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기차 타고 떠나는 한겨울 눈꽃여행

아기 달맞이 2012. 2. 17. 07:20

기차를 타면 한겨울 추위도 낭만이 된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설경을 바라보며 울려 퍼지는 음악에 몸을 맡기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추억이 어느새 슬며시 고개를 든다. 옛 정취 물씬 풍기는 간이역 따라 낭만 가득한 기차여행을 떠나보자.

'환상선 눈꽃+유황온천' 이색 기차여행 당일치기

열차는 부지런히 아침을 맞는다. 오전 8시,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 출발해 추전역, 승부역, 풍기역을 거쳐 밤 10시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온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역사인 추전역, '세 평짜리' 승부역을 거쳐 풍기 온천까지, 소박한 간이역과 환상적인 설경, 온천으로 건강까지 챙기는 알찬 당일치기 일정이다. '통통통 뮤직트레인'과 함께 귀까지 즐거운 오감여행. 가족, 친구, 연인 등 누구와 함께하더라도 즐겁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간이역, 추전역






열차의 첫 정차역은 추전역이다. 4km의 장암터널을 지나면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 해발 855m'라는 글귀가 새겨진 추전역 석비가 여행객들을 맞는다.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기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역이다. '싸리밭골'에 세워진 역이라는 뜻으로 연평균 기온이 낮고 적설량이 많아 은빛이 내려앉은 백두대간을 보기 위해 매년 겨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998년 환상선 눈꽃 순환열차가 운행되며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열차는 추전역에서 약 20분간 정차한다. 열차에서 내리니 기다렸다는 듯이 차가운 공기가 와락 안겨든다. 훈훈한 열차 안의 공기와 기온 차가 제법 나긴 했지만 오랜만에 마셔보는 청량한 공기에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정차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서둘러 움직이는 것이 좋다. 우선 석비 앞에서 기념 촬영으로 대한민국 최고(高)지대 기차역에 발도장을 찍었다는 흔적을 남긴다. 그리 크지 않은 추전 역사에는 막걸리와 옥수수, 도토리묵 등 소박한 간식거리들이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솔솔 풍기는 고사리무침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추전역 쉼터에서는 추전역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기관사 복장을 입고 기념 촬영도 할 수 있다. 쉼터 한쪽에 마련된 방명록에 간단한 흔적을 남기는 것도 잊지 말자.





추억 속으로 달리는 음악열차

주말의 흥분으로 가득 찬 토요일 아침 서울역.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기차에 오르는 승객들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한데 플랫폼에서 승객을 기다리는 열차가 심상치 않다. 알록달록 화려하게 꾸며놓은 이 열차의 이름은 '통통통 뮤직트레인'.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루한 여행객들을 위해 꾸며진 특별 테마열차다. '뮤직트레인'이라는 이름답게 열차에 탑승한 승객들은 여행 내내 음악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하행선 열차 안에서는 열차 DJ와 함께하는 음악방송에 사연과 음악을 신청할 수 있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상행선에서는 디스코와 노래자랑, 라이브 공연이 펼쳐진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승객들의 사연과 오랜만에 듣는 옛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긴 여정이 지루할 틈이 없다.

기차가 출발하자 DJ의 인사말이 흘러나온다. 뮤직트레인 6호차에는 DJ박스가 있어 승객들이 직접 사연과 노래를 신청할 수 있다. 정해진 이벤트 시간에는 흥겨운 공연도 즐길 수 있고 사연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울 도봉구 체육센터 수영반 어머님들이 단체 MT를 오셨네요. 오늘 온천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수영 실력을 뽐내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어머님들을 위해 띄웁니다. 체리필터의 '오리 날다'!"

"잠실에서 오신 김태진님께서 아유미의 '너랑 나'를 신청해주셨어요. 아유미가 언제 이 노래를 불렀나요? 아유미가 아니고 아이유죠? 오랜만에 아유미 노래 들어볼까요? '큐티 하니' 띄워드립니다"

아내와 함께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을 온 남편의 수줍은 사랑 고백이 이어지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손녀들의 재롱잔치도 펼쳐진다. 사이다와 삶은 달걀로 학창 시절 추억을 만끽하는 여고 동창들. 마주 보는 눈빛만으로도 행복이 가득한 연인들, 열차 안에 울려 퍼지는 음악과 함께 저마다의 추억을 만드는 동안 기차는 풍경을 가로지른다.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승부역

추전역에서 40여 분을 달리면 승부역에 다다른다. 승부역은 기차가 아니면 갈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다. 어찌나 첩첩산중에 위치해 있는지 산으로 둘러싸인 하늘이 세 평 남짓이라 하여 '세 평짜리 역'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역에 내리면 전설 속의 마을을 찾은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의 아주 오래된 시간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세월교라 불리는 아담한 다리를 건너 시 속의 풍경 같은 비룡산을 감상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아름다운 숲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쁜 도시의 일상이 아련하게만 느껴진다. 승부역에서는 40분에서 1시간 정도 기차가 정차한다. 다리를 건너면 시골 내음 물씬 풍기는 작은 재래시장이 펼쳐져 있는데 뜨끈한 국밥으로 요기를 하거나 민속전시관에 들러 정겨운 시골마을의 풍경을 둘러볼 수 있다. 아이들은 이미 얼음 썰매장에서 눈을 지치느라 바쁘다. 첩첩산중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간이역, 승부역의 고즈넉한 매력은 기차에 오른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여운으로 남아 있다.





마음까지 개운한 소백산 유황온천


낭만적인 간이역들의 설경을 즐겼다면 이제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글 시간이다. 기차는 승부역에서 1시간 30분여를 달려 이번 여행의 백미인 '소백산 풍기 온천 리조트'로 향한다. 풍기온천 리조트는 사우나와 물놀이, 야외풀장 등의 시설을 갖춘 종합온천장이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여행의 긴장을 풀고 따끈따끈한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있노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그동안 쌓였던 일상의 피로들도 사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온천수에는 유황과 불소, 중탄산 등이 녹아 있어 만성관절염이나 신경통, 당뇨병 등 각종 성인병에 효능이 있다. 잠깐 동안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보들보들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장시간 쌓인 피로를 씻고 상쾌한 몸으로 다시 기차에 오르니 마음까지 개운해지는 기분이다. 어느새 창밖에는 까만 밤이 떠올랐다. 달빛을 쫓으며 서울로 향하는 마음이 아쉽기만 하다.

여행 정보
'통통통 환상선 눈꽃열차'는 루비 빛깔로 멋을 낸 'Lady Bird'라는 관광 특급열차로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이다. 2월 말까지 주말과 평일 총 17회 운행하며 가격은 대인 5만9천원, 소인 5만7천원(온천 입장료 포함, 식사비 불포함)이다. 문의 코레일관광개발 1544-7755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제공 / 박동민, 코레일관광개발, 추전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