원도, 다른 지역 상인도 자주 찾아오는, 못골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다. 지난 대선 때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출연했고, 2011년에는 SBS FM 공개방송이 시장 스튜디오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방송은 매주 화·목요일 오전 11시30분부터 낮 12시30분까지 한 시간 나간다. 이하나씨 말고도 건어물 가게 ‘완도상회’ 이충환(41) 사장, ‘아들네 만두’ 김승일 사장 등이 번갈아 DJ를 맡고 있다. DJ가 운영하는 가게에는 ‘못골 온에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DJ가 되면 해야 할 일이 많다. 대본도 써야 하고, 방송 기계도 다뤄야 하고, 선곡도 해야 한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네 번 방송을 내보냈지만 지금은 방송횟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손님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DJ들도 가게 일이 바빠졌다.

 줌마불평합창단부터 라디오 방송국까지 못골시장 개혁 프로그램을 기획한 만두가게 사장 김승일씨는 시장에서 ‘못골지기’로 통한다. 못골지기는 아예 가게를 아버지와 아내에게 맡기고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국 시장을 돌아다니며 못골시장의 성공 사례를 알리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못골시장=수원 팔달문 근처에 있다. 조선 정조가 만든 큰 못이 있었던 곳이어서 지동(池洞)으로 불렸다. 지동의 우리말이 ‘못골’이다. 못골시장은 1975년 개장했다. 2008년 최초로 문전성시 시범시장으로 지정됐다. 못골시장에서만 판다는 울금호떡은 2개 1000원, 1m쯤 되는 가래떡은 한 줄에 2000원이다. 묵은 한 모 2000원, 알배추 두 포기 3000원 등 대형마트보다 싸다. 3월부터는 매주 토요일 오후 줌마불평합창단의 공연을 볼 수 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 387-1번지. 031-246-5638.

 

 

7 라디오 방송은 시장 어디에서나 대형 모니터를 통해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