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글

시대의 참 어른’ 법정 스님이 남긴 이야기들

아기 달맞이 2010. 4. 21. 07:15

법정 스님이 ‘맑고 향기롭게’ 한 세상 살다가 78세를 일기로 지난 3월 11일 입적하셨다. 스님은 말 한 마디, 글 한 문장에서 잘못된 시대를 꾸짖고 세상 번뇌를 위로했다. 법정 스님의 큰 가르침은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구름 한 조각, 스님의 일생
법정 스님은 1932년 10월 8일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님은 대학 재학 중 한국전쟁을 통해 경험한 인간의 존재에 고민하다가 1955년 출가를 결심한다.

“한핏줄, 이웃끼리 총부리를 맞대고 미쳐 날뛰는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과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 밤새워 묻고 또 물으면서 고뇌와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오대산으로 가기 위해 밤차를 타고 서울에 내린 스님은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지인의 소개로 서울 안국동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 스님(1888~1966,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한 후 초대 종정)을 만났다. 효봉 스님은 법정 스님의 얼굴을 살펴보고 생년월일을 묻더니 그 자리에서 승낙하고 머리를 깎았다.

“삭발하고 먹물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나는 그 길로 나가 종로통을 한 바퀴 돌았다.”

이후 효봉 선사의 거처인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하루에 나무 두 짐씩 해다가 아궁이마다 군불을 지피며 힘겨운 행자 시절을 보냈다. 법정 스님은 이듬해 7월 보름, 정식으로 스님이 되는 사미계를 받은 후 선사를 지리산 쌍계사 탑전으로 옮겼다.

“나는 이 시절을 두고두고 감사한다. 무슨 일에나 처음 먹은 마음과 시작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소 겪어 터득할 수 있었다. 그때 여럿 속에 섞여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그럭저럭 지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돌이켜보면 아찔해진다.”

1960년 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통도사에서 운허 스님과 함께 「불교사전」 편찬에 참여하다가 4·19혁명과 5·16혁명을 겪은 스님은 1960년대 말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법정 스님은 이 시절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과 유신 철폐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불교 종단에서는 이런 나를 마치 무슨 보균자처럼 취급했다. 기관원이 절에 상주하다시피하면서 감시하고 걸핏하면 연행해가서 괴롭혔다. 군사독재의 당사자들에게 적개심과 증오심을 품게 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스님은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충격을 받는다. 반체제운동의 의미와 출가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고민하다가 다시 걸망을 짊어진다.

“죄 없는 그들을 우리가 죽인 거나 다름이 없다고 나는 자책했다. 출가수행자로서 마음에 적개심과 증오심을 품는다는 일 또한 자책이 됐다. 무슨 운동이든 개인의 인격 형성의 길과 이어지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5년 10월 미련 없이 서울을 등지고 산으로 돌아갔다. 출가 본사 송광사로 내려온 법정 스님은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펴낸 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불일암 생활 17년째 되던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에서 지금까지 혼자 지내왔다.

법정 스님이 펼친 유일한 대중과의 소통은 길상사에서 열린 정기 법문뿐이었다. 길상사는 1996년 고급 요정이던 성북동의 대원각을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김영한씨(1999년 별세)로부터 아무 조건 없이 기부받아 이듬해 12월 창건했다. 법정 스님은 회주로 주석하면서 1년에 여러 차례 정기 법문을 들려줬다. 2003년 12월에는 길상사 회주 자리도 내놓았다.

법정 스님은 건강이 나빠지면서 지난해 겨울은 제주도에서 보냈다가 건강 상태가 악화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의식이 또렷하게 유지될 때면 강원도 오두막에 가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

“내가 산중에서 사는 일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그저 내 식대로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걸 보면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홀로 살았으나 언제나 함께였다
법정 스님은 평생 출가수행자였다. 스님의 삶을 통해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를 여실히 보여줬다. 스님은 한 번도 종단 행정을 보거나 사찰의 소임을 사지 않고 홀로 조용하게 살다 간 것이다. 다른 성직자들이 높은 직책을 임명받거나 사회,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면 법정 스님은 올곧고 순수한 인격만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드러나길 싫어해 깊은 산속에서 숨어서 지냈지만 오히려 그것이 스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점점 크게 만들었다.

법정 스님은 비단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과 비유로 불교 교리를 삶의 철학으로 전파시켰다. 읽는 것만으로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드는 스님의 책은 늘 베스트셀러였다. 1976년 출간된 「무소유」는 지금까지 34년간 약 180쇄를 찍은 우리 시대 산문집이다.

법정 스님은 다른 종교와 벽을 허물었던 것으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스님은 길상사 마당의 관음보살상을 독실한 천주교 신자 조각가인 최종태 전 서울대 교수에게 맡겨 화제를 모았다.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법회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방문했다. 법정 스님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하기도 했다. 스님은 홀로 산속에 살았지만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님을 추모하며 영원히 기억한다.

법정 스님이 남긴 어록

용서와 사랑

‘용서가 있는 곳에 신이 계신다’는 말을 기억하세요. 용서는 저쪽 상처를 치유할 뿐 아니라 굳게 닫힌 이쪽의 마음의 문도 활짝 열게 합니다.
-2004년 길상사 봄 정기 법회에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산문집 「봄여름가울겨울」 중에서

무소유
행복의 비결은 적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할 줄 아는 데 있다. 자기 그릇을 넘치는 욕망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넘친다는 것은 남의 몫을 내가 가로채고 있다는 뜻입니다.
-2008년 길상사 하안거 해제 법회에서

우리는 필요에 의해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산문집 「무소유」 중에서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게 활기가 있는 것이다. -산문집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산문집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 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산문집 「일기일회」 중에서

신도들이 법정 스님의 거화의식을 지켜보고 있다.
먼 길을 가려면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지니기에는 짐이 되는 것들은 내 것이 아닙니다. -2005년 운문사 법회에서

놓아두고 가기! 때가 되면,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생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생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2003년 하안거 결제에서

세상을 하직할 때 무엇이 남겠나. 집, 재산, 자동차, 명예. 다 헛것입니다. 한때 걸쳤던 옷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웃과의 나눔, 알게 모르게 쌓은 음덕. 이것만이 내 생애의 잔고로 남습니다.
-2006년 부처님오신날 법회에서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는 순간은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 일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산문집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죽음은 삶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모든 열매에 씨앗이 박혀 있듯이, 삶 속에는 죽음이 씨앗처럼 박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자각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삶을 빛내기 위해서 죽음도 자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뒷면인 그늘도 자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늘이 없는 물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길상사 봄 정기 법회에서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산문집 「오두막 편지」 중에서

법정 스님의 영정과 운구가 다비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
-산문집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종교
모든 종교는 그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나의 종교다. 종교를 가진 것을 티 내지 말라. 종교로 가족·지인과 절대 싸우지 말라.
-2009년 산문집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이라는 것을 마음에 거듭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작은 친절과 따뜻한 몇 마디 말이 이 지구를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 역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004년 하안거 결제에서

습관적으로 절이나 교회에 다니지 마세요. 왜 절에 가는지, 왜 교회에 가는지 그때그때 스스로 물어서 어떤 의지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삶이 개선되죠. 삶을 개선하지 않고 종교적 행사에만 참여한다고 해서 신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2009년 길상사 봄 정기 법회에서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자료 제공 / (사)맑고 향기롭게, 길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