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빛깔을 담아낸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신을 우러러 보는 마음으로 선하게 살아 왔다.
예의바른 백의민족으로 온 누리를 포용할 수 있는
흰색(물감을 들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무색)을 신성한 색으로 여겼다.
동방의 물리학에서는 금, 목, 수, 화, 토 오행이 만사만물을 구성하였다고 한다.
여러 갈래로 색을 나누어 놓은 서양과는 달리
우리 색깔은 오행을 견주어 나타내고 있다.
오방색(五方色)이라 하여 검다, 희다, 붉다, 누렇다, 푸르다는 표현으로
천지만물의 그윽한 향기를 머금어 왔다.
여기에 새, 시, 검 등을 앞에 붙인 새하얗다, 시퍼렇다, 검붉다는
그 빛깔의 의미를 달리하거나 강조하기도 한다.
▲ 한국 전통 오방정색
하늘의 태양과 대지의 꽃과 나무는 여러 가지 빛깔을 띠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수질 오염으로 인한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산과 들에 숱하게 널려 있는 꽃, 열매, 잎, 나무뿌리, 나무껍질, 황토 등
신의 조화로 이루어진 천연의 질료에서 다양하게 색을 찾아
의, 식, 주를 비롯한 온갖 생활용품에 물들이는 일이 날로 관심을 더하였다.
바로 꾸미지 않은 자연염색이다.
특히 식물에서 추출한 색소를 이용한 염색이 인기다.
지난날 우리네 여인들은 치자로 노란색을 내고, 쪽으로 남색을 내고,
해뜨기 전에 활짝 핀 홍화 꽃잎을 따 붉은색을 만들어 자연 속에서
한국 고유의 색을 물들였다.
자연그대로이니 인체는 물론 사람이 사는 환경에 이롭다.
그리고 풀이나 나무에 따라서는 오히려 나쁜 균을 죽이는 성분까지 포함하고 있다.
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옛날이야기에 산길을 가다 몸에 상처를 입으면,
주위에 있는 세 가지 종류의 풀을 짓이겨 동여매면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식물의 대부분은 가공하지 않은 생약으로서 손대지 않은 식물의 천연색을 그대로 가져와
염색한 옷감도 마땅히 그 약의 성질이 살아 있는 것이 많다.
붉은 빛을 물들이는 홍화는 국화과의 두해살이풀로
이른 아침 이슬에 젖었을 때 꽃을 따서 말린 것을 한방에서 부인병·통경·복통에 쓴다.
이처럼 실제로 염색재료로 쓰이는 많은 식물은
항균이나 항암 효과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색은 자신의 고유한 색깔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색색이 조화를 이루는 어울림의 멋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 빛깔은 은은하고 마음까지도 평안하게 하며,
부드러우면서 품위와 격조를 갖추고 있다.
우리 생활 가운데 부담 없이 빛바랜 테이블보, 스카프는 물론
유행이 지나 장롱 속에 넣어둔 옷까지 자연의 빛깔로 물들여
새롭게 입을 수 있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어 좋다.
▲ 자연염색직물 명주, 모시, 면, 쪽, 홍화, 꼭두서니, 소목, 치자, 황벽, 홍련, 자초, 오배자
'자연염색박물관'을 찾아서
▲ 자연염색박물관 전경
대구 팔공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염색박물관'은
180여 평의 2층 한옥으로, 천연의 재료를 이용한 자연염색 유물과 도구,
섬유 관련 민속자료실과 자연염색예술 창작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등으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김지희 관장이 직접 수집한 공예품을 선보이는
세계공예 예술실과 세계문양디자인연구소가 함께 마련되어
볼거리가 다양하고 알차다.
이뿐만 아니라 염재식물원에서는 세계 각국의 염색관련 식물들을
직접 만 날 수 있으며, 체험교육실은 자연염색 전문과정과
전통공예 전반을 다루는 문화강좌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일반인들을 상대로 운영하고 있어 많은 사람 들이 찾아온다.
▲ 자연염색박물관 김지희 관장
자연염색박물관은 작년 대구가톨릭대를 정년 퇴임한 김지희 관장이
30여 년 전 일본 교환교수 시절 전통문화의 뿌리를 투철하게 이어가는
일본 학계의 모습을 보고, 우리전통문화를 올바르게 연구 보존하고자
품어온 염원이 2006년 여름 사재를 들여 결실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 고구려 벽화 무영총 무용도의 고대복식에서 점점이 박힌 문양을 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은 우리에게 다양한 문양의 고대복식을 보여 준다.
