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요리시간

솜씨 유난한 스님에게서 배운, 절집의 특별식

아기 달맞이 2010. 7. 21. 08:38

 

관악산 자락 꼭대기 동네의 길상사에 가면 일단 현대식 건물에 마련한 의외의 사찰 모습에 놀란다. 조각낸 도자기 타일을 붙여 만든 앞마당 벽화는 가우디의 작품이라 해도 속을 법하고, 초파일이면 높낮이를 달리해 리듬감 있게 달아둔 연등은 마치 모빌 같다. 공양이라도 한 끼 하는 날이면 일식삼찬의 소박한 밥상에서 맛보는 깊은 맛에 반하는데, 오신채도 멸치도 없이 주부들보다 박한 재료로 만드는 국과 나물이 왜 그리 맛있는지. 수년간 요리 기사를 썼고 결혼 후 요리책을 들춰가며 곧잘 실습도 한 기자는 역시 음식은 손맛인가 싶어 주눅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2년여를 매달 음식 장만하는 스님 옆에 붙어 있다 보니 기자의 육식주의자 남편도 칭찬하는 채소떡국을 끓여내기에 이르렀다. 소금 간의 깔끔한 맛과 간장 몇 방울을 떨어뜨렸을 때의 감칠맛, 소금과 간장을 적절히 쓰는 법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표고버섯과 다시마로 낸 맛국물로 재료의 본디 맛을 살리는 감각도 대강 익혔다. 고추장과 된장 외에 일본 된장과 땅콩버터를 약간 넣는 스님의 쌈장 레시피도 두루두루 요긴하게 써먹고 있다.

묵은 김치를 넣어 하나도 안 느끼한 크림스파게티


크림스파게티를 한 접시를 비우고 나면 딱 김치 생각이 난다. 스님은 이 2%의 느끼함을 어찌 덜어낼 수 없을까 생각하다 아예 스파게티에 묵은 김치를 넣었다. 김치는 양념을 씻어내고 줄기 부분만 썰어 넣는데 이파리보다 모양새도 단정하고 아삭아삭 씹히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표고버섯과 맛타리버섯은 팬에 꼬들꼬들하게 구워 꾸미 대신 올리는데 이 역시 식감을 고려해서다. 그런데 스님이 스파게티에 들어갈 리 없는 미나리 줄기를 7~8cm 정도 길이로 다듬기에 이유를 물으니 희멀건 크림스파게티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서 면발처럼 길게 잘라 넣는 것이라 한다. 미나리 줄기와 함께 파슬리 가루를 살짝 뿌려 그린 컬러 포인트를 준 크림스파게티는 꽤 싱그럽다.

정월대보름 복(福)을 싸서 먹는다는 복쌈


정월대보름에는 부럼, 오곡밥, 귀밝이술과 함께 복을 싸서 먹는다는 의미로 쌈을 먹는다. 스님은 그즈음이 김장 김치가 맛있게 익을 때라며 김치 한 쪽, 시장 가서 사온 봄동 한 포기, 찬장에 있는 곰취장아찌와 조미 김을 꺼내 쌈밥을 차려 대접한다. 정위 스님이 커다란 접시에 둘러 담은 쌈밥은 초록과 빨강, 검정 등의 다채로운 컬러와 손으로 꼭꼭 눌러 싼 소담한 모양새가 먹음직스럽다. 쌈을 쌀 때 김은 동서남북 놀이처럼 네 귀퉁이를 꾹 잡아 눌러 교자만두 비슷하게 모양을 내고, 봄동은 오픈 샌드위치처럼 밥을 잎 위에 올리고, 김치 이파리와 곰취장아찌에는 밥을 넣고 얌전하게 돌돌 만다. 칙칙한 김치쌈에는 미나리 줄기를 둘러 포인트를 주었다.

화려한 컬러 배색이 돋보이는 묵채와 묵전


청포묵과 도토리묵으로 만드는 묵채와 묵전은 정위 스님이 와인 상에 안주로 내거나 밥상에 애피타이저로 내는 메뉴다. 여느 집에서 하듯 묵을 채 썰어 채소를 올리고 도토리묵으로 전을 부치는 평범한 음식인데, 컬러 배색을 고려해 담아낸 차림새는 꽤 근사한 메인 메뉴 같다. 묵채를 낼 때 하얀 청포묵 위에는 당근, 미나리 등 원색 재료를 올리고, 도토리묵 위에는 새하얀 배를 올려 블랙과 화이트의 청량감을 살린다. 스님은 배를 채 썰 때 손을 깨끗이 닦으라고 당부했는데, 참기름이나 다른 양념이 묻어 있으면 하얀 컬러도 배의 시원한 맛도 반감되기 때문이란다.

기획 이나래 | 포토그래퍼 김성용 | 여성중앙


김치 크림스파게티




묵은 김치 크림스파게티
버섯과 미나리를 넣어 담백하게 즐기는 김치 크림 스파게티


기획 이나래 | 여성중앙


쌈밥




모듬 쌈밥
여러가지 쌈에 싸 먹기 편한 모듬쌈밥. 손님 접대용으로도 좋다


기획 이나래 | 여성중앙


묵채




야채를 곁들인 묵채
여러가지 야채를 올려 화려한 색이 먹음직스러운 묵채. 에피타이저로도 손색이 없다

기획 이나래 | 여성중앙


묵전




도토리묵 전
도토리묵을 노릇하게 구워 즐기는 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