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요리시간

내 몸을 살리는 1식 3찬, 운아 스님의 보약 밥상 이야기

아기 달맞이 2011. 5. 7. 08:30

오늘도 마르고 시든 반찬들이 냉장고와 밥상 위를 오간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 중 내 몸을 좋은 기운으로 채우는 것은 과연 몇 가지나 될까. 오랜 기간 사찰음식을 연구해온 운아 스님은 밥 한 공기에 국 한 사발, 그리고 한두 가지 반찬을 곁들인 1식 3찬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북한산 자락으로 올라가는 길에 자리한 연화사.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소박하고 아름다운 절이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 수련이 고개를 든다. 햇볕이 내비치는 부엌으로 들어서자 당귀차 끓이는 향이 진동한다. 달큰한 당귀차 향이 노스님이 담그신 50년 된 간장독 위에도, 돌계단 위에도, 수련이 만발한 연꽃 위에도 내려앉는다. 차를 권하는 스님 얼굴이 해사하다. 경주 석문사 주지를 역임하고 운아전통사찰음식연구소를 세운 운아 스님은 치자 물로 지은 밥 위에 각종 채소를 버무리는 중이다. 자그마한 손으로 연신 나물을 훔치는 움직임이 야무지다.

“사찰음식은 고기와 오신채(자극이 강하고 냄새가 심해 불교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음식물.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를 쓰지 않는다는 것 외에도 장점이 많아요. 약리작용이 많은 제철 재료를 사용하고, 인스턴트 물질도 없죠. 일단 절 주변은 대부분 공기가 맑고 물이 좋아 장을 담그면 맛이 살아나요. 참깨나 들깨도 방앗간에서 직접 빻아요. 하지만 이런 건 2차적인 문제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과하게 차려진 밥상을 받는다. 그러나 필요한 만큼만 덜어 먹는 발우공양은 지나침 없이 5대 영양소를 만족시킨다. 운아 스님은 식품의 성질과 필요한 영양소에 따라 몇 가지 음식만 남기고 소박하게 차린 1식 3찬의 밥상으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건강식품이 넘쳐나고, 음식의 영양가도 높아졌지만 오히려 현대 여성들은 골골하지 않는가.
“과한 식생활이 문제죠. 매운 음식이나 간수도 하지 않은 소금을 쓴 짠 음식을 좋아하는 데다 불규칙한 생활을 하고 제철 음식을 먹을 기회도 적습니다. 오랜 기간 잠복해 있던 것들이 면역성이 약해지면서 질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사찰음식으로 초기 암을 완쾌시켰다는 보고도 있다. 연근, 우엉, 더덕, 당근 같은 뿌리 음식과 밤, 대추 등 에너지를 많이 가진 열매는 사실 약리작용이 뛰어난 식물이다. “당귀를 끓여 마시면 생리통이 완화되고 겨울 내내 감기에 걸리지 않지요. 쑥은 피를 맑게 해주고 대두는 여성의 자궁을 건강하게 해줍니다. 인삼은 혈을 보해주죠. 콩은 또 얼마나 완벽한 식품입니까?”
이 영양분을 잃지 않기 위해 스님은 조리 시간을 짧게 가질 것을 권한다. 너무 많은 조미료를 넣고 오래 조리하면 재료가 가진 고유의 성질을 버리게 된다는 것.

“다음으로는 재료의 성질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당근으로 요리를 한다면 일단 이놈을 눈앞에 놓고 속속들이 들여다봐야 해요. 속까지 투명하게 다 알아야 하죠. 당근에는 지용성 비타민이 있기 때문에 기름을 좋아합니다.”
연근을 밥물에 함께 넣어 만든 연근밥상, 곰취나물을 주먹밥에 함께 버무린 곰취주먹밥, 백련의 잎을 따서 만든 연잎꽃밥 등 모두가 그 계절에 난 재료를 가지고 짧은 시간에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다. 이토록 쉽게 만드는 절밥이 맛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대부분 나물 종류가 많아 소화가 잘되죠. 기도를 끝내고 나오면 3년 굶은 것처럼 배가 고프다고들 해요. 보통 절에 오면 산에 오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공복 상태가 되죠, 하하.”
그러나 운아 스님의 말처럼 시장을 반찬 삼아 먹기에 사찰음식은 너무 맛있고 빛깔 또한 곱다.
 
사찰마다 유명한 특징 음식이 있는 것은 지역마다 특산물이 다르기 때문이다. 화엄사는 갓김치와 죽순나물, 해인사는 나물무침이 유명하다. 제철 재료를 사용하는 것 외에 내 몸에 맞는 1식 3찬을 차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운아 스님은 먼저 ‘몸이 필요로 하는 음식부터 찾으라’ 권한다. 감기 기운이 있고, 배탈이 나고, 두통으로 머리가 아플 때 등 그 상황에 맞게 몸이 원하는 음식을 택하는 것이야말로 1식 3찬의 기본이다. 햇빛과 땅의 기운을 받고 자란 제철 재료들에는 각자의 효능이 있으니 그것만 따져 취해도 음식이 곧 약이 된다. 스님은 두 번째로 ‘밥상 위 겹친 영양과 색을 빼라’고 주문한다. 무엇 하나 과잉된 영양소 없이 고루 섭취하는 게 1식 3찬의 핵심. 오방색(청·적·황·백·흑)을 고루 갖췄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음식의 색이야말로 맛과 효능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죠. 반찬은 3가지뿐이라도 어우러진 색깔과 맛은 10가지가 넘어요. 각자의 맛을 내다가도, 둘씩 셋씩 한 번에 즐기면 또 다른 맛이 생겨나기 때문이죠.”

