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은 “인간은 항상 비극으로부터 머리카락 한 올의 차이만큼
떨어져 있는 존재”라고 했지요,
스타이런이 쓴 1979년 소피의 선택은
어쩌면 작가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낸게 아닐까 싶어요
책으로도 베스트셀러였지만 알란 파쿨라 감독의 같은 이름의 영화는
그 주연 배우 메릴 스트립 때문에 최고의 명화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듯합니다
감독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면 1등 관객, 주연배우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면 2등 관객,
줄거리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면 3등 관객이라는 말이 있지요,
정직하게 말해 일단 저는 감독을 보고 선택합니다. 그렇지만 예외는 있지요,
메릴 스트립 주연 이라면 감독을 무시하고 무조건 티켓을 사는 편입니다
1982년 영화화된 소피의 선택을 맨 처음 제가 본게 언제였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결혼전이니 1983년 상반기였을 겁니다
그때도 물론 오래 오래 가슴에 남는 영화였지만, 몇년전에 EBS에서 방영했을땐
충격을 받아 한동안 멍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두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던 사실이
아마도 첫번째와 두번째 감상의 차이를 이루는 원인이었겠지요
그러다가 얼마전 운이 좋게 인터넷에서 DVD로 나온 소피의 선택을 구입,
영구 소장하게 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보기 너무 좋은 날씨였던 바로 어제 아무도 없는 집에서
또 한번 흠뻑 빠져 감상하게 되었지요
이번에는 정말 가슴 아려오는 통증과 멈출 수 없는 눈물로 넋을 잃었다고나 할까요
아우슈비츠에서 딸을 선택하여, 독일군에게 끌려가며 울부짖는 딸을 보며 오열하는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라틴어로 그야말로 Non Plus Ultra(더할 나위 없는)였죠
그리고 그 딸의 얼굴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제게 있어서 좋은 영화란 한번 본 영화는 일단 제외입니다,
두번 이상 본 영화 ,세번,네번 보는 영화가 비로소 좋은 영화가 되는 거지요
이 "소피의 선택"처럼 말입니다
150분 두시간 반... 러닝타임이 긴 편이지만
만약 이 영화를 한시간 몇분 쯤에 만들었다면 가슴이 터져버렸을 거예요
소피의 삶을 따라가는 과정은 중간중간 심호흡을 해야될 정도로 편치 않았어요
1947년 미국 뉴욕 브룩클린, 소설가를 지망하는 남부출신의 청년 스팅고는
이 영화의 화자입니다-겨우 22살이지요
그는 소피(메릴 스트립)와 네이던(케빈 클라인)이 사는 건물에 거처를 정하고 .
친구가 되고 그들의 사연을 알게 됩니다.
폴란드인 소피의 아버지는 반유대주의의 대표자였고 유태인 몰살정책까지 입안한
법학교수였지만 그런 정치적 견해와는 무관하게
소피의 남편과 함께 나치의 학살 정책에 끌려가 총살당합니다.
소피의 엄마는 결핵으로 죽고 이후 소피 또한,
그녀의 애인이 레지스탕스와 연결돼 있었던 덕분에 아우슈비츠로 보내지지요
수용소로 가는 도중, 두 아이를 데리고 있는 소피를 보고 한 독일 장교가 추근댑니다.
그녀가 폴란드인 같지 않고 아리아인 전형의 희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금발의 미녀였기 때문이었어요.
그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피에게
아이들 중 한 명만을 살려주겠다고 딴에는 선심을 씁니다.
가스실로 보낼 아이를 소피 스스로 선택하라,
그리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둘 다 죽이겠다고 윽박지르는 독일 장교 앞에
소피는 딸을 ‘선택’해 버리고 맙니다.
소리를 지르며 독일 병사에게 안겨 멀어지는 딸을 보며 소피는 미친 듯 울부짖습니다
유창한 독일어 구사 능력과 과거 아버지의 비서로 일했던 경력으로
아우슈비츠 사령관의 비서로 일하게 된 소피는, 어린이 수용소에 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그를 유혹해 마침내 아들을 살려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다음날 그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게다가 사령관 딸의 라디오를 훔치라는 레지스탕스의 지령을 이행하는 데에도 실패합니다.
아무 일도 성공시키지 못한 소피는 이후 사령관이 숙청당함으로써,
아들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다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고
절망감에 소피는 전쟁이 끝나고 스웨덴 난민수용소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합니다.
인간 이하의 수용소 생활도 버텨온 강인한 그녀였지만,
신이 자신을 버렸다고 느끼는 순간 더 이상 살 의욕이 없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미국까지 오게 된 소피는 유대인 네이단을 만나게 됩니다
네이단은 넘쳐나는 예술적 기질과 기상천외하여 다른 사람들을 곧잘 감동시키는
기이한 행동을 하고 다니는 천재이지만,
불행히도 망상증 환자입니다. 편집증적 조울증환자이기도 하고요
천재성이 도를 넘은 것이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잃은 소피에게
네이단은 오직 하나 가진 것, 기댈 수 있는 곳, 그리하여 그녀의 모든 것이 되고,
천재이자 망상증 환자인 네이단 또한 그녀에게 집착합니다.
