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법정-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있는 정정한 나무 아래 서면 사람이 초라해진다.
수목이 지니고 있는 그 질서와 겸허와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부끄러워진다.
사람은 나무한테서 배울 게 참으로 많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날, 가지 끝에서 재잘거리던 새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어디론지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런 날 사람들은 저마다 덧문을 굳게 닫고 휘장을 내린다.
섬돌위의 신발이 젖을까봐 안으로 들여놓는다.
이때 나무들은 제자리에 선 채 폭풍우를 맞이한다.
더러는 가지를 찢기면서 잎을 떨치면서 묵묵히 순응하고 있다.
의연한 그 모습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비가 내리는 길목마다 비닐우산이 걸어간다.
저마다 자기 우산 아래서 우울하게 걸어간다.
한 사람쯤 자기 우산 속에 들여서 빗길을 함께 걸을 만도 한데,
세상 속의 우산은 자신의 어깨조차 가릴 수 없을 만큼 비좁다.
그만큼 인간의 영역이 인색해진 것이다.
이것이 오늘 이 땅의 우리인가.
하잘 것 없는 이름 석 자 아무개.
사람들은 그걸 내세우느라 늙은 나무에다는 상처를 입히는가.
나무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무더운 여름날 서늘한 그늘을 대지에 내리고 더러는 바람과 더불어 덧없는 세월을 노래한 그런 나무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숲이나 나무 그늘에 서면 착해지려고 한다.
콘크리트 벽 속이나 아스팔트위에서는 곧잘 하던 거짓말도
선하디 선하게 서 있는 나무 아래서는 차마 할 수가 없다.
차분해진 목소리로 영원한 기쁨을 이야기하고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가를 헤아리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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