흔히 절밥 하면 밥과 나물로만 차리는 지루한 채식 밥상부터 떠올린다. 희귀한 재료 없이 최대한 자연을 담기만 했는데도 1식 3찬 밥상은 더없이 화려해진다. 한 메뉴 안에 오방색이 다 들어 있어 사찰음식의 꽃이라고 불릴 만큼 화려한 색깔을 지니게 된 것. 1식 3찬은 발우공양에서 비롯됐다. 사람들은 아프면 약을 먹고 병원에 가지만 자연 스스로의 치유력을 믿는 스님들은 몸이 아플 때 밥상부터 바꾼다. 허기가 질 때는 조청 한 스푼으로 몸의 기력을 살리고, 과식 후에는 뭉글게 끓인 파래죽으로 기력을 보충한다.
규칙적인 생활과 정갈한 음식은 건강한 몸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차림을 적게 한다고 해서 영양소가 결핍될 일은 절대 없다. 하루 세 번 식사를 통해 충분한 영양을 고루 갖출 수 있도록 궁합을 맞추기 때문이다. 고기가 아니더라도 자연이 준 푸성귀, 열매, 곡식을 활용하면 더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다.

“한 사람이 고기를 먹지 않으면 20명이 허기를 달랠 수 있다고 해요. 채소나 열매에도 단백질이 풍부합니다. 우엉, 연근, 밤, 두부, 콩 한 가지로도 수십 가지 음식을 만들 수 있어요. 콩은 뿌리와 열매, 잎사귀 등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쓸 수 있죠. 단백질이 풍부한 완전식품이라 인체의 자연 치유력을 높입니다. 열매가 가진 에너지도 상당해요. 밤은 영양이 풍부하고 값도 싼데 5대 영양소까지 갖추고 있죠.”
발우공양에서 탄생한 1식 3찬은 제대로만 차리면 기름기 많은 고기보다 훨씬 좋은 보양 밥상이다.
 
민들레를 넣은 설기떡, 남은 수수를 넣어 찐 수수부꾸미, 고소한 콩밥경단. 투박한 사발에 여러 번 우린 차와 단순하지만 바로 쪄낸 설기 하나면 훌륭한 간식이 된다. 스님들은 수행과 공양 사이사이에 간식을 즐기면서 인스턴트 음식으로는 얻지 못할 건강함을 얻는다.
“음식을 할 때는 다른 생각은 전혀 안 합니다. 재료와 내가 하나가 되어야죠. 생각이 바르면 음식도 바르게 만들어지고 먹는 이도 바르게 먹게 됩니다.”
그래서 운아 스님의 밥상 철학은 바로 ‘진심’이다. 밥 짓는 진심. 불교에서는 국을 끓이는 스님은 갱도, 반찬을 만드는 사람은 채공, 밥을 짓는 스님은 공양주라 부른다. 불 떼는 이도 따로 있다. 쌀을 씻고 솥을 씻는 등 각종 심부름을 하는 막내(하)를 하다 1년이 되면 반찬을 만드는 것을 돕는 채공(중)이 된다. 밥물을 맞추는 공양주(상)가 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한다. 포지션은 다르지만 전심전력을 다해 음식을 만드는 이유는 밥 짓는 행위가 또 다른 수행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음식의 기운이 흘러나와야 맛있고, 자신의 마음이 틀어지면 음식 역시 독이 된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그래서 스님은 밥을 먹는 사람이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살라고, 좋은 기운을 가슴에 품은 채 밥을 짓는다.
“음식에도 기운이라는 게 서려요. 차를 마셔보면 그 차를 내온 이의 기운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받아 간 집에서 식사를 해보면 부부 사이가 어떤지도 알 수 있지요. 서로 싸운 부부들과 식탁에 앉으면 아무리 맛있는 된장으로 끓인 찌개도 맛이 없어요.”
운아 스님은 저서 <1식3찬 보약밥상>(도서출판 수작걸다)에서 밥과 국을 베이스로 맛은 물론 컨디션과 영양, 컬러의 궁합으로 약이 되는 보약 밥상을 소개한다. 사찰음식연구원에서 현재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찰음식 강좌를 하고 있고 불교 TV와 문화센터에서도 활동 중이지만 앞으로는 좀 더 긴 호흡으로는 사찰음식을 알릴 계획이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약이 되는 1식 3찬을 알리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긴 도정이다.
“잘못된 식습관은 많은 질병을 부르게 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을 고려해 조금 모자란 듯 먹어야 합니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밥상에는 미처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반찬도 많지요. 나이가 들면서 진한 화장과 화려한 액세서리를 내려놓듯, 우리의 밥상도 가벼워져야 해요.”
모두가 건강한 밥상을 말한다. 그러나 이 땅의 엄마들은 오늘도 반찬 걱정, 아이들은 매번 반찬 투정이다.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것이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자기 잘난 자랑을 하느라 모두 보태기만 하는 세상에서 오늘 하루쯤은 밥과 국, 반찬 2가지뿐인 소박한 밥상을 차려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