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달항아리는 한국인의 소박한 미(美)의식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술품으로 꼽힌다. 특유의 우유 빛깔 흰색, 보는 위치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달라보이는 정감 가는 곡선 등 항아리의 매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달항아리를 즐겨 그렸던 서양화가 김환기(1913∼74)는 “어찌하여 사람이 이런 백자 항아리를 만들었을꼬”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조선의 백자 항아리에 달항아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달항아리, 즉 원호(圓壺)와 대비되는 길쭉한 모양의 입호(立壺)도 있다. 뿐인가. 백자 흰빛이 아름답기로는 18세기 달항아리보다 15∼16세기 설백색(雪白色) 자기를 으뜸으로 친다. 백자 위에 시원한 파란색으로 그림을 그려 넣은 청화(靑畵)백자, 철분 성분이 많은 안료를 써 그림 색이 보다 짙은 철화(鐵畵)백자도 있다.
이처럼 다채로운 조선 백자 항아리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 신사분관(www.horimartcenter.org)이 13일부터 여는 특별전 ‘백자호(白磁壺) I, 너그러운 형태에 담긴 하얀 빛깔’전이다.
로마 숫자 ‘I’을 붙인 건 ‘Ⅱ’도 있다는 뜻이다. 6월 21일까지 열리는 1차 전시에서는 순백색 항아리를, 6월 26일부터 9월 20일까지 열리는 2차 전시는 청화·철화백자를 선보인다. 조선 백자가 속살을 보여준 건 여러 번이지만 이번처럼 항아리만으로 구성된 전시는 처음이다.
11일 오전 언론 대상 프리뷰가 있었다. 짙은 잿빛 계단을 지나 박물관 2층 전시실에 들어서자 뽀얀 백자가 어깨를 드러낸다. 입호다. 유진현 학예연구팀장은 “윗부분은 달항아리처럼 둥근 어깨를, 아랫부분은 날렵한 허리자락을 보여주는 게 입호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입호라고 천편일률적인 것은 아니다. 키·몸매·빛깔이 제각각이다. 조선 초기의 입호 중에는 날렵한 형태의 고려 청자 흔적을 보여주는 것도 있다. 박물관은 2층 전시를 ‘순백의 강건한 멋’이라고 이름 붙였다. 입호는 늠름하다.

달항아리는 3층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순백의 온화한 둥근 맛’이 주제다. 10개의 달항아리가 있다. 원호라고 모두 달항아리인 것은 아니다. 유 팀장은 “높이가 40㎝는 돼야 달항아리 자격이 있다”고 했다.
한데 백자 특유의 흰색을 내면서 40㎝ 이상 크기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흰색을 내려면 자기의 뼈대 역할을 하는 잡성분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자니 크게 만들 수 없다는 모순에 빠진다. 조선의 도공은 별도로 제작한 반구(半球) 형태의 상·하 몸체를 접합하는 ‘신의 한 수’를 고안해 냈다. 중국·일본 어디에도 없는 조선 만의 달항아리가 탄생한 배경이다. 백자가 고려 청자보다 화려함은 덜할지 모르나 제작기법 면에서는 한 수 위였다는 설명이다.
4층 전시실의 주제는 ‘순백과 절제의 미’. 유난히 흰 빛깔의 조선 초기 백자호들이 눈을 맑게 한다.
이번 전시에는 모두 80여 점의 백자 항아리가 나왔다. 유 팀장은 “달항아리에만 치우쳐 있는 조선 백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려고 한다. 백자 항아리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른 8000원, 청소년·경로 5000원. 02-541-3523.
신준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