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초

Re:자작나무/ 백석

아기 달맞이 2010. 1. 26. 10:18

 

  

 자작나무(白樺) / 백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 「정본 백석 시집」 (2007,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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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의 시는 겨울에 읽어야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고향’ ‘북방에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여우난곬족’ 등 여러 북방시편들이 그렇고 이 시도 그 가운데 하나다.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인 백석은 이러한 시들을 통해 토속적인 전통과 서정을 되살리고 있다. 이 '백화'라는 시속에는 자작나무로 가득 들어차 있다. 지극히 소박하고 단순한 말씨로 그린 이 시가 온통 자작나무뿐인 북녘의 한 산골 집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그리고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자작나무 우거진 숲속 오두막에서 겨우내 자작나무밖에는 안 가진 사람으로 살고픈 마음이 생긴다.

 

 백화(白樺)는 자작나무를 일컫는 말이며 나무의 껍질은 하얗고 추운 북반부에서 주로 자란다. 백두산 일대의 한반도 북부 산간지방과 시베리아 만주, 핀란드나 노르웨이 등 북유럽 일대에서 자생한다.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에는 어김없이 자작나무 숲이 나온다. ‘닥터 지바고’에서 달리는 기차의 창밖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시베리아 설원과 함께 기억에 입력된 것이 자작나무였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의연히 맞서 쭉쭉 뻗은 늘씬한 몸매와 하얀 피부를 한껏 자랑하던 자작나무 숲은 ‘라라의 테마’와 더불어 영화의 또 다른 주역이었다. 이 영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아마 그런 배경 때문이리라.

 

 자작나무란 이름은 기름성분이 많은 장작 껍질이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나는 데서 따왔다고 한다. 수피의 유성분이 혹한을 견뎌내는 비결인 셈이며, 그만큼 불이 쉽게 붙어 국수 삶는 장작으로도 제격이겠다. 그리고 희고 윤기 나는 생김새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쓰임새도 많다. 성장속도가 빠른 고급 펄프원료인데다, 근래엔 가구나 마루판의 재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자작나무가 죽으면서 자라는 버섯이 암 치료에 특효라는 차가버섯이다.  순도 높은 보드카는 자작나무 숯으로 걸러야 제 맛이 난다고 하며, 고로쇠처럼 달짝지근한 수액은 무병장수제로 통해 고가에 거래되고 있고, 자일리톨의 원료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유익함에 앞서 자작나무 자체가 갖는 미학은 빛나는 광휘가 아닐까. 무리지어 태양을 향해 솟구친 염결한 직립성과 숨 막힐 듯 토해내는 순정한 빛의 광휘. 빛의 가장 곱고 섬세한 올로 온통 숲을 물들이는 정령과도 같은 광합성 말이다. 이럴 때 산골 자작나무 숲은 인디언들이 말하는 ‘서 있는 키 큰 형제들’ 그 이상의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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