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시작된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파격적인 의전을 받고 있다. 의장국인 네덜란드 정부는 이번 행사에 참가하는 53개국 정상과 4개 국제기구 수장 중 한국을 비롯한 6개국에만 방탄차를 제공했다. 박 대통령에게 제공한 차량은 총탄을 막아내는 특수장치를 한 BMW M7 기종이다. 이기철 주네덜란드 대사는 “네덜란드가 한국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려 주는 징표”라고 말했다. 이 대사에 따르면 방탄차를 제공받은 나라는 미국·이스라엘 등 테러 위험이 큰 국가와 한국처럼 네덜란드가 각별한 대우를 하는 국가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한국도 테러 위험이 큰 국가로 본 게 아니냐는 지적에 “사실과 다르다. 선의로 배려해 제공한 것으로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네덜란드가 제공한 BMW M7 방탄차량. 번호판에는 태극기와 함께 ‘KR-01’이라고 써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네덜란드를 방문해 가진 한·네덜란드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네덜란드는 운송과 물류, 금융 서비스 분야에 강점이 있고 한국은 제조업과 정보통신 분야가 발달했기 때문에 양국의 경제협력은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뤼터 총리는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성공의) 뒤를 이어 이번 회의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며 “네덜란드는 언제나 한국의 성공에 많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은 동북아 오일허브 구축사업에 네덜란드 기업의 참여를 요청했고, 네덜란드 측은 새만금·4대 강 사업 등의 경험을 토대로 제3국 공동 진출을 제안했다. 양국은 농업, 뇌 연구, 연구용 원자로, 에너지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키로 했다.
올해로 수교 53주년을 맞은 한국과 네덜란드의 인연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627년 제주도에 네덜란드인으로는 처음으로 선원 벨테브레이 일행이 표류했다. 조선 조정은 벨테브레이에게 박연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한국 여자와 혼인시켰다. 1653년에는 하멜 등 네덜란드인 38명이 일본으로 향하다 제주도에 표류했다. 하멜은 귀국 후 『하멜 표류기』를 썼고, 이 책은 당시 서구 사회에 조선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네덜란드는 6·25전쟁 때 5322명을 파병해 한국을 도왔다.
헤이그는 대한제국의 한(恨)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종은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을사늑약의 무효를 알리기 위해 이상설·이준·이위종 등 3명의 밀사를 파견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조차 못했다. 이준 열사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현지에서 자결했다. 박 대통령은 2011년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네덜란드를 방문해 이준 열사 기념관을 찾았다. 당시 방명록에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시다 순국하신 열사님, 저희 후손들이 열사님의 애국심에 부끄럽지 않은 정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고 적었다.
헤이그=신용호 기자, 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