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방

찻사발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법

아기 달맞이 2010. 6. 16. 23:47

차는 옛날부터 의식주인 쌀만큼 중요시되었으며 오랜 동양 역사에서 부터 마시는 기호품의 차원을 넘어, 차를 마신다는 것은 ‘다도’, ‘다법’, ‘다예’로 인격을 수양하는 행위예술로 승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찻사발의 아름다움이란 객관적 명제가 아니라 주관적 명제이나 사랑을 많이 받은 명품 찻사발을 분석해보면 통일적이고 객관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찻사발은 사용함으로써 아름다움을 느끼는 예술품입니다. 찻사발의 미학을 좀더 심도 있게 알아보겠습니다.

1. 품격 : 찻사발의 멋

명품 찻사발을 국가별로 한 점씩 소개하면 한국의 진주사발(일명: 井戶), 중국의 천목찻사발(天目茶碗), 일본의 락(樂)찻사발이 있습니다.(처음부터 찻잔의 용도로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찻잔으로 사용된 것을 사발이라 부르며 처음부터 찻잔의 용도로서 만든 것을 찻사발이라 부른다...필자 생각)

밤하늘의 은하수를 상징하는 중국의 천목찻사발은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말차도를 가장 애용하는 일본에서는 이미 400년 전에 찻사발의 황제자리를 우리의 진주사발에 빼앗겼습니다. 천목찻사발의 빛나는 아름다움은 고요하고 정적이며 깊은 철학적 요소를 담고 있는 우리의 진주사발의 자연미(自然美)와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진주사발:명喜左衛門井戶,일본국보
ⓒ 대덕사고봉암
▲ 천목사발,일본 국보
ⓒ 아티카컬렉션
▲ 락찻사발(樂茶碗)
ⓒ 향설











400년 전 조선의 기와공이 일본으로 건너가 만들기 시작한 락(樂)찻사발은 찻사발로서의 품격은 완벽하나 지나치게 인위적인 자태가 특징이며 단점입니다. 한국의 깊고 푸른 가을 하늘을 담고 있으며 세련미의 극치인 고려청자 사발과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백자사발도 명품 찻사발이나 찻잔으로서는 차갑게 느껴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개인차는 있을 수 있겠지요.

2. 요변(窯變) : 찻사발의 생명과 같은 존재

▲ 조선사발(일본명:蕎麥茶碗), 푸른색이 요변에 의해서 발색된 부분.
ⓒ 향설
도자기가 작품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똑같은 것이 2개 이상 존재하여서는 안 됩니다. 장작가마로 구워진 찻사발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장작가마에서는 요변(窯變)이라는 특이한 현상이 있습니다. 요변이란 가마에서 타는 장작불로 인한 화학적 결합에 의해 나타나는 도자기의 자연적 발색입니다.

사기장(도공의 순수한 우리말)에 있어서는 장작이 화가의 붓에 비유됩니다. 가스가마의 온도와 불꽃은 인간이 정한대로 가마 속 그릇에 전달되지만 장작가마는 가마내의 기압, 습도, 장작의 두께, 장작의 포개짐 등으로 인한 인간이 통제하기 불가능한 변수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도예가가 의도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런 결과로 실패의 아픔도 많이 느끼지만, 신의 도움으로 명품을 얻기도 합니다. 이러한 도전이 장이로서의 사기장의 길인 것입니다.

3. 흙맛(土味)

▲ 양산토미사발:일본명.카키노헤타찻사발
ⓒ 하다께야마기념관
도자기에 있어서 흙이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도예는 첫번째도 흙, 두번째도 흙, 세번째는 불이라는 말이 있듯이, 옛날부터 사기장은 질 좋은 흙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었습니다.(요즘은 흙 공장에서 공급하는 경우가 많음.)

근성 있는 사기장은 자기만의 흙을 고집하며 한점 한점 색다른 흙맛을 살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실 흙맛이란 글로서는 표현할 수 없으나 명품 찻사발을 깊이 고찰해 본다면 누구든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찻사발은 흙맛의 표현을 위해 유약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흙과 유약이 결합하여 마치 유약이 없는 듯하면서 흙 자체의 발색이 나타나야 명품 찻사발은 탄생하게 됩니다. 가격면에서도 조선 사발이 다른 골동품 도자기 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는 위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4. 차색(茶色) : 변하지 않는 찻사발은 죽은 사발이다

▲ 차색이 스며든 연질백자사발, 일본명:堅手茶碗
ⓒ 후쿠오카시미술관
찻잔에 차 마신 흔적이 나타나는 것을 차의 세계에 있어서는 찻잔을 길들인다고 합니다. 차인의 차 타는 솜씨와 찻잔이 만나 새롭게 명품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 좋은 찻사발인 것이지요.