삼국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은 이미 천에다 다양한 무늬를 더하는 문양 염색을 하였던 것이다.
자연 염색은 염색 횟수와 염료의 발효·숙성 정도, 매염제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만든다.
그 밖에 서로 다른 색을 혼합하기도 한다.
힐염이란 염료가 스며들지 못하게 미리 처리한 후
원하는 무늬를 천에 물들이는 방염(防染)기법이다.
힐염 문양기법 중의 하나인 홀치기는 삼국시대부터 쓰인 염색법으로
천을 실이나 끈으로 단단하게 매어서 염료가 묻지 않도록 방염하여 문양을 표출한다.
오래 전부터 힐염으로 무늬를 넣는 우리의 전통문양기법은 자취를 감추고,
우리는 여러 색의 옷감을 잇댄 색동저고리를 입거나 옷감 위에다
색실로 무늬를 수놓았다.
쪽(藍)물 염색은 우리의 가장 대표적인 전통 자연염색이다.
쪽은 람(藍)이라고도 하며,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로서 잎을 발효·숙성·산화하여
염색하는 쪽빛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색깔로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다를 상징하는 푸른색의 표상이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가곡이다.
안이 훤히 비치는 듯 아닌듯한 엷고 투명한 전통 옥색은
유물로만 존재하고 실제는 없다.
지금의 옥색 자연염색은 생물 그대로 물들인 것이라 곧 색이 변하거나
빛이 바랜다고 한다.
염료를 충분히 발효·숙성하여 물들여야만 더욱 더욱 고유의 빛을 드러낸다.
그래서 수 백 년이 지나 온 우리 전통 옥색은 변함없이
박물관에서 날마다 그 빛을 뽐내고 있다.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지난 날 옥색 역시 세월 속에 묻혀 버렸다.
김지희 관장은 우리나라 구석구석은 물론 외국을 오가며,
특히 최근 힐염 기법을 재현한 일본과 중국 등을 몇 번이나 찾아가는
부단한 열정으 로 흩어진 우리염색문화에 대한 비법을 추스려 일구고 다듬어
전통 힐염 기법을 복원했다.
마침내 우리 고대 복식의 점점이 박혀있는 문양을 재현해 낸 것이다.
또 염료를 발효·숙성하여 전통옥색을 얻는 과정은
극진한 정성과 인내가 필요한 공정으로 차라리 수양이다.
각고의 시름 끝에 자연 속에 서 옥같이 아름다운 한국의 옥색을
다시 찾아낼 수 있었다.
▲ 왼쪽은 전통 힐염 문양기법으로 재현해 낸 우리의 문양염색이며,
오른쪽은 다시 찾아온 아름다운 한국의 옥색이다
▲ 홍화염 들인 조선조 개량한복
▲ 쪽염 들여 재현한 고려시대 복식
"쪽씨 심어 쪽저고리
잇씨 심어 다홍치마
명주고름 곱게 달아
횟대 뿌리 걸어 두고
들명 보고 날명 보고"
이는 한국 남도 전통 민요의 한 쪽이다.
치마저고리에 청색 홍색 예쁘게 입혀놓고
들랑날랑 정성스런 마음으로 익혀내니 그 빛깔이 어찌 아니 고울까?
목화에서 무명을 얻고 누에에서 명주를 짜내어 천연재료를 가지고
곱게 자연색으로 물들이는 일은 성실한 마음과
차분한 기다림이 필요한 예술이다.
세상만사 지성(至誠)과 감천(感天)의 드라마다.
사람이 일을 마주하고 선한 마음으로 지극한 정성을 다하면 하늘이 감응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일을 이 루어내고 성취감에 희열한다.
물론 좋지 않은 일을 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보응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신이 준 자연그대로 아름다운 빛깔을 가득 담아내려면
먼저 그 마음부터 착하게 물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는 간데 없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현실사회의 염색단지 속에서,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전통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일은 진정한 사람의 문화를 다시 찾아오는 첩경이다.
자연염색박물관
위치 :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467번지
전화 : (053)743-4300
관람시간 : 평일 10:00∼17:00(휴관일 매주 월·화요일)
찾아가는 길 : 동대구역, 대구역, 시민회관에서 버스 101-1번 한글고증마을 하차.
동대구역에서 자연염색박물관까지 택시비 1만 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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