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윤동주 주옥같은 詩 전한 '마지막 핏줄' 떠나다

아기 달맞이 2011. 12. 13. 07:21

1948년 중국서 귀국하며 육필원고 등 챙겨온 여동생 윤혜원씨 별세
20대 때 습작노트 들고 월남, 기차안서 소련군 검문당하자 가족앨범 등 내던지고 지켜… 116편 중 85편 빛 보게 해

 

 

굳게 다문 입술 사진 때문에 늘 엄숙한 모습이지요? 동주 오빠는 저에겐 그저 오라버니일 뿐, 극화되는 것은 싫어요."

시인 윤동주(1917~1945)의 '마지막 증인'으로 불리는 여동생 윤혜원(87)씨가 지난 11일 호주 시드니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윤동주 시인은 3남 1녀의 장남. 윤 시인의 일곱 살 터울 동생인 혜원씨는 4남매 중 생존해 있던 마지막 피붙이다. 2남 일주씨는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재임 중이던 50대에, 3남 광주씨는 30대 초반에 중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 [조선일보]윤동주(작은 사진)의 여동생 윤혜원씨는 시인의‘마지막 증인’. 1948년 고향인 중국 용정에서 시인의 육필 원고와 습작 노트를 가지고 월남했다.

↑ [조선일보]故윤혜원씨

중국 길림성 용정(龍井)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했던 둘째 혜원씨는 1948년 12월 한국으로 오면서 고향 집에 남아있던 시인의 육필 원고와 사진을 가져온 당사자다.

윤혜원씨의 월남(越南) 직전에 발간된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출간)에는 작품 31편만 실렸을 뿐이며, 현재 116편이 실린 증보판의 시편 중 85편이 혜원씨 덕분에 빛을 보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윤동주를 기억하고 증언할 수 있는 마지막 인물"이라고 고인을 평가했고, 시인 고운기씨는 "한국 시단(詩壇)과 대중에게 윤동주가 알려진 것은 윤혜원씨 역할이 거의 절대적"이라고 했다.

생전에 시드니에서 윤씨를 수차례 인터뷰하고 2004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정본 윤동주 전집'을 펴낸 홍장학(58) 동성고등학교 교감은 고인을 이렇게 소개했다.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가 발간된 뒤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면서 윤동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이미 서울에 살던 동생 일주씨가 고향 용정의 누이 혜원씨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 20대 초반의 갓 결혼한 신부였던 혜원씨는 죽은 오빠의 습작 노트와 가족 앨범 등 유품을 싸들고 남편과 함께 서울행 기차를 탔다. 당시만 해도 소련군 점령 시절이라 신혼부부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고, 실제로 기차 안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창밖으로 가족 앨범을 내던졌다고 한다.

고인의 부고를 처음 신문사에 전한 수필가 신길우씨 역시 "1955년 윤동주 시집 증보판과 이후 영인판 발간 때 윤혜원 여사가 가져온 육필 원고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윤혜원씨 부부는 6·25 직후 부산에서 고아들을 돌봤고, 1970년대 이후에는 필리핀을 거쳐 호주에서 거주해왔다. 오빠 윤동주의 생애가 지나치게 극화되거나 신비화되는 것을 꺼려 언론 인터뷰 등을 극히 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시인의 서거 60주년 당시 시드니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서는 "동주 오빠는 내 오빠이기도 하지만 그의 시를 사랑하고 그의 꼿꼿한 정신을 사랑하는 모든 이의 형님이요 오빠이기 때문에 공연한 말로 그의 티 없는 초상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군 오형범씨와 장남 철규씨 등 2남 2녀. 시드니 현지에서 장례를 치른 뒤 경기 광주 가족묘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070)8292―4832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