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미

행복을 추억하는 비단 열두 폭 한복

아기 달맞이 2009. 2. 16. 10:22

한복은 비단 보자기처럼 모든 것을 제 크기에 맞게 감싸 품는다. 육신을 품는 것이 첫째요, 기억을 품는 것이 둘째다. 디자이너 이영희 씨와 인연을 맺은 그의 지인들이 한복을 떠올리며 행복한 한때를 추억했다. 하는 일도, 나이도 각기 다른 12명을 1930년대 종로의 어느 사진관 같은 스튜디오에 초대했다.


한복 저고리와 치마의 질감을 다르게 하면 한결 세련된 멋이 난다고 이영희 씨는 말한다. 밝고 화려한 노리개는 한복의 방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영희 씨는 평소 아끼던 나비삼작노리개를, 이정우 씨는 삼작노리개를 착용해 한복의 맵시를 더했다.

한복은 오르고 또 오를 산이다
디자이너 이영희·이정우 씨 모녀
디자이너 이영희 씨와 그의 딸이자 동료인 이정우 씨. 취미, 취향, 식성도 비슷한 사이좋은 모녀지만 한복 앞에서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서로의 고집이 있다. 1994년 파리에서 두 번째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디자인실에서는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졌다.
한국적인 느낌이 나는 모던 한복을 만들고자 했는데 문제는 두루마기였다. 딸 이정우 씨가 서양 복식처럼 스트레이트하고 슬림하게 고쳐놓은 두루마기를 다음 날 아침 이영희 씨가 ‘한복 같지 않다’며 통을 넓힌 것. 우애 좋은 형제가 밤사이 서로의 집에 볏단을 날랐다면, 사이좋은(?) 모녀는 밤마다 서로의 바느질에 가위를 댔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이영희 씨는 “눈에 익으니 정우 작품이 좋네”라며 사건을 일단락 지었고, 당시 그 옷으로 파리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추억한다. 하지만 여전히 더 많은 내공을 쌓아야 하는 쪽은 이정우 씨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나에게 열등감을 주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복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한복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두 디자이너. 이들 모녀에게 한복은 걷다가 잠시 쉬다가 다시 또 오를 높은 산이다. 책 <파리로 간 한복쟁이>(디자인하우스)에는 이 모녀의 치열한 한복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다.


(왼쪽) 이영희 씨는 임웅균 씨가 곧바로 무대 위에 서도 좋도록 흰 셔츠 위에 검은색 무명 바지와 재킷을 매치해 한국식 턱시도를 완성했다.임웅균 씨의 아내 최영인 씨는 전통 두루마기 위에 폭스 머플러를 둘러 단아하면서도 호사스러운 멋을 냈다.

독창회의 찬란한 쉼표, 한복 패션쇼
성악가 임웅균 씨와 아내 최영인 씨“테너가 왜 모두 미인과 결혼하는지 아세요? 테너는 고음을 낼 수 있는 남자라 여자가 원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웃음)”
성악가 임웅균 씨가 아내 최영인 씨가 미인임을 은근히 내비친다. 화통을 삶아 먹은 듯 우렁찬 목소리와 대화 중간 중간 양념처럼 곁들여지는 파안대소. 그는 목소리만큼이나 성격도 올곧다. 이런 일화가 있다. 1999년 국내 유명 공연장에서 독창회를 열 계획이었다. 그런데 문득 공연 중간에 패션쇼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디자이너 이영희 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둘의 마음은 달떴다. 그런데 공연장에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클래식한 음악회장에서 딴따라들의 패션쇼가 웬 말이냐는 것. 그는 ‘공연을 취소하겠다’고 했고, 결국 백기는 공연장에서 들었다. 임웅균 씨는 그날의 한복 패션쇼를 공연의 클라이맥스와 같았다고 회상한다. 공연을 보러 온 열 살배기 소년의 눈과 중년 신사의 안경 너머로도 한복이 무척이나 고왔을 것이다. 그에게 한복은 찬란한 이벤트다.

(오른쪽)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티에보 씨를 만난 이영희 씨는 단번에 비취색 한복을 떠올렸다. 비취색에 검은색을 한 겹덮은 노방 치마로 기품 있는 분위기를 냈다. 이영희 씨가 여벌로 만든 모던한 저고리를 매치하면 훌륭한 파티복이 된다.

