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초

신비한 숲속의 귀족, 자작나무

아기 달맞이 2010. 3. 1. 20:20

 

지금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대부분 5∼60년대의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뒷산에서 산울림으로 들려오는 장끼의 울음을 뒤로하고 키보다 두 배나 높은 나무 한 짐쯤은 지고 내려와 본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며 이 때에 흔히 보아온 나무가 소나무 아니면 참나무일 것이다. 그러나 고향을 북한의 깊은 산골에 두신 분들은 유별나게 새하얀 껍질을 가진 나무를 기억 속에 영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나무의 수피는 시커멓고 울퉁불퉁하거나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것이 대부분인데 유독 자작나무만은 하늘을 날던 천사가 차디찬 겨울의 산 속에 처절하게 서 있는 자작나무를 불쌍하게 여겨 흰 날개로 나무의 등걸을 칭칭 둘러쌓은 것 같은 흰 수피를 가진 나무이다.



언뜻 짐작이 안 간다면 닥터지바고나 차이코프스키 같은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 광활하게 펼쳐진 설원에 간간이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의연히 맞서서 쭉쭉 뻗은 늘씬한 몸매와 하얀 피부를 한껏 자랑하는 나무 미인들의 군상이 바로 자작나무이다. 눈이 얼어붙어 흰 껍질이 된 것이 아니고 숲 속의 정한수만 먹고 고고히 자란 기품을 뽐내듯이 어디에서나 새하얀 수피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자작나무는 화(樺) 또는 백화(白樺)라고 한다. 높이 20m, 지름 1m까지 자랄 수 있는 큰 나무이며 기온이 영하 2∼30℃씩 떨어지는 추운 지방의 대표적인 나무이다. 현재 남한에는 자작 나무가 자연 분포하는 지역은 없으며 가로수로 심고 있는 자작나무는 수입된 자작나무가 대부분이다.



자작나무는 우선 흰 껍질의 특성을 살린 쓰임새와 나무로서 쓰임새가 있다. 흰 껍질은 얇은 종이를 여러겹 붙여놓은 것처럼 차곡 차고 붙어있다. 한 장 한 장이 매끄럽고 잘 벗겨지므로 종이를 대신하여 불경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영어 이름 birch는 그 어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글을 쓰는 나무껍질이란 뜻이 있다한다.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도 자작나무 종류의 껍질을 펴서 그린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기름기가 많아 잘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을 붙이면 잘 붙고 오래가므로 화혼(華婚)이나 화촉(華燭) 등 남녀의 만남과 연관된 이름은 껍질의 불타는 성질과 관련이 있다. 나무이름은 껍질이 탈 때 <자작 자작>소리가 난다는 데서 따온 의성어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10년(1428) 6월9일조를 보면 함길도 경차관 정분이 수재 상황을 아뢰는 내용 중에'경성 관아의 문 앞에 버드나무가 있었는데, 하루는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공기는 찌는 듯이 뜨겁더니, 베필[布匹] 같은 한 물건이 공중에서 길게 쭉 뻗치어 내려왔습니다. 바로 불타는 자작나무 껍질이었습니다. 버드나무가 그 열기에 부딪혀 죽었다고 합니다. 함흥에서부터 갑산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산 위의 초목이 다 타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하늘 불[天火]이라고 하였습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나무는 껍질만큼이나 나무속도 거의 황백색으로 깨끗하고 균일하며 옹이 하나 없어 북부 지방의 서민들은 이 나무를 쪼개어 너와집의 지붕을 이었으며 죽으면 껍질로 싸서 매장하였다 한다.

또 이른 봄이 되면 고로쇠나무, 거제수 나무와 마찬가지로 줄기에 구멍을 뚫어 위로 올라가는 생명수를 인간에게 뺏기고도 의연히 서 있어서 흰 수피 때문에 다가오는 처량함과 아울러 생명의 경외마저 느끼기 도 한다. 지금까지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재는 자작나무로 알려져 왔으므로 필자의 상상에는 고려인들은 참 멋쟁이 라는 생각을 하였다. 몽골의 말발굽에 온 나라가 유린당하는 처절함 속에서도 비록 인쇄하느라 시커먼 먹물을 뒤집어 쓰겠지만 부처님 말씀을 한 자 한 자 새겨 넣을 때는 깨끗하고 고상한 나무만을 베어다 쓴 마음의 여유를 갖다니!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대장경을 새겨 넣은 나무는 대부분이 산벚나무와 돌배나무 이었다.

