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공예

우리천 명주

아기 달맞이 2011. 7. 20. 21:19
 
1950년대 무려 쌀 한 가마니에 해당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최고급 선물로 각광 받았던 것이 무엇일까? 바로 나일론 소재 내복이다. 지금은 가장 저렴한 섬유 중 하나인 나일론은 사실 견(絹, Silk)의 대용품으로 개발됐다. 초창기 나일론은 가볍 고 질기고 광택까지 우수해 고가의 견을 제치는 듯 보였으나 대용품이 어찌 진품 을 대신할 수 있을까. 부드러운 촉감과 고급스러운 광택, 흡습성까지 겸비한 견은 오늘날까지 고급 섬유의 대명사로 남게 됐다.

누에고치에서 풀어낸 실을 원료로 한 견의 역사는 기원전 3000여 년 전으로 거슬 러 올라간다. 중국 전설 속의 황제의 비 서릉에 의해서 양잠이 시작되었다고 전해 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은의 기자(箕子)가 누에를 치고 직조하는 것을 가르쳤다고 기록한 〈한서(漢書)〉를 비롯해 <삼국지위지동이전><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조선왕조실록> 등 수많은 문헌들에서 견직물과 직조 방법에 대한 기록 을 찾아볼 수 있다. 견직물은 그 직조 방법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구분되는데 오늘날까지 전통 직조 방법이 유일하게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 이번 호에서 다루게 될 명주(明紬)다.

본래 명주는 주(紬)라고 불리는 견직물의 일종이다. 견사를 평직으로 짠 직물 중 무늬가 없는 것을 지칭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본격적으로 삼한 시대부터 짜기 시작, 중국에 조공품으로 바쳤다고 한다. 우리나라 명주는 그 올이 가늘고 고와 비단의 본고장인 중국에서 인기가 매우 높았다. 조선 초 세종 11년에는 명나라에 조공품 으로 금과 은 대신에 세면주(細綿紬) 200필을 바쳤는데 우리나라 사신이 입고 간 명주를 명나라 선종이 극찬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때문에 왕실에서는 국가적으로 명주 생산을 장려하여 전국적으로 양잠이 성행하였으며 명주 생산을 관리하는 관 청과 장인들을 따로 두었다. 이러한 흔적은 지금까지 지명에도 남아 있다. 서울 송 파구 잠실과 서초구의 잠원동이 그곳. 과거 누에를 기르는 잠실(蠶室)이 있었던 데 서 비롯된 이들 지명은 명주가 얼마나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것이었는지 잘 보여 준다.

부드러운 감촉과 은은한 광택이 배어나는 명주는 유연하게 떨어지는 고운 태가 있 어 한복을 지으면 가장 잘 어울리는 옷감 중 하나다. 조직이 거칠지 않고 화려한 문양이 없어 첫인상은 다소 단조롭지만 오히려 바탕이 단순해 각양각색으로 염색 을 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넣거나 수를 놓으면 다채로운 멋을 즐길 수 있다. 명 주는 따뜻한 성질이 있어 겨울 옷감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그 가공 방법에 따라 여름철에도 입을 수 있다. 생명주가 바로 그것인데, 생견을 삶아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 빳빳하고 가슬가슬한 감촉이 여름철에 그만이다.

올이 고운 명주옷을 오래 입으려면 풀을 먹이는 것이 좋다. 풀을 먹여 다듬이질한 명주는 살결보다 부드러워지며 은은한 물결무늬가 생기는데 이것이 명주 중에서 도 고급으로 치는 흔히 ‘홍두깨 명주’ 혹은 ‘다듬이 명주’로 알려진 그것이다.

값싸고 실용적인 합성 섬유의 등장으로 천연 섬유는 한때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 던 적도 있었다. 나일론 내복이 최고급 상품으로 둔갑했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 는 웃음을 짓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천을 되살리고 새롭게 개발하지 않으 면 영영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멀게는 통일 신라 시대 유물부 터 오늘날까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치 않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명주에 관 심을 갖고 새롭게 되살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더해가는 자세 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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