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분이 포슬포슬 오르고 호박이 달큼하게 익는 계절, 칼국수나 수제비 한 그릇 맛있게 끓여 먹고 싶은 때다. 육수 내고 밀가루 반죽해 누구나 후루룩 끓이기 쉬운 메뉴지만, 평범한 음식일수록 맛 내기는 더 어려운 법! 손맛과 정성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까지 뜨끈하게 데워주는 수제비집와 칼국수집을 찾아 며느리도 모르는 맛 내기 비법을 살짝 엿보았다. 수제비 먹을까, 칼국수 먹을까? 밀가루 반죽 한 덩이의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체부동 수제비와 보리밥
칼칼한 국물, 야들야들 수제비
요리에 '요' 자도 모르는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수제비다. 멸치 몇 마리 띄워 맛국물을 내고 밀가루 반죽 한 덩이만 만들어 뚝뚝 떼어 넣고 후다닥 끓이기만 하면 되니 이 얼마나 간단한가! 한데 '체부동 수제비와 보리밥'의 수제비를 한번 맛보면 '내공이 쌓인 수제비'는 과연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경복궁역 근처 일곱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을 10년 넘게 수제비 한 그릇으로 지켜온 주인장 남경숙 씨는 밀가루, 물, 소금 이 세 가지 재료로 야들야들하면서도 쫄깃쫄깃한 반죽을 만든다. 매일 점심 식사 손님이 빠지고 나면, 아들 지호찬 씨와 함께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열무김치를 담근다. 저녁 영업을 위해 미리 준비하는 줄 알았더니, 다음 날 쓸 반죽이란다.두 시간 넘게 치댄 후 숙성고로 옮겨 저온에서 14시간 이상 숙성시키는데, 이렇게 해야 어느 한 부분 질깃하거나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술술 넘어가는 반죽이 완성된다. 반죽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맛국물. 멸치, 다시마를 비롯해 대파, 양파, 무 등 열 가지 정도의 재료로 20~30분간 짧게 우려 깔끔하고 맑은 맛이 나도록 한다. 아무리 캐물어도 다른 재료는 더 이상 공개 불가라고. 매일 아침 끓이는 육수에 감자를 넣고 반죽을 떼어 넣어 끓인 뒤 청양고추와 부추를 올리면 손님상에 오른다. "청양고추는 칼칼한 국물 맛을 완성시키고 부추는 밀가루의 찬 성질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지요. 상에 열무김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열무는 그 성질이 따뜻해 밀가루와 합이 잘 맞아요." 고춧가루와 다진 양파, 액젓, 보리죽만 넣어 버무리는 열무김치는 수제비를 주문하면 먼저 내주는 보리밥에 수북히 올려 슥슥 비벼 먹으면 이 또한 맛이 일품이다. 미역수제비와 들깨수제비도 인기지만, 현미찹쌀과 멥쌀을 섞어 익반죽해 만든 들깨옹심이도 별미다.
주소서울시 종로구 체부동 88-1문의02-722-6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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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 손칼국수
면발이 관건! 쫀득쫀득 손칼국수
밀가루 반죽을 밀어 칼로 가늘게 썰어 만든다 하여 칼국수라 부르는 것처럼, 소면과는 달리 가정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칼국수다. 한데 요즘은 마트에만 가도 시판 칼국수 면이 흔하니, 음식점에서도 직접 손으로 만든 면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선정릉역 근처 '도리 손칼국수'는 역사가 오래된 맛집은 아니지만, 입 소문을 타고 요즘에는 거리가 꽤 먼 테헤란로 근처 직장인까지도 찾아온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데 남편 황종원 씨가 면과 육수를, 아내 정지현 씨가 김치와 조리를 도맡는다. 메뉴는 단출해도 반죽이나 김치 담그기는 물론이요, 고명 하나까지도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직접 정성들여 만든다는 것이 부부의 원칙. 2년 남짓 반죽에만 매달렸다는 황종원 씨는 일본의 우동이나 국수 관련책까지 뒤적거리며 그만의 비법을 찾았다. 손으로 치대다 보니 한 번에 1kg씩밖에 반죽을 만들지 못해 매일 점심 영업이 끝나면 저녁내내 반죽대 앞에 매달려 있다. 1kg이라고 해봐야 고작 6~7인 분량이기 때문. 두 시간 넘게 치댄 뒤엔 상온에서 1차 숙성을 시키고 다시 한 번 반죽을 치대 얇게 민다. 면끼리 서로 엉겨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덧가루로 감자 전분을 뿌려 칼로 썬 면을 냉장고에서 열일곱 시간 2차 숙성시키면 비로소 완성된다. "사람 손으로 밀다 보니 아무래도 면의 두께가 일정하지 않지요. 한날 반죽을 밀어도 얇은 면이 있고, 두꺼운 면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냉칼국수엔 얇은 면을 골라두었다가 사용하고, 들깨칼국수나 팥칼국수처럼 걸쭉한 국물에는 두툼한 면을 씁니다." 멸치와 디포리 등을 1시간 40분~2시간 우린 맛 국물에 면을 넣고 끓인 손칼국수는 정지현 씨가 담그는 겉절이와 함께 먹어야 제맛. 멸치육수에 멸치 액젓과 까나리 액젓을 섞어 버무리는데, 그날 버무린 겉절이만 손님상에 올린다. 집에서 밥 먹을 일이 드문 요즘 '엄마가 끓여 준 칼국수 맛'을 즐길 수 있어 정겨운 곳이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898-4문의02-562-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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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디터 : 박유주 / 사진 : 이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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