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고싶은 영화

뮤지컬 '요덕 스토리'

아기 달맞이 2010. 2. 19. 01:59

지옥 같은 무대, 울음 같은 노래

실물 크기의 탱크가 무대로 진입했다. 이 쇳덩어리가 상체를 돌리며 기관총을 쏘아댔다. 진동이 객석까지 전해졌다. 요덕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맥없이 쓰러졌다. 그 순간 부르는 노래는 절규에 가까웠다. "아버지시여, 거기 계시나요/ 아버지 나라 이곳에도 세워주옵소서/ 아버지 뜻 이곳에도 이루소서/ 아버지, 제발…."

돌아온 뮤지컬 《요덕 스토리》(정성산 작·연출)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마지막 노래의 제목은 〈기도〉였다. 북한의 1급 정치범 수용소를 배경으로 하는 이 뮤지컬은 실화를 담고 있고 탈북자가 만들었다는 점에서 2006년 초연부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올해는 국립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미국·캐나다·독일 등 12개국을 도는 월드투어를 추진 중이다. 그래서 무대 좌우에서는 영문 자막이 오르내렸다.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를 고발하는 뮤지컬《요덕 스토리》. 참혹한 요덕 수용소에서도 사랑과 새 생명이 태어난다. / 티티엔터테인먼트 제공

《요덕 스토리》는 지난 2008년 군부대 투어를 끝으로 2년 가까이 재충전의 시간을 보냈다. 이번 무대는 주제와 이야기·인물은 그대로지만 남녀 주인공인 리명수(최수형)·강련화(신효선)가 부르는 〈휘파람을 부세요, 사랑해요 요덕!〉을 비롯해 6곡이 추가됐고 안무(서병구)와 편곡(송시현), 무대디자인(신수이) 등이 달라졌다.

검은 무대막이 오르면 공훈배우 강련화가 노래한다. "하늘의 새가 되고 싶어 휘파람을 불던 당신/ 당신의 기억에서 영원히 살겠죠~"로 흐르는 〈2010년 어느 날〉이다. 비극을 예고하는 프롤로그다. 이어지는 평양의 풍경은 힘차고 기계적이었다. "혁명을 위해 땀을, 투쟁을 위해 피를 흘려야 한다"고 외치는 평양 사람들이 "햄버거, 콜라, 청바지가 뭔지/ 우리는 몰라!" 할 때는 객석에 웃음이 번졌다.

아버지가 정치범으로 몰려 요덕으로 끌려간 강련화와 함께 관객도 비극적 추락을 체험한다. 서치라이트 같은 조명이 객석을 훑을 땐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최수형과 신효선은 〈용서〉 〈오랫동안 지켜왔지〉 같은 노래에서 가창력과 함께 감정을 뭉치는 솜씨를 들려줬다.

하지만 수용소의 고문과 총살, 수용소장 리명수와 강련화의 사랑, '요덕이'의 탄생, 탈출과 죽음 등으로 점프하는 이야기는 거칠었다. 무대 디자인은 기능적이지 않았고, 반복되면서도 변주나 공간감이 부족한 악몽 장면 등 무대언어가 가난했다. 노래와 춤으로 북한 사람들의 영혼을 그린 의미 있는 공연이지만 완성도는 여전히 아쉬웠다. 충격요법과 예술적 긴장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다.

▶2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1544-1555