묘령의 여인 같은 새하얀 동정
주한 프랑스 대사 부인 프랑수아즈 티에보 씨 티에보 씨가 카메라 앞에 앉자, 푸른 눈의 정경부인 같았다. 마치 대대로 한복을 입어온 집안의 자손인 양 그의 포즈는 한복의 기품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참가한 디자이너 이영희 씨의 쇼에서 한복을 처음 만났어요. 선은 되도록 단순하게 다듬고 색감을 다양하게 연출한 한복이 신선했습니다.” 프로방스에서 태어나 패션의 중심가 파리에서 자란 티에보 씨. 게다가 국제기구에서 일한 남편 필리프 티에보 씨를 따라 멕시코시티, 브뤼셀, 뉴욕 등 세계 곳곳을 돌며 살았기에 새로운 패션을 향한 촉수가 늘 예민하다. 그런 그가 한복의 백미로 꼽는 것은 하얀 동정이다. “단정하고 순수하며, 특유의 곡선이 신비롭습니다.” 동정은 묘령의 여인을 연상시킨다. “옷감의 오묘한 색 또한 매력적입니다. 지난가을 단풍 구경 갔을 때 속리산을 물들인 고운 빛에 넋을 잃었는데, 한복은 한국 산하대지의 빛깔을 닮았나 봅니다.”


(왼쪽) 훗날 신달자 씨의 세 딸도 나이 들어 한복을 입고 거울을 보며 ‘엄마와 닮았다!’며 놀라지 않을까. 밤색 끝동을 단 베이지색 저고리에 보라색 치마를 매치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방한용으로 입는 덧저고리가 멋스러운 장식 효과를 낸다.

흰 저고리가 색은 없어도 참으로 좋다던 어머니
시인 신달자 씨 늘 바람결에 머리를 말리는 시인. 촬영하는 날, 혼인식 이래 처음으로 머리칼을 가지런히 모아 쪽 쪘다. 거울을 보고 놀랐다. 꼭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우리 어머니, 머리는 항상 단정하게 쪽 찌고서 정갈한 한복을 차려입으셨어요. 동네에서 알아주는 멋쟁이였던 어머니는 장롱에 양장 대신 색색의 한복을 고이 손질해 걸어두곤 하셨죠.” 피부가 맑고 몸매가 도톰해 한복이 곱게 어울리던 어머니. 어린 신달자 씨는 한복을 입고 외출하는 어머니의 뒤태를 눈으로 좇노라면 괜히 우쭐해졌다. 그리고 겹겹의 비단 자락 사이로 부서져 내리던 햇살…. 이 순간만큼은 어머니가 한 여인으로 기억된다. “옥색 치마에 흰 저고리를 즐겨 입던 어머니는 ‘흰 저고리가 색은 없어도 참으로 좋구나’ 하셨어요.” 그 삼삼한 맛을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었어도 여전히 한복은 닿을 수 없는 존재다. 그에게 한복은 그리운 어머니이니까. 조여진 품 아래로 넉넉한 치마가 펼쳐지는 한복. 자기를 절제하면서도 자식을 한없이 품어 안는 어머니의 품성이다.

(오른쪽) 이영희 씨는 김중만 씨의 검은색 무명 두루마기에 파란색 비단으로 안감을 댔다. 이유가 있다. “김중만 씨의 가슴에서 아프리카의 드럼 소리가 들리잖아요. 파란색은 아프리카를 닮았어요.”

한복 입은 여인의 뒷모습에서 소쇄원을 추억하다
사진가 김중만 씨 정부 파견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15세 때 한국을 떠나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김중만 씨. 이날 생애 처음으로 한복을 입었다. 20년 넘게 이영희 씨의 한복을 촬영해왔으면서 말이다. 첫 경험의 상대는 ‘김중만 씨는 반질반질한 양단이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라며 이영희 씨가 지어준 검정 무명 두루마기. 우려와 달리 레게 머리와 단정한 무명 두루마기가 의외의 조화를 이뤘다. “서양 명품을 입은 한국 모델들만 촬영하다가 처음으로 이영희 씨 한복을 입은 모델들을 사진으로 담은 날이었어요.‘옷이 예쁘다’는 생각 대신 ‘우리 여인들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는 점을 새삼 깨닫게 만든 의상이었습니다.” 절정은 한복 입은 여인의 뒷모습이었다. 어스름한 새벽 빛 아래 돌담을 끼고 숲을 향해 걸어가는 기생의 뒤태를 카메라에 담았다. “처연한 뒷모습이 자연 속에 살포시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소쇄원이나 병산서원처럼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 건축이 떠올랐습니다. 숲을 닮은 여인의 향기, 아찔했습니다.”


(왼쪽) 명주 적홍색 치마에 자미사 미색 저고리를 입은 딸 문신월. 섶 부분에 색색의 조각 무늬를 수놓아서 고전적이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오른쪽) 오래전 ‘회색 한복’은 일종의 금기 같았다. 그런데 이영희 씨는 시크한 회색을 과감하게 한복에 사용한 장본인이다. “회색은 신비로우면서도 화합과 융화의 색이에요. 둘이 함께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때 색상을 잘못 매치하면 촌스러울 수 있는데, 회색 한복을 활용하면 둘 다 우아하게 살아나지요.”

