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저녁
오영록
빈집 같은 집에 적막을 흔드는 움직임
할머니가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것인지
매달려 가는 것인지
부러진 바퀴는 끈이 칭칭 동여져 있다
줄줄 밀고 다니는 것이 아닌
허리를 길게 늘여 한 발짝 앞으로 보내놓고
매달리듯 움츠렸다가 유모차로 몸을 옮기는 할머니
마치 한 마리 자벌레다
그 모습에 장승이 되어 넋을 놓고 있는데
얼마를 서성여도
땅거미가 내렸는데도 돌고 또 돌고 있다
보기에도 어려운 저 걸음을 왜 하고 있을까
운동이라기엔 너무 힘겨워 보이고
살아온 세월 덕행이라도 재보는지
인제 그만 쉬었으면 하는데
까치둥지만 한 검불* 짐이
천천히 사립문으로 들어왔다
할아버지다
또 한 마리 자벌레다
그제야
유모차도 멈춰 서고
쪽 창으로 가는 불빛 새어난다
두 마리 벌레가 활처럼 누워
꼬물락, 꼬물락
서로의 오늘을 토닥인다.
검불 : 가느다란 마른 나뭇가지, 마른 풀, 낙엽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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