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원래 우리 집이였어. 동네 아줌마들이 10원짜리 화투친다고 허구헛날 몰려 오길래 지나가는 말로 ‘보리밥집이라도 차려 자릿세를 받아야겄네.’하다가, 진짜로 해부렀지. 그때는 밥집이라곤 용수산, 수제비집, 복어집 밖에 없던 때여.”
‘고향보리밥’의 임정순사장(60)의 말이다. 17년 전,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식당은 삼청동 골목 깊숙이 숨어 있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나마 걸려있는 나무 간판은 입구에 놓은 화분에 가려 있다. 그런데도 하루 평균 100~200명의 손님이 다녀가는걸 보면 신통하다.
“요새는 죄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더라고.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 물어보면 인터넷에 다 나온다. 그러대.” 마우스(입) 소문의 힘이다.
꾸밈없는 황토벽, 매끈한 마루장판, 테이블 대 여섯 개 놓인 실내는 신혼 첫날밤 화장을 지운 새색시의 맨 얼굴 만큼이나 수수하다. 보리밥 한 그릇을 주문했다.
소박하지만 모자람 없는 상차림이다. 묵직한 놋그릇에 팽이버섯·파프리카·적양배추·무순·도라지 등 12가지 종류의 생 채소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져 있다. 목기에 꾹꾹 눌러 담은 보리밥은 쌀 한 톨 섞이지 않은 꽁보리밥이다.
‘후~’하고 불면 사방으로 밥알이 흩어질 것 같다. 해남에서 재배한다는 노란 기장밥과 보리밥을 한 술 가득 퍼 비빔채소 안으로 넣는다.
“많이 넣으면 짠께(짜니깐), 된장 반술, 고추장 반 술만 넣어.”
어설픈 손놀림이 못미더웠던지 주인 할머니가 참견을 놓는다. 도톰한 두부 넣고 자작하게 끓인 된장찌개와 열무김치·우거지까지 마저 넣고 ‘쓱쓱’ 비볐더니 참기름 없이도 밥에 윤기가 좔좔 돈다. 입안에서 제멋대로 나뒹구는 보리알갱이와 쫀득쫀득한 기장밥, 아삭아삭한 배추쌈이 잘 어우러진다.
단골들이 말하는 이곳의 별미는 뚝배기 한가득 담겨 나오는 우거짓국. 특등급 한우 사골육수로 진하게 맛을 낸 우거지가 이곳 보리비빔밥의 맛을 좌우한단다. 한끼 식사 가격은 5000원. 17년째 같은 가격이다.
“비싸다고 언성높이는 손님도 있었지. 그래서 내가 핏대까지 세우고 말했어. ‘아니, 먹어보지도 않고 뭐이 비싸다고만 하냐’고. 내가 솜씨 하나만은 자신 있었거든.”
녹두전 1만원, 묵 1만원. 11시 30분~21시까지. 02-736-9716
■ 주인장의 보리밥 레시피 (100% 꽁보리밥)
“쌀은 불리고, 뜸들이고 진득하게 기다리는 게 중요하지만 보리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돼. 바득 바득 손바닥으로 힘줘서 씻은 다음 바로 불에 올려. 쌀처럼 물에 불리면 안 돼. 퍼져서 물이 되 물!”
깨끗이 씻은 보리쌀을 먼저 삶는다. 찬물에 술술 씻어 다시 한 번 익힌다. 이 때 물 양은 쌀밥을 지을 때의 절반만 넣는다. 두 번 지어 완성한 보리밥은 기장밥과 함께 담아낸다. 거친 꽁보리밥을 부담스러워 하는 손님에겐 흰쌀밥을 따로 내준다.
■ 백년 노하우
매번 직원이 바뀌는 집은 갈 때 마다 낯설기 마련. ‘변함없는 맛과 인심’을 유지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같이 갈 수 있는 직원을 두는 게 중요하다.
임 사장은 직원들에게 정해진 일당 외에 일일 매상이 목표치를 초과할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고생한 만큼 수당을 더 받기 때문에 가게가 바쁜 날도 직원들의 불만은 없다. 덕분에 이곳의 직원은 8년 동안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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