이제 그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은 서로의 사랑일 뿐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슬픕니다. 미친 듯이 서로에게 몰두하다가,
네이단이 비정상 상태가 되면 마치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면서
소피에게 악다구니를 쓰고, 상처를 주고 공격하다가 또다시 뜨겁게 화해하고......
이들의 사랑과 죽음이 영화의줄기입니다
이 영화의 화자 스팅고는 그들과 함께 어울려 친하게 지내면서
소피를 마음속으로 흠모하게 됩니다.
어느날 네이단의 발작이 절정에 이르고 총까지 집어드는 광폭함에
스팅고는 소피를 데리고 도망을 친 후
자신이 그동안 소피를 사랑해 왔으며 자신과 결혼해 달라고 고백합니다
남부에 있는 아버지의 유산인 농장에서 자신은 글을쓰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자고...
이때 처음으로 소피의 고백이 이루어지지요. 자신은 다시는 엄마가 될 수 없다고 ...
아우슈비츠에서 나쁜 선택을 했다고...
딸을 버렸다고....
영화에서 소피와 네이단과 스팅고는 서로가 서로에게 말못하는 비밀을 끝까지 가지고 갑니다
소피는 아버지가 반유태주의자였고 자신의 선택으로 딸이 죽게 된 사실을 네이단에게
결코 말하지 않지요. 네이단은 죽을때까지 모릅니다
네이단은 소피에게 자신이 화이자제약 에서 일하는 생물학자이며
하바드를 졸업한 석사라고 거짓말을 하며
10살 이후 중단된 정규교육과 편집광적 조울증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소피 역시 죽을때까지 그 사실을 모르게 되지요
스팅고는 네이단이 정신질환자이고 화이자 제약의 연구원이 아닌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잡무를 돌보는 일용직임을, 그의 형에게 듣고서도
소피에게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네이단에게도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둘다 죽을때 까지도 ........
우리역시 아무리 친한 누구에게도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 하나쯤은 있는거 아닐까요
그러나 결국 소피는 네이단을 선택해서 브루클린의 아파트로 돌아가고 맙니다.
발작의 절정이었던 네이단 이었기에, 아파트로 서둘러 돌아간 스팅고는
침대위에서 평화롭게 포옹하고 죽어있는 네이단과 소피를 발견하지요
뼈속까지 각인된 고통과 절망과 슬픔을 벗어나려고 한
소피의 처절하고도 외로운 절규의 몸짓은 결국 죽음으로 끝을 본 것입니다
이 작품에는 두개의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지요.
애초 불가능한 선택을 강요당했던 상황에서 그녀는 어쨌든 어린 딸을 가스실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에게 선택을 강요했던 현실의 질서로부터 영원히 물러납니다.
그것은 더이상 그 어떤 선택도 하지 않겠다는 마지막 선택이었을 겁니다
현대의 가장 혁신적인 사상가 지젝은 이를 “더 나쁜 선택”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쁜 선택" 과 " 더 나쁜 선택 " 중에서 말이지요
. 이영화를 보면서 어쩔수 없는 순간적인 선택으로 인해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처절한 선택..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지는,
죽음만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그런 선택....
그런 선택이 바로 "소피의 선택" 이 아닐까 싶었어요
제목과 반대로 소피의 선택은 모두 그녀가 한 선택이 아니었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비극일 수 밖에 없는 선택이었던 겁니다
소피가 좋아했던, 미국에 와서 영어를 배우자마자 읽고 싶어했던,
네이단과 소피를 인연이 되게 한 ,미국의 19세기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
이 시를 읽는 스팅고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영화의 끝입니다만
이 장면은 소피가 네이단을 처음 만났을때, 그토록 도서관서 찾아 헤맸던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네이단이 가지고 있는것에 감탄하며 폴란드어로 낭독하는
그 장면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둘은 서로를 신기해 하죠, 네이단에게는 에밀리 디킨슨의 폴란드어 시가,
소피에게는 에밀리 디킨슨의 영어 시가 ,너무 신선한 거였지요.
언제고 한번 감상을 권합니다(DVD 빌려드릴게요)
디킨슨의 시는 바로 이것이예요
Ample make this bed.
Make this bed with awe;
In it wait till judgment break
Excellent and fair.
Be its mattress straight,
Be its pillow round;
Let no sunrise' yellow noise
Interrupt this ground.
이 쓸쓸한 침상 위에
찬란한 빛이 비치게 하라
심판의 새벽이 돌아올 때까지,
이 빛나는 아침 이불깃 똑바로 접고
베개도 두둑히 두어
아침 햇살 외 그 어떤 것도
감히 훼방치 못하게 하라
그들은 아마 이제 선택 같은거 하지 않아도 될 천상에서,
서로를 맘껏 사랑하고 문학과 예술을 얘기하며,평안을 누리겠지요
이 장면 보면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긴 고통의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와 행복한 마음으로 누워 잠을 자는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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