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볼티모어에 웨스터민스터 공동 묘지에는 해마다 1월 19일이면 한 묘비 앞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곤 합니다.
이 곳에 묻혀 있는 작가, 애드가 앨렌 포우의 무덤에 정체 불명의 사람이 나타나 반쯤 마신 꼬냑과 붉은 장미 세 송이를 해마다 놓고 가기 때문이죠.
올해에도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정체 불명의 남자는 1949년부터 해마다 포우의 무덤에 나타났고, 처음 나타났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뜻을 이어받은 사람이 계속 같은 날짜에 같은 의식을 이어갔습니다. 물론, 포우의 추종자들과 볼티모어 시민들, 그리고 그 일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은 이 정체 불명의 사람이 어느 때쯤 나타났는지 알기 때문에 그의 신원을 밝힐 수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아무도 그런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그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은색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 반 병의 꼬냑과 붉은 장미 세 송이를 바치고 나름대로의 의식으로 포우를 추모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죠. 정체 불명의 남자가 바친 장미 세 송이는 애드가 앨렌 포우, 그의 고모이자 버지니아의 어머니였던 마리아 클렘,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버지니아를 기리는 것이 아닐까 추정하죠. 반 병의 꼬냑은 술을 좋아했고, 결국 술로 인해 생을 마감했던 이 작가에게 바치는 헌사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드가 엘렌 포우, 그는 참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사람입니다. 더 없이 아름다운 시, <애너벨 리>를 남긴 시인이면서, <검은 고양이>, <어셔 가의 몰락> 같은 무시무시한 추리소설의 대가였고,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들이 존경하는 인물이었으며, 현실적으로는 무능력한 인물,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 눈물겨운 헌신을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양부모 밑에서 자란 애드가 앨렌 포우는 고모 집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사촌 여동생 버지니아를 사랑하게 되죠. 스물 여섯 살의 포우와 열 세 살의 버지니아, 세상의 반대를 물리치고 결혼에 이르게 되었지만, 너무나 가난했던 포우는 버지니아가 병들어도 제대로 간호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 버지니아가 열이 펄펄 끓는 상태로 아플 때, 애드가 엘렌 포우는 땔감이 다 떨어진 난로에 자신의 책과, 하나 뿐인 원고들을 넣어서 태웠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태워버려도 좋을만큼 포우는 버지니아를 사랑했지만, 끝내 버지니아를 살려 내지는 못했습니다.
아주 아주 오래 전
바닷가 한 왕국에
한 소녀가 살았어요.
애너벨 리라면 당신도 알지 몰라요.
이 소녀는 날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것 밖엔
딴 생각은 아무 것도 없이 살았어요.
나도 어렸고
그 애도 어렸죠.
바닷가 이 왕국에서
하지만 사랑보다 더한 사랑으로
나와 애너벨 리는
하늘에 날개 달린 천사들이
시샘할 만큼 사랑했어요.
그 때문에 오래 전
바닷가 이 왕국에서
한 차례 바람이 구름으로부터 불어와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아내 버지니아가 세상을 떠난 뒤, 포우가 슬픔 속에서 썼다는 <애너벨 리>,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시죠.
시대를 앞서간 재능을 가졌지만 그 재능을 펼칠 만큼의 여건은 만들어 주지 않았던 운명, 포우는 술에 의지하며 방황하다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유럽에서부터 그를 재발견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었죠. 해마다 그의 생일에 놓여지는 붉은 장미 세 송이와 반 병의 꼬냑은 살아서 불행했던 애드가 앨렌 포우를 기리는 아주 긴 레퀴엠이 아닌가 싶습니다.
-KBS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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