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네 감기약 고뿔 차 (홍만수/만수제다)-다인 2001.1에서...
내가 어렸을 때 지금은 초등학교로 이름이 달리 불리워 지고 있는 국민학교에 가려면 한 두 시간 씩 걸어야 했다. 그렇게 어렵던 시절, 병원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약국도 먼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항상 비상 약으로 필수적인 두가지를 준비해 두었다.
그중 하나가 배가 아프고 열이 나는 아이들에게 먹이면 정말 잘 낫는 약으로 산에서 산초를 채취해서 햇볕에 말려 방앗간에서 기름을 짜면 된다. 또 다른 하나는 감기가 들었을 때 마시는 고뿔차이다.
가족중 한사람이라도 감기에 걸리면 노란 주전자에 고뿔차를 소량 넣고 똘배 5-6개와 끓여서 큰 사발에 사카린은 희석해 마시고 난 후, 소나무 장작 넣은 구들 방에서 2 시간 동안 땀을 내면 거짓말처럼 나아버린다. 땀 내기 싫어 하는 어린 나를 달랜다고 땀내는 시간동안 할머니는 화롯불에서 고구마를 구워주셨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으로 기억된다. 뒷골 차밭에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차잎을 따와 마당 앞 큰 바위 위에 두께가 일정하게 펴 널어둔 다음 시들어지면 1시간 가량 비비기를 반복한다. 그러다보면 색깔이 빨갛게 변한다. 이것을 따끈따끈한 구들방에 멍석을 펴고 그위에 광목을 깔고 두께가 일정하게 펴 넌다.
그 위에 또 광목을 덮고 이불을 덮어 둔 다음 몇 시간마다 고루 섞기를 반복하면 고뿔차(황차)가 완성된다. 이것을 똘배 썰어 말린 것하고 섞어 대바구니에 담아서 처마 밑 선반 위에 올려 놓으면 1년 감기약 준비는 다된 셈이다.
할머니 살아 계실 때까지 우리집 감기약 준비는 고뿔차 만들기로 계속 됐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10년 동안 그 맥이 끊어졌었다. 이제 그 기억을 더듬어 다시 만들어 보았다. 그것은 맛과 향이 전혀 새로운 발효차였다.
요즘 중국차 바람에 밀려 우리 녹차가 설자리를 잃고 있다. 그런데 ‘50년 보이’니 ‘100년 보이’니 자랑하며 먹으면서 우리 나라 발효차와 녹차는 몇 만원 짜리도 비싸다고 한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녹차는 성질이 냉하기 때문에 중국 발효차를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도 고뿔차 같이 오래도록 전해오는 차가 있다. 단지 홍보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옛날 우리 상위의 반찬이 거의 발효식품이었듯이 차 문화에도 분명 발효차 문화가 있었다. 강진, 해남 등 유배지는 선비들이 많았기에 발효차를 떡차, 돈차 모양으로 해서 실에 끼워 매달아두고 마셨고, 산밑에 사는 사람들은 차를 약으로밖에 사용할 줄 몰라서 감기에만 달여 먹었다.
문화란 다듬고 사랑하고 좋은 것을 개발하면서 발전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차는 우리가 아끼자. 멀리는 우리의 조상이요 가까이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전통을 더욱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차를 이용함으로서 차의 품질이 더욱 향상될 것이고 그러할 때 차를 마시는 사람이 차문화를 만들어 가는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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