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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7 옛날의 그 집 /박경리

아기 달맞이 2009. 1. 15. 16:15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편(‘현대문학’올 4월호 발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란 마지막 행이 턱, 걸린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격동의 시대를 겪어면서 우리 아픔의 시대를 토지라는 명작을 남기신 선생님
토지를 읽고 김약국 딸들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팬이되었지요
생전에 한번 만나뵙고 싶었는데...
우리 문학계의 대모이신 선생님 이루신 큰 업적은 자손대대로 영원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나라 에서는 평안하시기를...



박경리는 흙의 작가요 생명의 작가였다. 굳이 『토지』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생전의 그는 텃밭에서 일군 채소를 손수 무치고 담가 토지문화관을 찾은 후배작가들에게 먹이곤 했다. 농약 한 번 쓰지 않은, 이른바 유기농 야채였다. 자신의 텃밭에 농약을 치지 않았던 것처럼 그는 자신의 육신에도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 폐에 종양이 슬었어도 담배를 끊지 않았고, 한 달 가까이 병실에 누워있으면서는 치료진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렇게 박경리는 갔다. 흙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