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라는 이름은 천리향 / 손택수
세상에 천리향이 있다는 것은
세상 모든 곳에 천 리나 먼
거리가 있다는 거지
한 지붕 한 이불 덮고 사는
아내와 나 사이에도
천리는 있어,
등을 돌리고 잠든 아내의
고단한 숨소리를 듣는 밤
방구석에 처박혀 핀 천리향아
네가 서러운 것은
진하디진한 향기만큼
아득한 거리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지
얼마나 아득했으면
이토록 진한 향기를 가졌겠는가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것은
살을 부비면서도
건너갈 수 없는 거리가
어디나 있다는 거지
허나 네가 갸륵한 것은
연애 적부터 궁지에 몰리면 하던 버릇
내 숱한 거짓말에 짐짓 속아 주며
겨울을 건너가는 아내 때문이지
등을 맞댄 천 리 너머
꽃망울 터지는 소리 엿듣는 밤
너 서럽고 갸륵한 천리향아
손택수 시인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19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 호랑이 발자국>
수주문학상, 신동엽 창작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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