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직영 사찰음식점 '바루' 총책임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기대를 버리고 오세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수 있으니까요. 드시고 나서 '세간의 음식과는 좀 다르구나'하고 느끼시면 그것으로 다행입니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맞은 편에 자리 잡은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 5층에는 특별한 음식점 '바루(BARUㆍ鉢盂)'가 있다.
불교 조계종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첫 사찰음식 전문점이라는 입소문 때문일까. 이달 1일 정식 개점해 일주일 남짓 지났지만 벌써 예약이 쉽지 않다.
건축가 승효상의 설계로 센터 입구에서 5층까지 계단으로 108보를 걸으면 도착하는 바루. 입구에서부터 스님들의 식기인 발우 세트를 만날 수 있다.
바루에서는 사찰음식 전문가인 대안 스님(49)이 총지휘관이다. 맑은 피부에 공손한 몸가짐의 여스님이지만 음식재료 선택에서부터 메뉴개발, 9명의 직원관리와 경영까지 도맡는 책임자다운 깐깐함도 엿보인다.
|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강렬한 어떤 맛을 지향하기보다는 모든 음식을 담백하고 청정하게 해 불교에서 말하는 삼덕(三德)을 지키면서 육미(六味)를 내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스님이 말하는 삼덕은 청결, 유연, 여법(如法)이다. 음식이 청결하고, 부드럽고, 법도에 맞아야한다는 사찰음식의 기본 철학인 셈이다.
오신주육(五辛酒肉)도 배제한다.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 등 오신채와 술, 고기를 쓰지 않으면서 맵고, 쓰고, 달고, 시고, 짜고, 싱거운 여섯가지 맛을 내는 것이다.
전주 출신으로 1985년 해인사로 출가한 대안스님은 15년째 경남 산청 금수암의 주지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서울에서, 주말은 금수암에서 지내면서 바루 개점을 준비해왔다.
바루에서 쓰이는 식재료는 모두 스님이 책임진다. 금수암 주변의 밭에서 시골 할머니들이 기른 배추는 요소 비료를 많이 치는 시중의 대량생산 배추와는 맛부터 다르단다. 1년 전부터 능이, 표고버섯 등 주요 음식재료를 대량으로 구매해 냉동 보관하고 각종 장아찌와 장도 담갔다.
그릇은 사찰 음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원주 옻을 9번 칠한 인간문화재 김을생 선생의 물푸레나무 발우를 구입해 준비했다.
이런 준비과정을 통해 탄생한 바루의 메뉴는 스님의 정성과 노력이 그대로 녹아있는 결과물들이다. 각종 산야초에 찹쌀 풀을 톡톡하게 입혀 만든 부각, 귤이나 사과를 얇게 저며 건조기에 말려 만든 과일칩 등의 주전부리부터 예사롭지 않다.
지리산 능이버섯과 은행을 다져 넣은 능이죽, 산더덕과 신선초 위에 잣 소스를 뿌린 샐러드, 유자소스를 곁들인 산삼과 산마, 초밥을 오대산 곰취로 싸고 죽순 저민 것을 얹은 절집 초밥, 가죽순과 제피, 녹두, 두릅 등을 얌전하게 지진 삼색전도 담백하고 맛깔스럽다.
사찰음식인 만큼 버섯을 유달리 풍성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표고, 새송이, 양송이 느타리버섯 등을 튀겨 고추장소스에 버무려 바루 최고의 인기메뉴가 된 버섯강정을 차려낸 다음에는 자연송이와 마, 연잎을 썰어넣고 훌훌 떠먹을 수 있게 만든 누룽지탕을 내놓는다.
찹쌀을 유기농 연잎에 싸서 은행, 대추, 밤 등을 넣고 두 번 쪄내 노르스름한 색과 향이 독특한 연잎밥은 각종 산나물과 장아찌, 금수암 김치와 곁들여 먹게 한다.
|
|
바루에서 내놓는 사찰음식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담백하고 정갈하다"는 평가는 이구동성이지만 진한 조미료에 길들여진 속인들의 입맛에는 뭔가 부족하고 아쉬운 듯도 하다.
대안 스님은 "모든 분의 입맛을 맞출 수는 없고 그것을 목표로 하지도 않는다"고 잘라말하면서 "사찰 음식을 먹으려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음식에 대한 상식을 버리고 좀 다른 것을 먹으러 왔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세간의 음식과는 좀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끼면 다행입니다. 정갈하고 안전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죠. 절집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변고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지 주린 배를 채우려고 의미없이 먹는 것은 아니거든요. 봄이면 감기를 막으려고 쓴맛이 있는 산나물을 먹고, 가을에는 뿌리음식을 먹어서 환절기 기침 가래를 삭이는 것이 그렇습니다."
대안 스님은 "24년간 승려생활을 하면서 '사찰음식은 어떠해야한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때깔이 좀 떨어지더라도 제대로 만들어진 음식재료들을 정갈하고 담백하게 조리해 먹고 난 후에도 몸에 부담을 주지 않고 약이 되게 하는 것이 사찰음식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대안 스님은 동국대 가정학과에서 '한일 사찰음식의 식생활 비교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따고 현재 박사학위를 준비 중이다.
또 '사계절 절집 밥상'이라는 220쪽 분량의 단행본을 곧 출간, "절집에서는 다 알고 있지만 조금 더 보충하면 일반 가정에서도 충분히 한 상을 차릴 수 있는" 사찰음식을 세상에 소개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바루에서 선보이고 있는 메뉴들도 모두 포함된다.
|
'그곳에 가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맛집 / 가산토방 [향토음식점] (0) | 2010.02.25 |
---|---|
차는 풍류가 아닌 혁명이다 - 부산 달맞이고개의 다실, 이기정 (0) | 2010.02.24 |
자전거로 찾아가는 문화기행]전통 예술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안성’ (0) | 2010.02.21 |
인사동 지리산 한정식 (0) | 2010.02.21 |
추위와 바람이 만든 걸작, 명태와 황태 찾아 떠난 여행 (0) | 2010.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