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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초화 3총사, 팬지-프리뮬라-데이지

아기 달맞이 2012. 3. 3. 17:41

쌀쌀한 초봄에 활짝 웃는 아이들, 실내 들여놓으면 시무룩

 

[동아일보]

매년 이맘때면 '언제부터가 봄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대표적 봄꽃인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피려면 아직 멀었고 신록의 봄을 대표하는 철쭉이 피기에는 더욱 먼 3월 초를 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요즘 인기 있는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금세 생각을 거둔다. 그들은 넘쳐나는 다른 질문으로 이미 바쁠 테니까.





데이지, 팬지, 프리뮬라(시계방향 순).

그래서 꽃을 전공한 필자(사실 내 이름이 '정'해주는 '남'자이긴 하다!)가 감히 봄을 정의해 보고자 한다. 이런 건 어떨까. 봄 초화 3총사인 팬지, 프리뮬라, 데이지 중 어느 한 가지라도 길가에 등장하는 때가 봄이라고 하는 것 말이다.

3총사가 등장한 후에는 개나리,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고, 이후 철쭉에서 시작해 장미로 끝나는 '신록의 봄'이 뒤따른다.

○ 봄의 환희를 전하는 한해살이 풀꽃

팬지와 프리뮬라, 데이지는 원예학에서 가을뿌리기 한해살이풀꽃(추파 1년생 초화)으로 구분하는 것들이다. 주로 온대지방 원산인 이들은 가을철 뿌린 씨에서 돋아난 싹이 겨울철 추위를 몸으로 느낀 후 봄철에 꽃을 피우고 생을 마감한다. 그렇지만 중부지방의 거센 추위는 이들이 이겨내기엔 무리다. 그래서 서늘한 비닐하우스에서 겨울을 보내게 한 뒤 이맘때쯤 밖으로 내어 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부산이나 제주도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따뜻한 남쪽 지방에선 가을에 심은 봄 초화 3총사가 늦가을에 일부 꽃을 피우고, 노지에서 겨울을 지낸 후 이른 봄에 다시 꽃을 피운다. 이렇게 야생에 가깝게 기른 남부지방의 팬지는 중부지방의 그것들과는 달리 정말 '토실토실'하기까지 하다.

팬지 등 봄 초화류는 주로 가로변 꽃식물로 많이 이용된다. 색종이처럼 울긋불긋한 팬지를 일렬로 심어 놓은 이른 봄 풍경은 매우 흔하다. 그 이유는 아직 날씨가 추운 초봄에 예쁘게 피어나는 꽃이 봄 초화 3총사 외에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는 양쪽 꽃잎 두 장과 아래쪽 꽃잎에 검은색 큰 반점이 들어간, 마치 판다 얼굴처럼 생긴 대형종 팬지를 많이 길렀다. 길가 대규모 화단의 꽃은 원거리에 있거나 차량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목적이니 대형종이 알맞다.

최근에는 무늬가 없는 중형종이나, 양쪽 두 장의 꽃잎에 고양이 수염 같은 줄이 나 있는 소형종도 많이 유통되고 있다. 특히 학명에서 유래한 비올라(Viola)란 이름으로도 통하는 '고양이 수염 팬지'는 5월의 이른 더위에도 강한 편이어서 가정의 중소형 화단이나 용기정원 등에 제격이다. 작고 앙증맞은 모습이 '가분수' 모양인 대형 팬지보다 훨씬 사랑스럽기도 하다. 그런데도 왠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보기가 어려워 아쉬운 기분이 든다. 올해는 '고양이 수염 팬지'를 많이 보았으면 좋으련만.

팬지의 매력 중 많은 사람이 놓치기 쉬운 것이 그 향기다. 향기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흔히 지나치기 쉽지만 이른 봄 서늘한 미풍에 전해져 오는 팬지의 향기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팬지 곁을 지날 때에는 코의 세포들을 긴장시켜보자.

○ 앙증맞은 프리뮬라와 막내 동생 같은 데이지

프리뮬라(Primula)는 라틴어에서 온 접두어(prim-, 최초라는 뜻)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른 봄에 무척 빨리 핀다. 꽃잎이 다섯 장인데 그 끝이 오목하게 파여 있어 앙증맞은 느낌을 주는 귀여운 꽃이다. 달콤한 향기도 매력적인데 특히 노란색 품종의 향이 좋다. 상추 잎 같은 잎사귀 가운데에서 계속 꽃이 핀다. 시든 꽃은 손으로 그때그때 따 주고, 물을 줄 때는 잎이나 꽃에 물이 닿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

데이지는 우리나라의 '들국화'와 마찬가지로 영미권에서 국화과의 여러 식물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많이 쓰인다. 오늘 이야기하는 데이지는 이른 봄에 쉽게 볼 수 있는 영국 데이지(Bellis perennis)를 말한다. 이 꽃은 사람들이 흔히 연상하는, 달걀 프라이를 연상하게 하는 꽃(흰색 가장자리 꽃과 노란 가운데 꽃으로 이뤄짐)과 한들거리는 잎을 가진 샤스타데이지 무리와는 사뭇 다르다. 단정하고 귀여운 막내 동생을 닮았다고나 할까? 다른 데이지와는 달리 추위에 강하기 때문에 이른 봄 초화로 이용된다.

봄 초화 3총사는 추위에 강해서 영하의 늦추위나 서리도 한나절쯤은 견뎌낼 수 있다. 햇빛만 좋다면 온도가 서늘한 곳에서 오히려 더 잘 자란다. 따라서 애지중지 키우려고 실내에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

이번 주말에는 봄 초화 3총사를 바라보며 다시 돌아온 봄을 느껴보자. 탐스럽게 피어난 팬지(pansy)를 바라보며, 그 꽃의 프랑스어 어원인 pens'ee(생각)를 생각하면서 봄철 꽃놀이 계획을 짜 보는 것도 좋으리라. 이제 팬지의 노래로 시작되는 봄꽃 축제의 서막이 올랐다. (필자가 팬지를 좋아해 글에 팬지에 대한 내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갔다. ^^)

서정남 농학박사(농림수산식품부 국립종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