한복과 발레는 닮은꼴이다
유니버셜발레단 문훈숙 단장과 딸 문신월 꽃신을 신은 딸 신월(7세)이 손으로 치맛단을 들고 종종 걸어 나오자 문훈숙 단장은 모란꽃보다 활짝 웃는다. “신월이는 다섯 살 때 유니버셜발레단의 창작 발레 <심청>에서 어린 심청 역으로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선 적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한복만 보면 그 앞을 떠나지 않아요.” 문훈숙 단장 역시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선다. 이제는 발레리나로서가 아닌 단장으로서 커튼콜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이영희 씨가 디자인한 연꽃 같은 진분홍색 한복을 10년 넘게 입고 있는데, 아직도 발레리나들의 무대 의상만큼 빛이 난다. <심청>은 한복을 응용한 독특한 무대 의상으로 해외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발레 의상은 ‘색감, 실루엣, 편안함’이 관건인데, 한복은 이 조건에 딱 맞기 때문에 발레복으로도 잘 어울려요. 특히 선비 역을 맡은 무용수들이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실루엣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젤> 공연에서 일곱 번의 커튼콜을 받은 ‘영원한 지젤’ 문훈숙 단장. 돌아보니 그에게 스민 한복의 정서가 우아한 지젤의 몸짓을 완성해준 것 같다.“발레와 한복은 꼭 닮았어요. 발레는 선으로 승부하는 예술이고, 한복 역시 선의 미학이라는 점에서 그렇지요.”


(왼쪽) “혜영 씨는 기방의 고참 언니고, 선미와 경은이는 신출내기 기생 역할이에요”라며 촬영을 선두 지휘한 이영희 씨. 세 명 모두 깃, 고름, 끝동에 다른 색의 천을 대어 지은 반회장저고리를 입고 조선시대 명기의 모습을 표현했다.

3인3색 한복 사랑
배우 유혜경 씨와 모델 노선미·이경은 씨
2004년 유혜영 씨가 딸아이와 함께 뉴질랜드에 머물 때의 일이다. 한 방송국에서 취재 차 이 모녀를 방문하겠다고 하자, 당시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던 나한일 씨는 트렁크에 한복을 담아 단숨에 뉴질랜드로 날아갔다. “외국에서 한복을 보니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친구를 만난 양 반갑더라고요.물론 한복을 가져온 남편의 정성에도 감동했고요.” 모델 노선미 씨도 한복에 대한 애정이 특별하다. 그의 책상 위에는 사진이 붙은 컵이 하나 있다. 잡지에 실린 자신의 사진을 프린트해 컵에 붙인 것인데 가발을 쓰고 옷고름을 풀어 헤친 모습이 다소곳한 보통의 한복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한복은 정숙하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나에겐 한복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을 깬 것 같아 사진을 보고 또 봐도 새롭단다. 옆에 있던 모델 이경은 씨가 맞받아친다. 한복은 언젠가 돌아갈 고향 같은 푸근한 옷이라며,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우아한 매력을 드러내고 싶다면 한복과 가까이하라고 말한다.

(오른쪽) 이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이영희 씨는 신랑 신부가 최대한 화사해 보일 수 있는 색깔을 선택했다.
이원희 씨가 외투로 입은 인디언 핑크색 답호와 김미현 씨가 입은 보라색 덧저고리의 배색이 잘 어울린다.

둘이 하나되는 첫 날, 함께하는 한복
유도 선수 이원희 씨와 프로 골퍼 김미현 씨 부부 ‘한판승의 사나이’라 불리는 유도 선수 이원희 씨와 ‘슈퍼 땅콩’이란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프로 골퍼 김미현 씨를 만난 것은 지난해 11월 29일. 결혼식이 있기 딱 2주 전이었다. 평상복보다 운동복 입은 모습에 더 익숙한 그들은 한복을 입은 서로를 보고는 배시시 웃음을 흘린다. “1998년부터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한복 입을 기회가 많았어요. 시상식이나 파티 때 드레스를 입는데 ‘코리안 드레스’는 한복이잖아요. 한복의 고운 색감에 외국인들 눈이 휘둥그레져요. 물론 치마 안에 높은 구두를 신을 수 있으니 작은 키도 커버할 수 있지요.(웃음)” 한복 고름과 옷섶을 매만지는 김미현 씨의 손끝이 야무지다. 이원희 씨는 한복을 입을 기회가 자주 없었지만 앞으로 둘이 함께 입을 한복이 더 기대된다며 연신 김미현 씨와 눈을 맞춘다. 곧 있을 결혼과 명절, 아이 돌 등 삶의 중간 중간에 찾아오는 기쁨의 시간에 한복이 있다. 무엇이든 제 모양에 맞게 감싸는 비단 보자기처럼 한복은 그들을 푸근하게 감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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