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들여다본 감동의 '곤충 포르노'
요즈막 수풀 속에서 사랑이 벌어지고 있어요
방해꾼이나 훼방꾼이 되고 싶지 않다면 수풀에는 가지 마십시오. 요즈막 수풀 속은 천지가 사랑 중입니다. 정말 사랑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면 가까운 수풀은 물론 정원에라도 가지 마십시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 때쯤 수풀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곤충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됩니다.
수풀 속 여기저기서 곤충들이 사랑을 나눕니다. 입은 것이 없으니 벗을 것도 없지만 벌거벗은 몸이 되어 꼬리를 맞대고 끈끈한 모습으로 사랑을 나눕니다. 대개 인간들이 사랑을 나누는 그 곳처럼 은밀하거나 푹신할 필요도 없습니다. 드러났거나 감춰졌거나, 푹신하거나 딱딱하거나, 평편하거나 낭떠러지나 할 것 없이 어디라도 좋습니다. 그냥 암수가 몸을 지탱할 수 있거나 매달릴 수만 있으면 됩니다.
곤충들의 사랑을 방해하지 마세요
곤충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소는 땅바닥일 때도 있고, 나뭇가지나 꽃잎일 수도 있습니다. 편해 보이는 곳도 있지만 숭숭 가시가 따끔따끔 살거죽을 찌를 것 같은 가시넝쿨일 때도 있습니다. 턱걸이를 하듯 매달린 자세로 사랑을 나누는 모습도 볼 수도 있고, 줄당기기 하듯 당기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가지나 꽃송이를 따라 곤충들의 사랑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가끔이지만 짝짓기를 한 채 게걸음을 하듯 자리를 옮기지만 그들의 사랑은 끝나지 않습니다. 어찌 되었건 사람들의 발자국은 곤충의 생명을 위협하고, 곤충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고약한 존재가 되는 건 분명합니다.
▲.곤충들의 사랑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면 수풀 속에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곤충 포르노? 노! 노! 생명의 본질이며 종족보존의 능동입니다
한 번 상상해 보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십시오. 후끈 달아오른 뜨거움으로 무아지경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데 저벅거리는 발자국 소리, 금방이라도 자신들을 짓밟아 버릴 것 같은 무지막지한 굉음이 다가온다면 그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할 곤충들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두려움에 가슴이 벌렁거리고, 공포감으로 온몸이 덜덜 떨리겠지만 교미의 특성이나 신체적 구조상 쉽사리 사랑을 끝낼 수 없다면, 짜릿해야 할 사랑은 더는 사랑이 아니라 목숨을 죄어오는 질식의 순간이며 생명을 위협해 오는 억압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곤충들의 예리한 청각에 감지되는 인간들의 발자국 소리, 곤충들이 가지고 있는 민감한 촉각에 탐지되는 인간들의 체취는 곤충들의 가슴을 짓누르는 협박의 소리며,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로 다가설 것입니다.
숨죽이는 표정을 알거나 읽지 못하고, 겁에 질린 숨소리를 들을 수 없어 그렇지 다가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반응하는 곤충들의 사랑은 엉망이 될 게 분명합니다
▲.흔들흔들, 불어오는 바람에 꽃대가 흔들리면 이들의 사랑도 시소를 탑니다
▲.불편함보다는 본능이나 짜릿함이 더 큰가 봅니다
인간들이야 설사 사랑을 나누다 누군가가 다가오거나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라도 후다닥 알몸을 감추고 쑥스러움이나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지더라도 시치미를 뚝 떼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인간들을 천적이나 괴물 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곤충들에게 인간의 등장은 생사를 위협하는 저승사자의 발자국 소리로 들릴 겁니다.
곤충 포르노? 생명의 본질이며 종족보존의 능동일 뿐
보내는 나날이 권태롭고 무료하다면 조심조심 수풀 속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멜로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곤충들에게야 미안하지만 권태로움을 달래고, 무료함을 덜어 줄 수 있는 생명의 모습, 살아있는 사랑의 소리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있을 겁니다.
목숨을 위협하는 침략자, 사랑을 방해하는 훼방꾼의 입장이 되니 조금은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가며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둘레둘레 수풀 속을 들여다보십시오.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너무도 조용하고,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너무도 의외라 자칫 지나치거나 흘려버릴 수도 있지만, 돋보기 하나쯤 들고 수풀 속으로 들어간다면 꿈틀거리는 몸동작, 바르르 떨리는 숨소리까지도 빠트림 없이 볼 수 있을 겁니다
▲.곤충들이 사랑을 나누는 자리는 제한이 없습니다. 활짝 핀 꽃에서도 꼬리만 맞대면 사랑입니다.
▲.땅바닥이면 어떻습니까. 생명의 본질이며 종족보존을 위한 능동일진데…
수풀 속을 들여다보면 원초적이지만 부끄럼 없는 사랑이 여기저기서 이뤄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전희도 없고 교태도 없는 원초적 몸놀림, 교성도 없고 거친 숨소리도 없는 침묵의 교미지만 이 수풀 저 수풀 속에서 이런저런 곤충들이 이렇고 저런 체위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곤충들이 나누는 원초적 사랑을 마이크로 렌즈로 들여다보았습니다. 곤충들을 상대로 한 포르노나 멜로물쯤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생명의 본질과 종족보존의 능동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입니다.
