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자전거로 찾아가는 문화기행]솔향 고도(古都) 강릉을 가다

아기 달맞이 2010. 10. 11. 08:17

경포해수욕장에 추억 한 점 남겨두지 않은 청춘이 있을까. 본격적인 휴가철에 앞서 자전거로 다녀온 강릉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오며가며 소나무를 느낄 수 있는 여유, 강원도를 보는 눈이 달라지는 나이는 과연 언제부터일까. (편집자 주)


수도권의 새벽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동해안 강릉 지역은 맑을 거라는 예보를 믿고 집을 나섰다. 고양터미널까지 자동차를 몰고 간 다음 그 안에 실은 자전거만 꺼내 들고 강릉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횡성 휴게소에 도착해 잠을 깨보니 비가 그쳐서 안도했다. 버스가 다시 강릉을 향하는 동안 대관령 초입의 횡계가 나오길 기다리며 왼쪽을 주시했다. 군에 간 아들이 복무하는 부대가 근처의 황병산에 있다. 아들이 근처 어딘가를 걸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횡계를 두리번거렸지만 버스는 속절없이 스치듯 달려갈 뿐이었다.

잠시 터널을 지나는가 싶더니 벌써 강릉이다. 새로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아흔아홉 구비라는 대관령 고개를 힘겹게 넘다 보면 차멀미를 하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그런 통과의례가 없어졌다. 멀미가 좀 괴롭긴 해도 대관령 옛길에서 보는 강릉과 동해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김홍도가 대관령에서 본 강릉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 있을 정도로 탁 트인 시야 속에 나타나는 풍경이 일품이다. 특히 강릉은 소나무 숲이 잘 보존된 도시다. 소나무 숲을 빼놓고는 강릉이 표현되지 않는다. 게다가 수많은 유적과 고택들이 소나무 숲과 함께하는 강릉은 정말 매력적인 도시다. 강원도라는 지명도 강릉과 원주에서 따온 것이다. 도청 소재지는 춘천이지만 일제 강점기 때부터 발전된 곳이어서 강원도의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의 얼굴은 역시 강릉이 아닐까.

강릉미술관 유감
강릉에 도착한 날이 마침 단오제 일정의 마지막 날이었다. 중국 단오를 제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 전통 축제 가운데서도 오래된 대표적인 것이다. 오전에는 볼 만한 행사가 없어서 터미널에서 그리 머지않은 강릉미술관을 찾았다. 단오와 관련된 미술 행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 그 자체였다.

옛날 법원이 있던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강릉미술관은 아담하고 아늑해 보이는 것이 꽤 훌륭한 외관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별다른 전시는 없고 소장품 상설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부 전시장 마루는 볼록 솟아 있는 것이 오래도록 방치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유명한 단오제 기간이기에 그에 걸맞은 기획전시가 있을 법하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하다. 왜 미술관을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문화에 목말라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건물 속의 미술관이나 공연장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저잣거리에서 보는 가공되지 않은 것을 더 중시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왕 설립한 미술관이라면 제대로 운영하고 관리해서 문화 복지 및 관광 차원에서 무언가 생산을 유발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영동 지방의 중심지로서 손색없는 운영의 묘가 절실했던 것이다. 일본 세토 내해(瀨戶內海)의 볼품없는 섬 나오시마(直島)에 미술관을 설립해 매년 2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는 사례는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인 모양이다.

오죽헌과 시립박물관
강릉미술관을 나서서 오죽헌 방향으로 자전거를 달렸다. 속초 방향으로 약 3km를 달리다 보면 죽헌동인데, 왼쪽에 오죽헌을 상징하는 죽림이 나타난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곳이 바로 그 유명한 신사임당과 율곡 선생이 태어난 오죽헌으로 사임당의 친정인 셈이다. 오전 시간이지만 명소답게 많은 관람객들이 있었다. 보물 제165호로서, 본채 없이 별당만 남아 있는 것이 아쉽지만 500년 넘게 보존된 전통가옥 가운데서도 별당 건축의 귀중한 유적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율곡 선생의 본가는 경기도 파주지만 사임당이 출산을 하기 위해 강릉으로 갔던 것이다. 신사임당의 부친 신명화는 사화를 피해 출사를 하지 않았지만 딸의 총명함과 비범한 재능을 발견하고서 학문과 그림 등의 지, 덕, 예 교육을 시켰던 것이 그대로 율곡에게 전해져 대석학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된 것이다. 강릉이 배출한 또 한 명의 여류 문인 허난설헌(허균의 누이)도 우리 국문학사에서 손꼽는 문재였던 것을 보면 강릉의 사대부들은 타 지역과 달리 딸에게도 글공부를 시키는 진보적인 풍토가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죽헌 밖으로는 강릉시립박물관과 민속박물관이 쌍둥이 한옥 양식으로 근사하게 지어져 있다. 박물관에는 영동 지방에서 출토된 선사 유물들과 많은 역사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강릉 하면 떠오르는 경포해수욕장만 생각하고 온 사람들은 이 박물관에서 많은 역사 공부를 하게 되고, 유서 깊은 강릉에 대해 더 큰 매력을 갖게 될 것이다. 오죽헌과 연계된 곳이어서 관람 동선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박물관의 위치 선정이나 디자인, 소장품 내용들 모두 괜찮은 느낌이다.
1관동팔경의 대표인 경포대.2경포대에서 바라본 경포호반.3복원된 낙산사 원통보전.4강릉 솔향의 상징 소나무.5초현실적인 환상을 주는 휴휴암.6허균과 허난설헌의 생가.

