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 한편에 얕게 고인 물에 참새들이 날아와 물장구를 치자 물방울이 튀어 햇빛에 반짝인다. 담장 구석에는 장독대가 가만히 들어앉아 있다. 해가 잘 드는 곳에는 소쿠리에 빨간 고추가 담겨 윤기 있게 말라간다. 가을 햇볕이 가득 찬 담장을 따라서는 방울토마토, 고추, 들깨, 호박 등 각종 채소와 먹을거리가 죽 늘어서 심어져 있었다. 24일찾아간 한복연구가 이효재 씨(51)의 자택 겸 작업실인 서울 성북구 성북동 ‘효재(잪齋)’는 이처럼 자연과 닮아 있었다. 집 이름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직접 심고 기른 채소로 대부분의 식사를 해결하기 때문에 이 씨는 대양(大洋)을 건너온 수입 먹을거리를 맛볼 틈이 거의 없다. 이 씨는 한복 다음으로 ‘친환경 먹을거리’를 고집하기로 유명하다. “언젠가부터 밖에서 산 음식을 잘못 먹으면 몸이 가려운 증세가 생겨 더 신경을 쓴다”고 이 씨는 말한다.》
○ 왜 굳이 직접 기르냐고요?
가공-수입식품엔 첨가물 범벅,채소 심고 장 담가먹는게 웰빙
○ 왜 제철음식이어야 할까요
온실에선 농약 안쓰기 힘들고 난방기기가 CO₂도 뿜잖아요
○ 가까운 곳에서 난 먹을거리 찾기
|
실제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식품첨가물이 신체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는 여럿 나와 있다. 일부 빵과 과자에 들어가는 방부제 ‘프로피온산’은 피부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미생물 번식을 막는 합성보존료인 솔빈산, 안식향산나트륨 등은 기관지염이나 천식을 일으키고 심하면 암세포도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기간 이동해야 하는 수입식품도 주의해야 한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수입 바나나를 운반할 때는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메틸브로마이드’라는 살충제를 쓰는 경우가 많다. 역시 각종 피부병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옥수수나 딸기에 쓰이는 살충제나 방부제에도 발암물질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들을 가장 확실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우리 땅에서 자란 음식을 먹는 것이다. 마당에서 직접 키운 채소를 먹는 이 씨는 정답을 스스로 찾아 실천한 셈이다. 이처럼 가까운 지역에서 난 먹을거리를 소비하는 식생활은 식품 운송거리를 의미하는 ‘푸드 마일리지’를 줄인다. 여기에다 온실가스 발생량도 줄여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는 ‘친환경 생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제철 먹을거리 찾기
“사실 친환경 먹을거리라는 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제철에 나는 먹을거리만 챙겨 먹어도 최고의 ‘친환경 식단’이 되는 거죠.” 이번에도 이 씨는 정답을 맞혔다. 제철 채소나 과일이 아니라면 주로 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된다. 내부가 고온다습해 병균과 해충이 번식하기 쉽다. 농약을 안 쓰는 ‘유기농 먹을거리’를 재배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게다가 하우스 안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하려고 가동하는 냉난방 기기는 쉴 새 없이 온실가스를 배출해 지구 온도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푸드 마일리지’를 높이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내는 셈이다.
친환경 식생활을 실천하는 이 씨지만 “특별한 계기나 지식이 있어 관심을 가진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직접 길러 먹던 옛 방식을 따랐던 것뿐인데, 어느 날 보니 내가 요즘 사람들은 ‘없어서 못 먹는다’는 친환경 먹을거리만 먹고 있더라”며 웃는다.
‘없어서 못 먹는다’는 현대인들을 위해 이 씨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식사를 대접한다. 보고, 먹고, 듣고, 느낀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이런 ‘친환경 식생활’을 따라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끔씩 ‘저 정읍 효재예요’라며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를 따라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죠. 그럴 땐 괜히 기분이 좋아져요.” 인터뷰를 하는 도중 주방에서 군침을 돌게 하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기 시작했다. “찾아온 사람에게 반드시 식사를 대접한다”는 이 씨의 원칙은 기자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 음식 남기지 않기
옻 칠기에 정갈하게 담은 식사는 사찰 음식을 연상시켰다. 반찬도 밥도 많이 담지 않았다. 푸짐하게 대접하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 씨의 생각은 다르다. “많이 담는다고 잘 대접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기면 버려야 하고 버리면 아깝잖아요. 모자랄 것 같으면 바로바로 그릇을 채워주는 게 진짜 ‘잘 대접하는’ 거죠.”
밥과 반찬을 남김없이 비우고 나니 적당히 포만감이 든다.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다)’의 의미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몸이 익히면 마음을 쓰지 않아도 실천하게 된다. 이 씨가 차려 준 밥상엔 그렇게 몸과 마음이 머리보다 먼저 ‘친환경 식생활’을 실천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효재처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곱고 세련된 코리아니즘 “원더풀” (0) | 2010.01.12 |
---|---|
가리고 때우며 적막을 만들어가는 곳” (0) | 2010.01.12 |
김민경 기자의 It-Week |달콤한 낮잠베개 (0) | 2010.01.12 |
효재처럼 살아요 (0) | 2009.12.28 |
자연주의 살림꾼’ 효재가 만난 사람 ⑤ 작가 이외수 (0) | 2009.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