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성세희기자]
[1년 반만에 중·고등학교 졸업시험 모두 통과…방송통신대학교 새내기 김정연씨]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21일 오후 김정연씨(56)에게 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과에 합격했다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등록금 고지서를 확인하던 김씨 양 볼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공부하고 싶었던 그때 계속 할 수 있었다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동안 소리 없이 훌쩍였다.
↑ 오는 3월 방송통신대학교 13학번으로 입학할 김정연씨(56·법명)가 지난 23일 학교 홈페이지에서 수강신청 내역을 살폈다. ⓒ사진=성세희 기자 |
김씨는 5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참전용사. 총알파편이 몸 안쪽에 박힌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6·25 전쟁이 끝나고 상흔이 남아있던 시절. 김씨가 살던 고향 밀양은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인 동시에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다.
끼니를 걱정하진 않았다. 대신 배움에 목말랐다. 밥을 굶지는 않았지만 5남매를 모두 학교에 보낼 정도로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다. 김씨 부모는 동틀 무렵부터 컴컴해지도록 쉴 새 없이 논밭을 갈고 염소와 소·닭을 먹였다.
김씨 아래로 줄줄이 남동생 둘과 여동생이 태어났다. 자녀가 곧 노동력이던 시절. 언니가 먼저 배움을 포기했다.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언니는 밭으로 나간 어머니 대신 동생 기저귀를 갈고 밥을 지었다. 초등학교를 마친 김씨에게도 당연한 수순처럼 학업 대신 집안일이 주어졌다.
그 땐 딸이라는 이유로 공부를 '알아서' 포기했던 시절. 부모는 아들이 우선이었다. 설령 굶더라도 아들을 뒷바라지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어머니도 같은 편은 아니었다. 두 남동생은 원하는 만큼 학교를 다녔다. 그나마 아홉 살 터울인 막내 여동생은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다.
스물아홉. 1984년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정신없이 살았다. 결혼 후에도 넉넉지 못한 삶이 이어졌다. 가족 뒷바라지에 쉴 틈 없이 스무 해가 흘렀다.
파편이 박힌 아버지는 뒤늦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아버지는 갓 제대했을 당시에는 몸에 이상이 없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에서 아무 혜택을 받지 못했다. 정부는 관련법에 따라 국가유공자에게는 매달 생활비를 지급하고 자녀에게 대학교 학비까지 지원한다. 아버지는 뒤늦게 2003년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 하지만 김씨는 40대를 훌쩍 넘은 뒤였다.
공부에 목말랐지만 여유가 없었다. 두 아이가 고등학생이었고 삶은 여전히 팍팍했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학교를 다니고 싶었지만 매일같이 농사일을 돕고 밥 짓느라 쉽지 않았다"며 "결혼한 뒤에는 아이를 키우느라 자신을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학업이 끝난 뒤에야 김씨는 2011년 가족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배움의 길로 발을 들였다. 그해 1월 동대문구 신설동 수도학원으로 달려가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중졸 검정고시) 과정을 등록했다. 학업을 중단한 13세 소녀는 쉰이 넘어서야 다시 책을 품에 안았다.
생전 마주친 적 없던 수학기호와 어려운 영어단어가 눈에 낯설었다. 반복학습만이 살길.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여러 차례 복습했다. 시험 전까지 기출문제를 열 번 넘게 반복해서 풀었다. 그해 8월 김씨는 우수한 성적으로 중졸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순조로울 줄 알았던 학업에 시련이 닥쳤다. 중졸 검정고시를 무사히 치르고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김씨에게 우환이 닥쳤다. 그해 12월 어머니 윤징자씨(79·여)가 병환으로 쓰러졌다. 시험 준비를 미룬 채 병간호에 매진했다.
불행은 꼬리를 물었다. 지난해 1월에는 정정하던 시어머니가 주무시던 중 숨을 거뒀다. 남편은 상을 치른 지 한 달쯤 지날 무렵 정신을 잃고 2m 상공에서 추락해 큰 부상을 입었다. 석 달 넘게 두 환자와 병실을 떠나지 못했다. 그해 4월 고졸 검정고시가 다가왔지만 공부에 집중한 시간은 몇 달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하늘은 김씨 편. 4월 치른 고졸 검정고시는 영어성적만 조금 낮을 뿐 모두 높은 성적으로 통과했다. 내친 김에 올해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냈다. 합격했다.
김씨의 대학 입학소식에 가족들의 감회가 남달랐다. 특히 김씨 막내여동생 성희씨(48·여)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다면 우리 아들·딸보다 잘 했을 것"이라며 "언니처럼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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