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자작나무 숲을 찾아떠난 겨울 태백고원 여행

아기 달맞이 2013. 1. 23.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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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속살을 내비치며 겨울 관광객을 유혹하는 자작나무는 마치 북유럽에서 건너온 외래종 같지만 사실 백두산 인근에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토종 수종이다.

오색찬란함이야 금은보화와 비취금(翡翠衾)에서처럼 화려하기 그지 없지만, 그보다 한수 위를 찾자면 다소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온다. 영롱한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것이 흰색이다. 활짝 편 공작의 깃털이 안구를 한 가득 채운대도 하얀색이 주는 고결함에 비하자면 초라해진다. 귀족의 색은 단연 '화이트'다. 올해의 주인공 뱀도 호랑이도 백사, 백호가 멋지듯 겨울도 흰색 투성이가 근사하다. 큰눈이 내려와 세상의 모든 홍진(紅塵)을 덮고나면 그토록 순결하고 아름다운 것이 없다. 겨울 숲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바로 자작나무다. 낙엽을 모두 벗어던지고 흰색으로 곧게 죽죽 솟은 자작나무는 겨울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티아라(왕관)다. 수은주 역시 거의 하얀색 밖에 남지 않았던 지난주, 자작나무를 만나기 위해 강원도 태백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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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하니 숲속에서도 한올 한올 새치처럼 반짝이는 자작나무는 햇볕을 받으면 오묘한 빛을 발한다.

◇오! 새하얀 자작나무여

자작나무 숲을 가만히 들여다 보자면 언뜻 핀란드나 러시아, 노르웨이 등 북국의 숲이 생각나지만, 사실 외래수종이 아니라 토종 수종이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일대를 비롯해 개마고원과 강원도 북쪽 산간에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는 자작나무는 오랜 시간 우리네 민초들의 삶과 함께 해 온 벗이다. 자작나무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귀중한 수종으로 목재로는 물론이며 껍질을 벗겨 종이처럼 글을 쓰거나 땔감으로도 썼다. 불을 때면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붙은 것이 바로 자작나무다. 수액은 고로쇠(骨利水)로 마시고 껍질은 씹어서 약으로 썼다. 목재의 질도 좋아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목판으로도 쓰였을 정도다. 자작나무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사실 '자일리톨 껌' 때문인데, 그래서 북유럽산 외래수종으로 오해를 받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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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숲은 한겨울 눈밭과 새파란 하늘, 그리고 햇빛이 한곳에 모이는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백두산 인근에 빽빽하게 자연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고는 하는데, 지금도 건재한 지는 '정치적인 이유'로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휴전선이 가로막은 남한에도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자작나무 숲을 만날 수 있는데 대부분이 사람의 손에 의해 조림된 것이다. 인제군 원대리와 응봉산(수산리 일대), 횡성 자작나무 미술관 등 깊은 산속에서 고혹적이고 낭만적인 풍광과 마주칠 수 있다. 국내를 대표하는 고원지대인 태백시에서도 곳곳에서 환상적인 자태의 자작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한강, 낙동강, 오십천이 갈라진다는 삼수령 아래, 정선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두문동재 고갯길, 한강 최상류 광동댐으로 가는 길 원동마을 길가에도 촘촘히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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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의 추위는 서울보다 훨씬 더 춥지만 수려한 풍광이 있어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청량감을 안겨준다.

◇겨울의 귀족과 함께 한 시간

지금은 터널로만 알려져 있는 두문동재 위로 난 고갯길로 향한다. 만항재(1330m)에 이어 해발고도가 국내 두번째로 높은 고갯길인 두문동재(38번 국도) 아래에 차를 세우고 30분쯤 가면 자작나무 숲이 드넓게 펼쳐진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고한에서 태백으로 터널을 통해 넘어가면 입구에서 고갯길로 빠질 수 있다. 늘 산그늘이 지는 곳이라 눈이 가득 쌓여있어 바퀴에 쇠사슬을 감거나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약 2㎞ 정도 구간인데 얼추 30~40분이면 오른다. 어느 순간 모퉁이를 돌면 길 옆 산허리로 자작나무숲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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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과 정선, 영월이 만나는 만항재와 매봉산 바람의 언덕 등 요즘 태백은 가는 곳마다 그림을 만든다. 사진은 만항재에서 바라본 풍경

