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1956~ )
파장 무렵
집 근처 노점에서 산 호박잎
스무장에 오백 원이다
호박씨야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씨를 키운 흙의 노고는
적게 잡아 오백 원
해와 비와 바람의 노고도
적게 잡아 각각 오백 원
호박잎을 거둔 농부의 노고야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잎을 실어 나른 트럭의 노고도
적게 잡아 오백 원
그것을 파느라 저녁도 굶고 있는
노점 할머니의 노고도 적게 잡아 오백 원
그것을 씻고 다듬어 밥상에 올린
아내의 노고도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잎을 사들고 온 나의 노고도 오백원
그것을 입안에 다 넣으려고
호박쌈을 먹는 내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호박잎에 맛드는 철이다. 햇살이 기울기 시작하면 호박잎에 맛이 든다. 밥솥에 얹어 쪄낸 호박잎을 손바닥에 펼쳐서 흰밥에 양념장을 찌트려 먹는다. 여기서 햇살이 더 잦아들면, 호박 덩굴이 잔가지를 뻗고 잎도 잘아진다. 이때는 부드러운 순 쪽을 잎이며 호박까지 뜯어다가 빨래 치대듯이 치대서는 된장국을 끓인다. 요새는 뭐든 시도 때도 없고 철도 없어서 호박잎도 갈 봄 여름이 없는데, 그래서 계절도 시도 때도 없고 인간세상도 도무지 철이 없다. 아무래도 최영철 시인이 호박잎 쌈 맛을 제대로 아는 것인데, 이 ‘본전 생각’은 도무지 밑지는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이렇게 여러 오백 원에,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값이 여럿 값이라면 아무래도 턱없이 남는 쪽으로 본전 생각인 것인데, 그 본전 생각에 하도 오져서 호박잎 쌈을 입이 찢어질 듯 홍홍 밀어 넣고 있는 시인이 눈에 선하다.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