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종로구 옥인동 언덕배기 골목길 끝에서 나타난 로맨틱한 종탑, 뒤로 북악산이 펼쳐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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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 중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과 언덕길이 경복궁역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종로구 옥인동 골목과 언덕배기가 그곳으로 서울 서촌이라고 불리는 동네에 자리하고 있다. 동네 이름도 예쁘고 내 어머니 이름이 '정옥'이어서 그런지 동네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벽화가 없어도 좋은 골목길
▲한옥지붕 위 고양이가 한 눈에 외지인을 알아보고 유심히 관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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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진열대에 시식용 바구니가 달려 있는 인심좋은 효자 빵집, 동네 아이들의 주요 표적이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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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집과 단층의 주택들, 현대적인 건물들이 모여 있지만 어느 건축물도 하늘을 가리지 않고 동네 뒤편의 인왕산을 자랑하듯 내보인다. 그렇게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며 걷는데 날 쳐다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동네에서 오래 살았음직한 고양이 한 마리가 한옥 지붕 위에 서서 외지인 여행자를 유심히 관찰 중.
▲옥인동 언덕동네로 가는 관문, 신교동 80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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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추억이 없는 사람에게 계단이란 단순히 층(層)의 반복일 뿐,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힘만 무척 드는 구조물일 것이다. 서울에 있는 후암동 108계단, 남산 삼순이 계단, 이화동 꽃계단, 삼청동 돌계단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게 된 건 어릴 적 계단이 놀이터였던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벽화는 없지만, 계단옆에 손잡이가 있어서 그런지 정답게 느껴지는 언덕배기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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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단도 그렇고 주변 골목들도 그렇고 언젠가부터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벽화가 있을 법도 한데 그림 한 점 없다. 달동네, 언덕동네의 쓸쓸함을 달래주기도 하는 벽화 그림들이 굳이 필요 없다는 의미일까. 노약자를 위한 손잡이가 있는 언덕 골목들이 친숙하면서도 마음 짠하게 다가온다.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각기 다른 감성을 갖게 하는 게 골목이다. 어떤 이에겐 남루하게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에겐 정겨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골목이 없는 도시는 추억이 없는 사람처럼 무미건조하게 살아가게 되리라는 것.
골목마다 어지럽게 들어선 전봇대와 전깃줄은 이웃간의 긴밀한 교류를 상징하는 듯하고, 어느 집 붉은 벽돌 담장 위에 방범용으로 만든 뾰족한 쇠 가시 마저도 정답다. 언덕동네에 웬 고급스럽게 보이는 주택들이 지어져 있나 했더니, 가까이에 인왕산과 수성동 계곡이 있는 등 경관이 수려한 옥인동엔 옛부터 부호들의 집들이 많았단다.
옥인동의 보물, 언덕배기 위 낭만 종탑
▲일 년에 딱 두 번 종을 울린다는 로맨틱한 종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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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 교회안에 있었던 철책, 군인이 지키는 초소도 있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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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기분이 들게 하는 종탑 앞에 서면 무엇보다 인근 동네가 한 눈에 펼쳐져 눈이 시원해진다. 고층의 아파트와 드높은 빌딩이 안 보이는 서울 도시 전경이라니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시선 양 옆엔 청와대를 품고 있는 북악산과 늠름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인왕산이 들어서 있어 가히 좌청룡, 우백호란 풍수지리설 용어가 실감이 난다.
▲옥인동의 뒷산이자 병풍 인왕산으로 서서히 해가 내려앉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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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지고 언덕배기 아래 동네에 하나, 둘 켜지는 불빛들이 따스하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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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이 육군공병단을 동원하여 지은 교회로 그가 일제 강점기 시절 활동했던 하와이 한인교회에서 이름을 딴 것이라고. 국가 권력에 의해 지어진 교회라서 그런가 마당한쪽에 보기 흉한 낡은 철책이 둘러쳐져 있다. 교회의 위치가 청와대 기와의 곡선미가 느껴질 정도로 가깝다보니 군사정권 시절 내내 철책은 물론 군인이 교대 근무를 서는 초소까지 교회 마당에 있었다고 한다.
인왕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내려앉기 시작한다. 검게 변해가는 산의 실루엣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대하니 무척 인상적이다. 교회 신자분의 말대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집집마다 하나 둘 불이 켜지는 동네 야경이 서서히 지는 노을처럼 여유롭고 따스하고 정답다. 종탑에서 연말 자정에 새해를 알리는 재야의 종을 친다니, 잊지 말고 꼭 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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