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놓는 자수가 그렇게도 좋아서 보낸 한평생 오랜 세월동안 기쁨, 괴로움, 외로움을 모두 자수와 함께 한 방정순씨. 살아가면서 더더욱 자수에 대한 정이 깊어지고 심오한 그 아름다움에 심취되어 바늘을 놓을 수가 없던 그.
생명이 허용하는 동안 보고, 느끼고, 만들면서 늘 상의 노력으로 남은 생을 마칠 것이다. 방정순씨는 자신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작품들이 미래의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없는 보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방정순씨가 자수와 인연을 맺은 것은 10살 되던 해에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에 있는 외갓집으로 피신하여 살게 되었을 때이다. 외할머니는 그 지역에서 수를 잘 놓기로 유명하셨던 분이다.
그런 외할머니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함께 지내면서 어머니와 함께 무명책보에 수를 놓았던 것이 오늘날까지 자수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방정순 여사님에게 직접 수를 한 번 놓아보시라고 권했더니 수틀 앞에 앉아 놀랍게도 빠른 솜씨로 바늘귀에 실을 꿰어 수를 놓기 시작했다. 68살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정확한 손놀림이었다. 안경을 쓰지 않고 실을 꿰고 한 뜸씩 빠르게 수를 놓는 모습에 취재진 모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를 놓으시면서 어머니가 자신보다 솜씨가 더 좋았고, 그 어머니보다는 외할머니의 솜씨가 더 뛰어났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겸손해 하셨다. 농사를 짓고 밤에 짬짬이 수를 놓으면서도 수를 놓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하신다.
아무리 오랜 시간 수를 놓아도 손에 땀이 나지 않아 수를 놓는 것이 ‘천직’같다고 하시며 고개를 드시는 여사님은 초야에서 농사일만 하시는 분 같지 않았다. 방정순 여사의 자수는 스승이 따로 계신 것이 아니라 어릴 적 배웠던 그 자수기법을 이어받아 수를 놓아 현대적인 기법과는 거리가 있어 투박하지만 전통성은 그대로 살아있다. 문양은 모란꽃과 초충도를 많이 사용하였고, 생활자수와 예술자수를 주로 놓았다. 전반적으로 문양과 색채가 화사해도 사치스럽지 않고 소박해도 품격을 잃지 않으며 작품에 등장하는 꽃과 새들은 때로는 화면을 압도하는 문양과 색채에 휩싸여 전폭적인 시선을 유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여백을 남기면서 조화로운 구성과 배색의 효과를 우려내기도 한다. 이는 자수 공예가로서의 한 생애를 겪어오면서 마음의 눈을 온통 손끝으로 전달할 수 있는 노련한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정순 여사의 작품이 세상에 비춰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2년 전북미술협회 공모전에 출품하여 상을 받아 세상에 첫 발을 딛게 되었고, 온고을전에서 입선 2번과 특선을 한 경력을 통해 고창의 장인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현재는 몸이 불편해 장시간 앉아 수를 놓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신다. 다행히 딸과 며느리가 자신의 자수에 관심을 갖고 후계자가 될 뜻을 보여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작품을 선보이며 병풍과 함께 처음으로 수를 놓은 무명에 꽃수를 보여주시면서 수줍어하신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젖줄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전통이다. 근대화 이후 물밀듯이 몰려들어온 외래문화에 우리가 통째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버팀목 역할을 한 것도 바로 전통이다. 방 여사의 자수는 과거에 대한 진한 향수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래를 향한 눈부신 비전이 여기에 있음을 확신한다. 시집도 발간하셨다는 멋쟁이 방정순 여사는 50여년의 세월 동안 수를 놓아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고창의 전통자수의 면모를 드높여주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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