숨죽여 가며 사랑중인 곤충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어렸을 때 보았던 시골풍경, 막 결혼식을 끝내고 신방을 차린 신랑신부의 첫날밤을 훔쳐보던 어른들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훔쳐보는 사랑만큼 재미있는 것, 세상에 또 있을까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지만 몰래 숨어서 사랑 나누는 모습을 훔쳐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을 겁니다. 악의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호기심일 수도 있지만 내재된 본능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발로라 생각됩니다.
▲.누가 옆에 있으면 어떻습니까. 천적이나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사랑나누기를 주저할 이유도 없습니다
도가 지나치거나 드러내놓고 사람들이 나누는 사랑을 훔쳐보려 하면 관음증 환자로 치부되기 쉬우니 자제할 일입니다. 본능은 본능으로 인정하되 자제할 것은 자제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모습을 훔쳐본다는 생각을 하니 어렸을 때 보았던 결혼 풍속이 떠오릅니다. 지금이야 예식장에서 식을 올리고 폐백을 드리는 것으로 예식을 마치고, 신혼부부 단둘이서 훌쩍 신혼여행지로 떠나면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둘만의 시간, 둘만이 나눌 수 있는 사랑의 시간이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시골 풍경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신부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첫 날밤을 신부 집에서 보낸 다음날 신랑과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가 시댁 어른들께 폐백을 올리는 것으로 혼례가 이뤄졌습니다. 새댁 쪽은 새댁 쪽대로, 신랑 쪽은 신랑 쪽대로 날짜는 다를지라도 각자의 집에서 동네사람들과 일가친척이 모여 잔치를 벌이는 게 예전의 결혼이었습니다.
백년해로를 기약하며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린 신랑 새댁은 신부네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게 됩니다. 도배 정도를 새로 해 깔끔하게 꾸며진 신방에 신혼부부가 들어가고, 밤이 이슥해지며 신랑과 신부가 합방을 한 방에 불이 꺼지면 마을 사람들은 신방 훔쳐보기를 시작합니다.
▲.곤충 세계에서도 사랑 나누는 모습을 훔쳐보는 게 재미있나 봅니다. 곤충들도 다른 곤충이 사랑 나누는 모습을 보려는 듯 올라가서도 내려다보고, 매달려서 내려다보기도 하였습니다
풍습처럼 전해지던 일이니 누군가가 밖에서 훔쳐보고 있을 거라는 것을 뻔히 아는 신랑·새댁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모르지만 신방 밖에서는 숨죽이는 탐색이 이뤄졌습니다.
신방에 불이 꺼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중년 아주머니들이 고양이 걸음으로 창문 아래로 다가갑니다. 살금살금 창문까지 다가서서는 닥종이로 된 문종이에 침을 발라 구멍을 뚫으며 신혼부부의 첫날밤을 훔쳐봤습니다. 멀쩡했던 창문이 다음날 아침에 보면 여기저기가 뻥뻥 뚫렸습니다.
불끈거리는 뜨거움을 꾹꾹 참아야 했던 혈기왕성한 신랑, 폭포수처럼 그 뜨거움을 단번에 식혀주거나 받아줄 수 있는 신부와 함께 있지만 훔쳐보는 눈동자들을 의식해 참고 자제해야 했던 신랑의 입장에선 곤혹스런 시간이며 인고의 첫날밤이었을 겁니다.
그 옛날 아주머니처럼 저도 들여다봤습니다
▲.포르노의 주인공이 되든,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든 사랑나누기로 열기를 식히려 종종걸음으로 집을 향해 몸뚱이를 옮겨봅니다
숨소리를 죽여가며 다가갔지만 웃음을 참지 못해 창틀에 매달려 키득거리던 아주머니들, 무엇을 보고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야밤중 신혼부부 방을 훔쳐보던 재미는 그날 그들에게만 허용되는 풍습이었을 게 분명합니다.
아주머니들이 창틀에 매달려 키득거리며 느꼈을지도 모를 그 재미를 마이크로 렌즈를 통해 느껴봅니다. 오감을 짜릿하게 하고, 온 몸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하는 그런 뜨거움을 느낄 수 없으나 사랑에서 발산되는 오묘함은 분명 보았습니다.
기울어 가는 유월 햇살이 산 그림자로 드리웁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곤충들의 사랑, 신혼 첫날밤을 훔쳐보던 아주머니들의 뒷모습들이 가슴을 데워 옵니다.
포르노의 주인공이 되든,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든 한바탕 사랑나누기로 육신의 열기를 식히고, 반응하는 몸뚱이를 달래려 종종걸음으로 집을 향해 발자국을 옮겨갑니다
ⓒ오마이뉴스 임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