추운 지방에 자라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나무높이 20m에 이르고 강원도 이북에 자생한다. 나무 껍질은 흰빛으로 얇은 종이처럼 벗겨진다. 잎은 삼각상 달걀모양이고 이빨모양의 크다란 단거치나 혹은 복거치가 있고 측맥은 6∼8쌍 정도이다. 꽃은 암수 한 나무로서 4∼5월에 피며 암꽃은 위로 서고 수꽃은 이삭모양 으로 아래로 처진다. 열매는 9월에 익으며 아래로 처져 달리고 열매의 날개가 종자의 폭보다 넓다.

[우리숲/한국의 수목도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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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흰옷을 입은 늘신한 자태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신비를 간직한 숲속의 귀족

자작나무열매



가을빛이 더디다고 조급해 하던 일이 엊그제인데 일제히 물들어 버린 가을 숲엔 벌써 하룻밤의 찬 바람에 우수수 낙엽이 가득하다.

자작나무는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겨울준비를 마친 나무이다. 이제 노란 낙엽들도 떨어져 내려 그 신성한 가지들이 희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고향에서의 본성을 잊지 못한 모양이다. 두고 온 북쪽의 산자락들을 말이다.

사실 우리에게 자작나무는 아주 친근하지만 남쪽 땅에 분포하는 나무는 아니다. 우리가 공원이나 길가에서 간혹 만나는 이 아름다운 나무는 모두 가져와 심은 나무들이고 남쪽에서는 저절로 이 나무가 자라는 숲이 발견되지 않았다.

간혹 설악산이나 오대산과 같은 높고 깊은 곳에서 하얀 수피의 나무를 만나 자작나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사스래나무이거나 거제수나무일 것이다. 물론 이 나무들은 같은 집안의 형제나무들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백두산에서 만났던 자작나무숲이 떠오른다. 아! 이제 백두산(물론 중국쪽으로 갔으므로 장백산이지만)의 원시림에 들어서는구나 하고 느끼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던가, 갑자기 하늘을 찌를 듯 늘씬하게 늘어선 자작나무 숲의 그 하얀 수피가 드러나면서 나는 까닭 없이 벅차 오르는 감격을 남몰래 진정시키느라 애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지 아니한가.

광릉숲에 수 십년 전 북쪽에서 가져와 자작나무숲으로 만들어진 곳이 있는데 항상 아름답긴 하지만 백두산의 자작만큼 순결한 감동을 주진 못한다.

누가 자작나무를 두고 눈처럼 하얀 수피를 가져 숲속의 귀족이요, 가인(佳人)이며 나무들의 여왕이라고 했다. 특히 흰색을 좋아 하는 백의 민족이 그 하얀 수피를 각별히 귀히 생각했음은 얼마든지 짐작할 만 한 일이다.

그러나 자작나무 숲이 주는 신비스러움은 이승의 것이 아닌 듯도 싶다. 신들이 머무는 곳이며 개마고원 아래 마을에서 소원을 비는 신령한 나무로 섬김을 받기도 한다.

자작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 교목이다. 대개 20m 정도 자라지만 백두산 원시림에는 이 나무가 하늘 높을 줄 모르고 높이 높이 자라고 있다.

이 자작나무는 역시 그 아름다운 수피로 가장 유명하다. 수피의 겉면은 흰색의 기름기 있는 밀납가루 같은 것으로 덮여 있고 안쪽은 갈색이며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는데 불에 잘 타면서도 습기에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저 아름다워서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 여러 용도로 쓰여 왔으며 또 이러다 생겨난 갖가지 풍속들이 있다.

옛 문헌에서 나무에 대한 기록을 찾아내고 해석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대개 화(樺)는 자작나무를 지칭하는데 간혹 화(華)자로 쓰기도 한다. 지금도 결혼식을 올리면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하며 ‘축 화혼(祝 華婚)’이라 하여 축하의 글을 보내는데, 전기불이 없던 시절 불이 잘 붙는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 대용으로 사용한 데서 비롯됐다.

다시말해 화촉을 밝힌다 함은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어둠을 밝히고 행복을 부른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한다. 자작나무의 수피는 종이의 역할도 하고 껍질을 태운 숯으로 그림을 그리고 가죽을 염색했기에 그림도구 및 염료를 파는 가게를 화피전이라고도 한다. 물론 목재도 좋은데 천마총의 벽화를 자작나무에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제 저만치 다가온 겨울의 모습이 자작나무를 통해 조금씩 보인다. 자작나무만큼 맑고 밝으며 절개있는 마음가짐으로 남은 2달을 보내야 할 듯 하다.

[이유미/한국수목원연구관/주간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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