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드넓은 벌판, 그 치유의 공간 위에 서다

아기 달맞이 2013. 1. 28. 07:02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양떼목장

 

♠드넓은 벌판에서 마음을 씻어 내는 곳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겨울,새벽 미명을 가르며 대관령으로 차를 몰았다.아직 겨울 해는 늦잠에 빠져 동녘산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희뿌연 아침 안개 속 어느 마을에선가 아침을 준비하는지 실낱처럼 새하얀 연기가 구불구불 솟아올랐다.세상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홀로 깨어 바라보는 풍경은 그 어떤 명상보다 맑고,그 어떤 호흡보다 깊다.숨 막히는 빌딩숲을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하다.늦잠에서 깨어난 해는 밝은 빛으로 온 세상을 녹일 듯 빛났다.이 평범하고도 눈부신 풍경에 치열한 삶에서 지쳐 가던 마음이 조금씩 따뜻하게 차올랐다.

창밖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있다 보니 어느새 양떼목장 초입이다.겨우내 쏟아진 폭설로 인해 대관령은 온통 눈세상이다.길 양쪽으로 쌓인 눈높이는 어른 가슴께까지 올라왔다.쭉쭉 뻗은 침엽수들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새하얀 눈옷을 입고 동화 속 겨울 풍경을 만들어 냈다.한 걸음 잘못 내딛으면 무릎까지 푹푹 빠져들었다.그래도 여행자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했다.갑작스러운 웃음소리에 어느 나무에서 눈이 푸드덕거리며 쏟아졌다.양지 바른 곳에 가지런히 널린 황태들은 태양빛을 머금어 새하얀 눈빛 속에서 황금빛을 냈다.

자연이 만들어 낸 하모니에 취해 걷다 보니 양떼목장에 들어섰다.양떼보다 더 새하얀 눈이 언덕에 수북히 쌓여 있었다.온통 하얀 세상 속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하고 맑아졌다.문득 어느 해 겨울 프랑스 접경 지역에 위치한 스위스 서부 프리부르 지방의 모레송을 찾아가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났다.눈을 들어 바라본 모레송의 눈부신 설경은 웅장한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하지만 양떼목장은 그런 웅장한 아름다움보다는 부드럽고 순수한 매력으로 내 가슴에 포근히 안겨 왔다.

♠ 조용히,그러나 깊은 걸음으로 만난 풍경

보름달을 닮은 대관령 둥근 언덕에는 겨울바람이 칼날처럼 불었다.시간도 그림자도 얼어붙은 듯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그림자는 좀처럼 움직임이 없었다.잠시 숨을 멈추었다.순백의 풍경,청아한 하늘이 내 호흡기를 거쳐 심장으로 서늘하게 파고 들었다.마치 그 맑은 풍경을 들이켜겠다는 듯 길게 날숨과 들숨을 쉬었다.양떼목장을 찾아온 연인들은 칼날 같은 바람결에 종종걸음을 쳤다.

눈밭에 드러눕자 온통 새파란 하늘이다.차가운 눈은 그 푹신한 촉감으로 인해 오히려 따스했다.웅장한 스위스의 만년설을 처음 대했을 때 대자연 앞에 왜소한 나 자신의 나약함과 대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꼈다.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경외감 같은 것이었다.하지만 대관령 양떼목장의 설원에서 느낀 것은 아주 소박한 행복이었다.풍경이 나를 안아 주는 느낌이랄까.편안한 마음으로 눈밭에 누울 수도 있고,가만히 그 풍경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양떼 산책로에는 양떼는 없고 양떼목장을 찾아온 여행자들만 한가롭게 거닐었다.산책로를 따라 크게 원을 그리며 터벅터벅 걸었다.산책로를 내려오다가 올려다 보니 앙상한 겨울나무와 나무로 지은 움막이 둥근 언덕에 풍경화가 되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그 풍경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내 마음도 멈췄다.순백의 눈과 온갖 불순물이 씻겨 나갈 듯 푸른 하늘,모든 가식을 벗어 버린 겨울나무,그리고 마음의 휴식처 같은 소박한 움막.내가 바라는 삶의 풍경들이다.그 풍경 속에 내가 자연이 되고,자연이 내가 되는 꿈을 꾸었다.그 산책로 한구석에서 나는 하염없이 대관령 언덕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문득 산책로 스피커에서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에릭 치료쿠(Eric Chiryoku)의<겨울 이야기(Winter story)>가 여행자의 감성을 부드러운 선율로 어루만져 주었다.바이올린과 플루트,피아노의 선율을 따라 울리던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새하얀 언덕을 넘어 바다로 달려갔다.바람이 사라진 적막한 공간,그 깊은 침묵 속에서 갑자기 양떼 우리의 지붕에서 솜이불처럼 두텁던 눈뭉치가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꿈에서 깨어나듯 눈에 초점을 찾자 내 발치에 민들레가 선명하게 들어왔다.매서운 바람과 수북히 쌓인 눈에도 자연은 여전히 생명을 유지한 채 살아 내고 있었다.온통 하얗게 변한 목장 풍경 속 작은 생명의 속삭임에서 소박한 행복을 느끼며 찬 바람을 깊이 들이마셨다.

<여행 정보>

#도착하기

대중교통- 횡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대관령 마을휴게소(양떼목장 주차장)까지 택시를 탄다.

자가용- 강원도 평창 횡계IC로 나와 횡계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고가차도 밑을 통과해 바로 나오는 신호에서 좌회전한다.

#따라가기

목장 안내소▶화장실(매표소와 산책로 출발 입구 주변에만 있으니 미리 다녀오자.)▶산책로 입구▶움막 대피소▶철쭉 군락지▶정상 움막집▶축사(겨울에는 이곳에서 양에게 먹이 주기)▶손 씻기

#먹어 보기

대관령 양떼목장이 있는 횡계는 동해가 가까워 오징어나 황태를 이용한 음식이 유명하다.겨울에 대관령 양떼목장에서 맞는 바람은 코를 빨갛게 얼리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차갑지만 그 바람에 우리가 제대로 맛이 든 황태를 맛볼 수 있다.횡계IC근처나 용평스키장 입구 주변에 황태 전문 음식점이 많으니 황태구이,황태찜,황태국 등 다양한 황태요리를 맛보자.맑은 국물로 속이 확 풀어지는 황태국이 맛있는'황태촌'과'황태회관',싱싱한 오징어로 만들어 정말 쫄깃한 오삼불고기가 자랑인'도암식당'등이 맛집으로 칭송받고 있다.바다뿐 아니라 푸른 초원이 있으므로 한우고기 맛도 빼놓으면 아쉽다. '대관령 한우타운'은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고기 굽는 값을 내고 먹는 시스템이다.믿을 수 있는 우리 한우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기회도 놓치지 말자.


출처 : 유럽같은 국내 여행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