외국에서는 찻잔 속에 스며든 차색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찻사발 품평회를 갖곤 합니다. 찻사발에 깃든 차색의 분위기로 그 찻잔을 사용한 사람의 인격까지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찻사발을 선택할 때에는 세월이 흘러 차색이 깃든 찻사발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실 백자 사발, 청자 사발이 찻사발과 비교해 명품이 적은 이유는 차를 마셔도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5. 굽 : 찻사발의 숨어있는 아름다움

▲ 양산흙날사발, 일본명:魚屋茶碗
ⓒ 미쓰이문고별관
좋은 찻사발에는 사기장의 깊은 정성이 숨어 있습니다. 말차를 마시고 난 뒤 사발을 뒤집어 보면. 굽 부분에 사기장의 모든 노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굽 깎기를 통해 찻사발의 자연미를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흔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찻사발에 있어서 굽 부분의 자연미가 사기장의 실력인 것입니다. 서도의 일필휘지란 말과 같이 단 한번의 손놀림으로 찻사발을 예술로 승화시켜야 함이 사기장의 운명인 것입니다. 심미안을 가진 차인이라면 찻사발의 굽을 통해 도예의 진수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6. 정면과 후면 : 찻사발에는 앞과 뒤의 구별이 있다.

▲ 제기용 사발:일본명吳器茶碗, 손자국이 있는부분을 앞부분으로 한다.
ⓒ 만노미술관
대개의 찻사발은 둥그렇습니다. 그러나 앞과 뒤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뭔가가 있습니다. 하나의 찻잔은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골라 앞면으로, 반대쪽을 뒷면으로 정합니다.

한국에서 전파된 일본의 다도에서 차를 타서 줄 때 찻잔을 한두 바퀴 돌려 주는 것은 차를 마시는 자에게 아름다운 앞면을 감상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며 찻잔을 받은 사람이 다시 돌리는 것은 겸양의 표시로 차를 타 준 사람에게 앞면을 감상할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사실 찻잔의 앞과 뒤의 구분은 ‘다도’, ‘다법’에서는 중요한 의식행위입니다. 찻사발의 1/3은 작가인 사기장이 만들며, 1/3은 가마속에 타는 불꽃이 요변이라는 소성행위(도자기를 굽는 것)를 통해 예술로 승화되고, 1/3은 찻사발을 사용하는 차인이 자기의 심미안을 통해 찻잔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찻사발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7. 전부분 : 찻사발을 감상할 때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

▲ 김해흑백각굽사발:일본명고소마루찻사발, 두툼한 전부분을 볼 수 있다.
ⓒ 미쓰이문고별관
찻그릇을 빚는 사기장이 물레를 돌릴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전부분을 빚는 것과 굽 깎기입니다. 전 부분은 두툼하게 보여야 합니다.(찻사발에 입을 대어 보면 느낄 수 있다.) 또한 전 부분은 둥근 원형이 아니라 개성적 비대칭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술품이기에 획일적인 것은 거부되어야 합니다. 전이 안쪽으로 오그라들지 않고 바깥쪽으로 약간 기울어져야만 차를 마시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8. 무게 : 명품 찻사발은 무겁게 보이나 들면 가볍다

우리 조상이 빚은 찻사발 중 가장 유명한 진주사발(井戶茶碗) 그 중 '희좌위문정호(喜左衛門井戶)'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일본에서 가장 먼저 국보가 된 사발이 있습니다. 높이 8.9cm, 넓이 15.4cm,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도자기의 조금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사발의 무게가 360g이라면 놀랄 것입니다.

필자는 이 사발을 여러 번 친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위대한 조선의 명품을 내 손으로 잡았을 때, 마치 종이를 드는 것과 같은 가벼움을 느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세계의 미학자나 차인들은 인간이 빚은 것이 아니라 신이 빚은 것이라 감탄할 정도입니다.

필자는 86년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박물관, 특히 일본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있는 명품이라 할 수 있는 찻사발을 박물관 유리관 속에 들어 있는 채로 본 것이 아니라, 직접 눈과 손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여기서 필자의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정말 조선 도공은 위대하다’라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9. 개성미 : 찻사발에 스며든 작가의 개성미

좌측의 글씨체는 단지 일반 찻사발에 해당된다면, 우측의 글씨체는 작가의 개성미가 돋보이는 찻사발에 해당됩니다. 장이 정신을 가지고 옛 선조 사발을 재현한 사기장의 작품은 분명히 그 작가의 개성미가 녹아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개성미와 좋은 찻잔을 판단하는 것은 심미안과 철학을 가진 차인들의 몫입니다.

▲ 일본에서 국보가 된 진주사발(井戶茶碗)을 친견하는 필자
ⓒ 신한균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나네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진정한 차인이라면 차와 찻사발의 존재의 의미와 본질을 예술로 승화시켜야 함은 물론 찻사발의 이름을 붙여주는 노력도 필요로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각자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찻사발은 조상 대대로 사용하여 손때가 묻은 찻사발을 계속 사용할 때 가장 좋은 찻사발이라 필자는 생각합니다.
신한균 기자는 도예가 신정희의 장남입니다. 현재 경남 양산 통도사 부근에서 작도 활동과 <잃어버린 사발을 찾아서>란 책을 집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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