경포호반
경포호반으로 가기 전에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선교장(船橋莊)이다. 오죽헌에서 북쪽으로 500m 정도 가다 경포호 방향으로 우회전해 1km 정도 가면 참으로 근사한 고택 선교장이 나온다. 활래정이라는 정자를 받치고 있는 연못을 지나면 솟을대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집주인의 지체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효령대군 11대손 이내번이 집터를 잡아 짓기 시작한 선교장은 이후 10대에 걸쳐 계속 증·개축을 해오는 가운데 99칸으로 된 전형적인 사대부 최상층 가옥으로 손꼽힌다. 그림 같은 송림을 배경으로 한 기와집들이야말로 품격과 아취가 넘치는 우리 건축미학의 수준을 확인시켜주는 고택이다. 여기엔 ‘열화당(悅話堂)’이라는 구한말에 지은 사랑채가 있는데, 바로 열화당 출판사(대표 이기웅)의 모태가 된 곳으로 알려졌다. 구한말에 동진학교를 설립한 선각자답게 학문적인 토론을 나눈 장소도 별도로 마련했던 점이 그 가문의 지성적 면모를 말해주고 있다.

선교장을 나와서 경포호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유명한 초당 두부 식당들이 즐비하다. 붐비는 식당을 피해 한산한 식당 마당 별채에 자전거를 안전하게 거치시키고 순두부 백반을 주문했다. 게 눈 감추듯 다 비우고는 잠시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다. 다시 길을 나서 가까운 경포대로 이동했다. 경포호반에 있으면서도 숲에 가려 그 전모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높은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호수와 시원한 바람이 여행자에게 더없는 행복감을 선사해주었다. 이곳에서는 외국인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도 정자가 있는 곳은 일단 풍광이 아름답다는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30여 년 만에 다시 올라본 경포대다. 주변 환경이 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딘지 모르게 호수의 모양도 달라져 있었다. 동해안 호수들은 석호로 변형되는 것이 불가피한 자연현상이라지만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
경포대 바로 옆에 있는 에디슨과학박물관과 참소리박물관도 제법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손성목 관장 개인의 열정과 집념이 감동을 주는 곳이다. 과학사적 가치가 있는 컬렉션을 통해 과학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연출도 눈길을 끈다. 그곳을 거쳐 호수 반대편까지 자전거도로를 타고 가야 한다. 맞은편 초당 지역에 조선시대의 문호 허균과 허난설헌을 배출한 생가와 기념관이 있기 때문이다. 경포호반을 따라 달리는 길에 작렬하는 태양과 시원하게 부는 바닷바람, 이 모두가 한여름 자전거 여행의 벗이자 활력소다. 호숫가에는 일러스트 조각들이 놓여 있었는데 해학이 넘치는 작품들이기는 하나 사색을 즐기는 이들에겐 다소 산만하게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호수를 벗어나 초당의 끝없이 펼쳐지는 적송 숲에 당도했다. 어떻게 도시에 이런 소나무 숲이 잘 보존될 수 있었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허균, 허난설헌의 생가는 원형 그대로인지 여부는 알 길이 없지만 비교적 아담하고 소박한 편이다. 허균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그의 누이 허난설헌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문재는 남동생 허균보다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뒤떨어지진 않았던 것 같다.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질서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내면의 복잡한 심경을 승화하고 토로하는 시작들이 충격적이다. 안타깝게도 스물일곱 살에 요절해 그의 문학세계가 미처 결실을 보지 못하고, 천재적 재능만을 세상에 알리는 것으로 그친 비운의 인물이다. 다행히 문학의 동지였던 남동생 균이 213수의 유고를 수습해 유성룡의 서문을 받고 이것을 입국한 명나라 문인들에게 보여주어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출간되었으며 이후 조선, 일본에서 연이어 그의 문집이 출간됨으로써 사후에야 국제적으로 필명을 떨친 인사가 되었던 것이다.

에필로그
오후 4시경, 경포해수욕장 방향으로 다시 되돌아가 그로부터 주문진, 양양을 거쳐 속초로 이동을 해야 했다. 속초까지는 65km 정도 되는 거리다.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보는 해안 풍경이 인상적이다. 올라가는 길에 만난 휴휴암이 연출하는 초현실주의적인 풍경, 몇 년 전 화재로 불탄 낙산사가 새롭게 복원되고 단장된 모습 등이 무엇보다 반갑고 인상적이었다. 해수욕장들마다 개장 준비 중이나 일찍 찾아온 더위를 피하려는 많은 인파들로 붐비고 있었다. 동해안의 풍경들 가운데 으뜸가는 것은 역시 소나무 숲이다. 소나무 숲을 따라 환경 친화적으로 조성된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상쾌한 기분을 누가 알까. 이번 여행은 소나무로 시작해서 소나무로 마치는 여행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친근감이 생기는 소나무. 인위적인 직선보다는 자연스러운 곡선이 좋아지면서 소나무가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이치를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필자 이재언은
1958년생. 강원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상명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선갤러리 아트디렉터 및 한국공예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1989년부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는 한편 2006년부터 인천-서울, 일산-서울 장거리 ‘자전거 출근’과 함께 자전거 문화와 미술을 접목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역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책세상)

글&사진 / 이재언(미술평론가) 취재협조 / 울프 라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