굵은 아름드리는 아니지만 백발성성한 숲이 멋드러진다. 가도가도 끝을 모른다. 하얀 땅에 하얀 나무가 송송 박혀있다. 오후의 햇빛을 받아 약간이나마 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동화 속 숲속 정령처럼 버티고 섰다. 햇살 받는 장면을 감상하고 싶다면 오전에 가야한다. 오후에는 산그림자가 드리워 다소 창백하다. 새하얀 줄기에 까실까실 껍질이 불거진 자작의 군대. 자작나무는 특히 눈이 쌓여있고 햇볕을 정면으로 받을 때 더욱 아름답다. 숲은 멀리서부터 고귀한 여왕의 새하얀 모피코트처럼 화려하게 다가온다. 과연 '겨울의 귀족'이란 별칭이 어울린다. 귀족의 작위에는 공작, 후작, 백작, 남작이 있다지만 그중 으뜸은 '자작'일성 싶다.

영하 십 몇도가 넘는 산골의 공기는 산그늘 내린 자작 숲을 거치며 한결 청량해진다. 순백의 숲을 지나치며 산소를 한껏 품은 공기를 들이키니 몸도 마음도 덩달아 하얗게 변한듯 하다. 아침부터 덜덜 떨며 눈밭에서 기다려온 보상이다.

태백 | 글.사진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여행정보

●자작나무숲=

한겨울 자작나무의 새하얀 숲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모두 세 군데다. 삼수령 아래 길어귀에 위치한 생선조림 식당 '초막 고갈두' 주차장 양옆으로 작은 자작나무 정원과 숲이 조성돼있다. 두문동재 고갯길과 귀네미마을 인근 상사미 마을에서도 도로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인제군에도 원대리에 약 80만~90만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수산리에는 100만 그루 정도가 조림되어 있다. 횡성군 자작나무 미술관은 아름다운 겨울 숲속에서 문화의 향기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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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은 '산소도시'란 슬로건을 쓰지만 사실은 죽은소(한우 소고기)가 더 맛있다.

●먹거리=

태백 시내에는 유독 '실비집'이란 상호가 많다. 맛있는 태백한우 소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맛보는 식당들이다. 상장동 배달실비식당은 한우 갈빗살이 유명한 곳이다. 고소한 고기를 연탄불 석쇠 위에 구워먹는다.(033)552-3371. 태백에 자작나무가 왜 많은가 했더니 국물이 자작한 태백닭갈비가 유명해서 그런가 보다. 쫄면과 라면 등 각종 사리를 넣어먹는 전골 형태로 황지동 태백닭갈비가 잘한다.(033)553-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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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강산막국수의 돼지고기 수육은 삼겹살로 만들어 한층 더 고소한 맛을 낸다.

겨울이지만 이가 시릴 정도의 막국수와 돼지고기 수육도 입맛을 당긴다. 상장동 강산막국수는 막국수와 수육, 감자전이 유명한 곳인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삼겹살로 만든 수육과 막국수가 제일 맛있다.(033)552-6680. 매콤한 고등어, 갈치 등 생선조림은 황지동 초막고갈두가 꽉잡았다.(033)553-7388. 짜장면과 탕수육은 황연동 연화반점이 잘한다고 소문났다.(033)552-8359

●겨울등반=

태백산(1566.7m)과 함백산(1572.9m) 겨울등산 코스도 인기다. 특히 얼마전 KBS TV '다큐3일'에 태백산 편이 방영된 이후 수많은 이들이 신년 등반을 위해 몰리고 있다. 두문동재에서 출발, 은대봉~함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눈꽃 트래킹 코스 역시 최고의 눈꽃 트래킹 코스로 꼽힌다. 태백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033)550-2741, park.taebaek.go.kr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