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라도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죽은 줄 알았던 부모·형제·자매와 '기적' 같은 만남
(금강산=연합뉴스) 공동취재단·김정은 기자 = 한 살 젖먹이였던 딸을 6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아버지는 미안함 때문인지, 낯섦 때문인지 차마 딸을 바라보지 못하고 한없이 눈물만 흘렸다.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단의 '단체상봉'이 이뤄진 23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남쪽에 두고 온 딸 봉자(61)씨와 60여 년 만에 해후한 북쪽의 아버지 남궁렬(87)씨는 딸을 껴안고 소리 내 울었다.
↑ 이산가족 상봉 2차 만찬 (금강산=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이산가족 상봉행사 2차 첫날인 23일 오후 금강산면회소에서 열린 남측 주최 환영만찬에서 남측 남궁봉자씨가 북측 아버지 남궁렬(87)씨를 부축하고 있다.
↑ '아버지 드세요' (금강산=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이산가족 상봉행사 2차 첫날인 23일 오후 금강산면회소에서 열린 남측 주최 환영만찬에서 남측 남궁봉자씨가 북측 아버지 남궁렬(87)씨에게 죽을 떠먹이고 있다.
부녀가 헤어졌을 때 봉자씨는 한 살이었다. 그래서 봉자씨는 아버지 얼굴조차 기억이 없었다. 6·25 전쟁통에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하며 집을 나선 뒤 소식이 끊겼다는 이야기만 전해들었다. 갑자기 아들이 사라진 뒤 봉자씨의 조부모는 3∼5년을 애태우며 기다리다 화병으로 차례로 세상을 떴다. 봉자씨는 아버지가 죽은 줄로만 알고 그동안 제사를 지내왔다. 봉자씨의 어머니도 평생 남편을 그리워하다 5년 전 세상을 떴다.
아버지도 60대 노인이 된 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봉자씨가 아버지에게 "저 알아보시겠어요?"라고 묻자 그는 "못 알아보겠다"라고 답했다. 그는 "너희 엄마는?"이라며 딸과 함께 남쪽에 남겨둔 아내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숨졌다는 딸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북쪽에서 재혼해 낳은 아들 성철(57)씨와 함께 온 아버지는 60여 년 만에 만난 딸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계속 딸과 함께 온 조카들에게만 말을 걸었다. 봉자씨는 그런 아버지 옆에서 그의 손을 잡은 채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었다.
그러나 한 시간 남짓 지나자 봉자씨는 가는 시간이 아까운 듯 아버지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참았던 말을 꺼냈다. 그제야 아버지도 비로소 딸의 얼굴을 바라봤다.
봉자씨가 "엄마 많이 보고 싶었어요?"라며 남쪽의 아내 얘기를 꺼내자 남궁 할아버지는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꿈에서라도 한번 만나봤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라며 가슴에 담아뒀던 그리움을 고백했다.
봉자씨는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도 아버지를 많이 기다렸다고 전했고, 아버지는 "나에게는 과분한 사람이었다"라며 "이번에 만날 줄 알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쟁통에 소식이 끊겨 죽은 줄 알았던 형제·자매들의 감격스런 만남도 이어졌다.
남측 최고령자 이오순(94) 할머니는 상봉장으로 들어오는 북측 동생 조원제(83) 할아버지를 한눈에 알아봤다. 이 할머니는 어릴 적 아버지가 호적 등록을 해주지 않아 결혼할 때 다른 사람의 호적에 이름을 올리면서 성이 이씨가 됐다.
이 할머니는 동생의 손을 부여잡고 "고맙다. 고맙다"라고 말하며 오열했다. 동생도 "누님, 누님, 우리 누님, 이게 얼마 만이오. 나는 누님이 안 계실 줄 알았소. 누님"이라고 끝없이 '누님'을 부르며 울었다. 이 할머니는 전쟁통에 나간 동생이 죽은 줄 알고 오래전부터 제사를 지내왔다.
이 할머니는 "동생을 만나니까 너무 좋다"라며 "원제야, 이따 밥 먹으러 오너라"며 동생을 챙겼다.
북쪽의 리종성(85) 할아버지와 남쪽 동생 종신(74)·영자(71·여)씨 삼남매도 얼굴을 보자마자 얼싸안고 목놓아 울었다.
제주도가 고향인 리 할아버지는 가족들이 죽은 줄로만 알고 묘비까지 세웠다.
종신 씨는 "형님을 보니 꿈만 같다"라며 엎드려 절을 했다. 영자씨는 "너무 보고 싶었다"라고 말하고는 오빠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북측 최고령자 김휘영(88) 할아버지를 마주한 여동생 종규(80)·화규(74)·복규(65) 씨도 너나없이 "아이고, 오빠"를 부르며 바닥에 주저앉아 애통한 눈물을 흘렸다.
김 할아버지는 '나의 살던 고향은'의 가사가 적힌 북쪽 가족사진을 동생들에게 보여주며 항상 사진을 보며 노래를 불렀다는 말로 오랜 시간 안고 산 그리움을 전했다.
1951년 학교에 갔다 돌아오지 않은 형 림채환(82)씨를 만난 동생 임채용(63)씨는 얼굴도 본 적 없는 형의 어깨를 계속 주물렀다.
임씨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진 형이어서 얼굴 한번 본적이 없었지만 애틋한 혈육의 정 앞에서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임씨는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정말 건강하시다. 이렇게 젊으시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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